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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라잎 Oct 16. 2024

07. 자아 자각 타임

자기애의 합리적 범주와 부모의 웰빙이 자녀 사랑에 미치는 영향

내가 만 네살배기 딸에게 사랑한다 말할 때 이따금 자기가 나를 더 사랑한다고 우길 때가 있다. 아이에게 집보다 하늘보다 땅보다 더 큰 것은 우주라고, 우주가 이 세상이니 우주만큼 큰게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이라고 말해줬던 터라, 아이는 자기의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하고 싶을 때마다 ‘우주만큼’을 수식어로 붙인다.

“엄마, 나는 엄마를 우주만큼 사랑해. 그래서 내가 제일 많이 사랑하는거야.”

라고 말하는 딸에게

“00야, 고마워. 그런데 00는 엄마보다 00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야해. 이 세상에서 00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00이어야해.”

라고 말해주곤 한다. 그럼 스펀지 같은 아이는 

“응, 알겠어.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우주만큼 사랑할게. 대신 엄마는 나보다 조금 사랑할게. 지구 정도? 미안한데, 어쩔 수 없어.”

라고 치명적으로 귀여운 대답을 날린다.


오늘 저녁에 아이가 말 그대로 ‘우주만큼’ 좋아하는 거품 목욕을 하면서 따뜻한 물과 부드럽고 향기로운 비누 거품에 기분이 순간적으로 너무 좋았나보다. 아이가 별안간

“아, 이렇게 행복할 수가!”

라며 교과서적인 감탄을 하는 것이다.(그 순간 아이가 정말이지 책을 읽는줄 알았다)

거의 매일 하는 거품 목욕인데도, 새로운 거품 비누 하나로 이렇게까지 행복해할 수 있는 아이에 대해 내가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을 찰나, 다시 최고조의 행복을 느낀 아이가 나에게 

“엄마, 엄마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 중에 나를 제일 사랑하지?”

물었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아니, 엄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너를 제일 많이 사랑해.”

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응. 근데 엄마, 나는 나를 이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랑하는데,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그러면 안되잖아, 자기를 제일 많이 사랑해야지. 엄마가 그랬잖아.”

라고 말하는 것이다.

“...”

대답을 해야하는데, 도무지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과연 이 아이보다 내 자신을 더 사랑할까? 아니, 그게 맞는걸까? 내 마음도 알 수 없었거니와, 이성적으로도 어떤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내 아이보다 내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과연 옳은걸까?




이론적으로 살펴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사랑 또는 애착은 ‘자녀의 생존 뿐 아니라 부모 자신의 유전적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설명되어 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사랑과 애착과 관련하여 진화심리학적 모델로 설명한 연구는 조금 연식이 된 것들로, 20세기에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Bowlby (1969)는 ‘애착 이론’의 기초를 다진 연구자로 부모와 자녀 간의 애착 형성이 생존을 위한 진화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 Trivers (1972)는 부모의 투자가 자녀의 생존과 번식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진화 이론을 다루며, 부모의 애착과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진화적 이익을 제공한다는 핵심 이론을 제공하였다. Hrdy (1999)는 그의 저서에서 어머니와 자녀 간의 애착과 돌봄이 진화적 적응의 결과임을 설명하며, 부모의 투자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다룬 바 있다. 조금 더 체계화된 이론적 모델을 제시한 연구를 살펴보면, Geary (2000)는 부모의 투자 이론(Parental Investment Theory)을 중심으로 부모가 자녀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자원을 투자하며, 이로 인해 자녀를 보호하고 돌보는 행동을 통해 부모 자식 간의 유대에 관한 진화적 관점을 설명했고, Kaplan et al. (2000)는 내재된 자본 이론(Embodied Capital Theory)과 인간의 생애 역사 이론(Life History Theory)을 바탕으로 부모가 자신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고,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과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역설했다.


