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섬집아기'에서 발견되는 아동학대 정황과 시적 은유에 관한 통찰
나의 아이는 생후 100일부터 통잠을 잤을 정도로 수면에 있어서는 완벽한 아이이다.
생후 100일에도, 4살까지 낮잠을 잘 때에도, 밤잠 한 번만 자기 시작한 후부터 6살인 지금까지도 아이는 항상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잠이 든다. 하지만 체력이 넘쳐나는 아이는 내가 아이를 재우려고 침대 방 불을 끄는 그 찰나에 꽤나 괴로워하는데, 이유인 즉슨 눈 감고 잘 시간이 되었으나 본인의 몸은 너무나 쌩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면이 집안 내력인 부모의 꿀잠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는 이따금
“아잉, 나는 진짜 잠이 하나도 안와 엄마.”
라는 말을 마치자 마자 새근새근 잠이 들기도 해 나를 좋은 의미로 놀라게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아이가 정말이지 넘쳐나는 체력을 조금밖에 소진하지 못한 어느 날에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 누운 채 어시장에서 손님에게 간택당해 갓 잡아올린 광어마냥 세차게 파닥거리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이는 나에게 어김없이
“엄마, 자장가 불러줘. 그거, 엄마가 섬 그늘에.”
라고 요청한다.
아이가 그 노래를 좋아하는 것인지, 내가 자장가 한 곡조 신청을 받을 때마다 그 노래를 부른 탓에 익숙해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그녀의 자장가 선곡 1번은 ‘섬집아기’이다.
섬집 아기
작곡: 이흥렬
작사: 한인현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트르륵--- 철썩-, 쏴------ 철썩.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가, 그야말로 완벽한 수면용 백색소음 또는 ASMR.
이 얼마나 나도 모르게 잠들기에 십상인 환경인지.
엄마는 그렇게 아기를 집에 혼자 남겨두고 섬 그늘에 굴을 따러 나갔나 보다.
물론 이는 지금이라면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고도 남을 법한 일이다. 부모로서 자녀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먹여 살리는 것 또한 엄마의 의무이기에, 굴을 따 팔아야만 아이를 먹이고 입힐 수 있는 엄마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 동요의 2절이 시작된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비록 그녀의 몸은 섬 그늘에, 그녀의 손은 굴과 조새(굴을 따는 데 쓰이는 갈고리 모양의 도구)에 가 있을지언정, 다른 모든 감각, 마음과 영혼은 온통 아이와 아이가 머무는 단칸방에 쏠려있음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노랫말 속 시적 은유의 정수.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설레다:
(동사)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
(동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자꾸만 움직이다.
지금은 벌써 여섯 살이 된 아이의 영아기 시절, 아이가 밤잠에 들고나서 육퇴를 한 후에도 나는 마음 놓고 샤워를 하지 못했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씻곤 했다. 혹시나 아이가 자다 깨어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에서 였다.
남편의 귀가가 많이 늦었던 어느 날, 그날따라 몹시도 피곤했던 내가 빨리 씻고 잠들고 싶은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재빠르게 샤워를 시도할라치면, 샤워기에서 내 몸을 따라 떨어지는 물소리도, 욕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도, 윗집에서 양치하는 소리도 전부 아이가 깨어나 우는 소리로 들리곤 했다.
이런 경험을 해본 부모라면, 갈매기 울음소리에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자꾸만 들썩거려’ 굴 따기를 멈추고(엄마는 결코 충분히 굴을 딴 것이 아니었다. 굴 바구니가 다 차지를 못했으니) 모랫길을 달려갔다는 노랫말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모래 밭 달리기는 체력 단련 또는 극기 훈련으로나 하는 일, 엄마는 혼자 남겨둔 아이 걱정에 모랫길 달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가슴이 아리고 먹먹한 한 편 따스하다. 사랑이다.
섬 집에 살며 아기가 자는 틈을 타 굴을 따는 여인에게 갈매기 우는 소리가 강변북로 바로 옆에 들어선 아파트 거주자에게 자동차 지나다니는 소리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새삼 갈매기 울음소리에 마음이 설렜단다.
나에게 욕실의 모든 소음이 그러했듯, 굴따는 엄마에게는 그 갈매기 울음소리가 혼자 남겨두고 온 아기의 울음소리로 들렸으리라.
‘가만있어 보자, 저 갈매기 울음소리 끝에 어렴풋이 섞여 들리던 그 소리가 혹시 우리 아가의 울음소리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 다 채우지 못한 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모래 길을 달려 집으로 간다.
결국 엄마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아이를 두고 잠시나마 굴을 따러 섬 그늘에 갔지마는, 실제로는 들리지도 않은(‘아이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이라는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모래 길을 한달음에 달려 아이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엄마의 직감은 항상 옳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이 경우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 언제나 옳은 직감을 이겼다. 아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결국, 동요 ‘섬집 아기’의 노랫말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동학대 정황이 아니라 서민적 삶의 회한과 그러한 상황에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부모의 깊은 사랑이다.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혼자 파도소리를 들으며 쓸쓸히 잠든 아이에 관한 애처로움 또는 가난한 엄마의 고달픔과 구슬픔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그저 아름답기만 한 사랑 이야기다.
오늘따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며 나의 사랑을 아낌없이 전해보는 밤이다.
TMI: 아기 울음 소리와 엄마와의 상관 관계
연구에 의하면 아기 울음은 엄마에게 여러 가지 생리적,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아기 울음은 부모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며, 특히 엄마의 경우 본능적으로 아기의 필요에 반응하게 되는데, 이러한 반응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호르몬 반응이다.
아기 울음은 엄마의 옥시토신 분비를 증가시켜 모유 수유를 촉진하고, 엄마와 아기 사이의 애착을 강화한다. ‘사랑의 호르몬’ 이라는 별명을 갖는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의 울음에 더욱 빠르게 반응하게 하고, 보호와 양육의 욕구를 자극하며, 프로락틴 분비를 촉진하여 모유 생산을 활성화 시킨다. 모유수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지릿- 젖이 도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기 울음 소리를 들으면 아이에게 젖을 주도록 몸이 설계된 것이다. 그만큼 아기 울음 소리는 생존과 직결된다.
두 번째, 뇌 반응이다.
연구에 따르면, 아기 울음을 들으면 엄마의 뇌에서 측두엽과 전두엽 같은 감정 처리와 의사결정 관련 영역이 활성화 된다고 한다. 특히, 아기의 울음은 엄마의 청각 피질과 변연계를 자극하여 감정적 연결을 강화하고, 아기의 요구를 신속하게 파악하