결국 20세기에 진행된 이러한 다수의 연구들은 결국 부모가 자신보다 자녀에 대해 사랑과 애착을 가지고 자신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인간 진화의 산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근에 들어서는 ‘부모 자녀 간 사랑의 균형’에 관한 연구 논문이 다수 발표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의 마음 챙김(Mindfulness)이 자녀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관련한 연구들이다.

Duncan et al. (2009)은 마음 챙김을 실천하는 부모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보다 민감하고 반응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는 자녀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건강한 애착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양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 부모의 정서적 안정성에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Zhang et al. (2019)는 마음 챙김이 높은 부모는 자녀의 감정적 불안정성을 줄이고, 적응적 감정 조절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효과는 부모가 자녀와의 상호작용에서 더욱 의식적인 행동을 하고, 이로 인해 자녀의 정서적 발달을 돕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Yan et al. (2021) 또한 마음 챙김을 실천하는 부모가 자녀와의 애착 관계에서 더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상호작용을 형성함으로써 자녀의 감정 조절 능력과 전반적인 심리적 안정에 기여한다고 주장했고, Vernon & Moretti (2024)는 마음 챙김을 실천하는 부모는 자녀의 애착 불안이나 회피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이는 자녀의 내면적 또는 외부적 문제 행동을 예방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밝혔다.

부모의 '마음 챙김' 다음으로 주목할만한 것은 부모의 ‘자기 연민(Self Compassion)’과 자녀 양육 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이다. '자기 연민'은 자신에게 친절하고 이해심 있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특히 자신이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자책하는 대신, 따뜻하고 수용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마음챙김도 바로 이 '자기 연민'의 한 요소에 해당한다. Jefferson et al. (2020)은 자기 연민이 높은 부모는 스트레스에 덜 반응하며, 자녀의 행동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또한 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부모의 자기 연민을 증진시킨 경우 부모의 스트레스와 우울 증상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이를 통해 자녀가 어려운 행동을 보일 때 부모가 더 유연하고 공감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자기 연민이 증진된 부모의 자녀는 외현화 및 내현화 문제 행동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부모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관계가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Lathern et al. (2020)은 자기연민을 잘 실천하는 부모는 자녀가 어려운 감정을 경험할 때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보다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로 반응함을 설명했다. 또한 자기연민을 통해 부모 자신의 스트레스를 더 잘 관리할 수 있으며, 이는 자녀의 정서적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주장했다.

이들과 유사한 맥락으로 Risi et al. (2021)의 연구에서는 부모의 정신 건강이 자녀와의 애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는데, 부모가 자신의 정신적 웰빙을 유지할 때 자녀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며, 이는 건강한 부모 자식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Wilson et al. (2024)는 부모가 자녀의 요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구도 관리하는 것이 자녀의 심리적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부모가 정서적 균형을 잘 유지할 때 자녀의 학업 참여도와 정신적 웰빙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부모가 자식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자신에게보다 더 큰 애착으로 자녀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증명된 것임은 분명하나, 이러한 부모 희생적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기 돌봄이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기 연민, 마음 챙김 등을 통해 부모가 자기 자신을 아끼고 돌봐줄 수록 아이에게 더 많은 정서적, 심리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너무도 아끼는 마음으로, 자녀에게 최선의 것을 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부모인 나를 반드시 아껴주고, 돌봐주고 챙겨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다. ‘부모의 희생’이 정답이 아니다. 

내 아이를 더 사랑하고 내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최대한 내 자신을 돌봐주어야 한다. 살뜰히 챙겨주어야 한다. 내 자신이 아낌없이 보살핌을 받고 충만해진 마음에서 넘쳐 흐르는 사랑과 행복, 정서적 안정감이 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나의 친구에게는 내 딸과 같은 나이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무언가 어려운 부탁을 할 때면(예를 들면 둘이 똑같이 나눠 먹고있는 엄마 몫의 초콜렛을 자기에게 더 달라고 한다던지) 꼭 이런 말을 한다고 했다.

“엄마, 나 줘, 나 엄마 아들이잖아, 응?”

그 여섯살 배기의 속을 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런것도 못주냐는 말일테다.

나의 딸 아이도 내가 무언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엄청 화가 날 때면 

“엄마같이 나쁜 엄마가 세상에 어딨어? 고작 이런 것도 안해주고!”

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6살인 아이들도 벌써 부모가 자신들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믿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싶은가보다.


아이에게

“너를 엄마 자신보다도 더 많이 사랑해.”

라는 말보다, 

“너를 많이 사랑해주려면 엄마는 엄마 먼저 많이 사랑하고 돌봐줘야해. 그래야 너를 더 많이 사랑해줄 수 있어.”

이렇게 가르쳐준다면,

자신 요구의 거절 또는 좌절 앞에서

“엄마가 돼서 이런것도 못해줘??” 

이런 류의 비난섞인 호소가 아닌,

“엄마, 좀 쉬어야겠다. 여행도 좀 다녀오든지. 그래야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줄 수 있을 것 아냐.”

이렇게 서로를 위한 배려를 하는 멋진 아이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부모가 되어버린 나라도, 돌봄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까지도 자신의 부모에게 사랑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참이나 부족한 철부지 아들, 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현실 자각 타임'이 아닌 '자아 자각 타임'을 권하고 싶다.


내 자아는 ‘부모’가 아니다. 그저 ‘한 낱 인간’이다.

그러니 부디 내가 누구인지 잊지말고, 

언제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인간으로서의 내 자아를 자각하고, 

어쩌다 부모가 되어버린 안쓰러운 철부지 내 자신을 틈나는대로 열심히 담뿍 듬뿍 사랑해주도록 하자.





[참고문헌]

Bowlby, J. (1969) Attachment and Loss. Vol. 1: Attachment, Basic Books.

Duncan, L. G., Coatsworth, J. D., Greenberg, M. T. (2009) A Model of Mindful Parenting: Implications for Parent–Child Relationships and Prevention Research. Clinical Child and Family Psychology Review, 12(3), 255–270.

Geary, D. C. (2000). Evolution and proximate expression of human paternal investment. Psychological Bulletin, 126(1), 55-77.

Hrdy, S. B. (1999) Mother Nature: A history of mothers, infants, and natural selection. Pantheon Books.

Jefferson, F. A., Shires, A. McAloon, A. (2020) Parenting Self-compassion: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Mindfulness, 11, 2067–2088.

Kaplan, H., Hill, K., Lancaster, J., & Hurtado, A. M. (2000). A theory of human life history evolution: Diet, intelligence, and longevity. Evolutionary Anthropology: Issues, News, and Reviews, 9(4), 156-185.

Lathren, C., Bluth, K., Zvara, B. (2020) Parent Self-Compassion and Supportive Responses to Child Difficult Emotion: An Intergenerational Theoretical Model Rooted in Attachment. Journal of Family Theory & Review, 12(3), 368-381.

Risi, A., Pickard, J. A., Bird, A. L (2021) The implications of parent mental health and wellbeing for parent-child attachment: A systematic review, PLoS ONE, 16.

Trivers, R. L. (1972) Parental investment and sexual selection. Sexual selection and the descent of man, 136-179.

Vernon, J. R. G  & Moretti, M. M. (2024) Parent Emotion Regulation, Mindful Parenting, and Youth Attachment: Direct and Indirect Associations with Internalizing and Externalizing Problems. Child Psychiatry & Human Development, 51(3), 514-528.

Wilson, K. J., Nguyen, T. H., McKinne, C. (2024) Parent-child relationship quality and emerging adult internalizing and externalizing problems: empathy as a pathway. Current Psycholog, 43, 2875–2886.

Zhang, W., Wang, M., Ying, L. (2019) Parental Mindfulness and Preschool Children’s Emotion Regulation: the Role of Mindful Parenting and Secure Parent-Child Attachment. Mindfulness, 11(6), 1373-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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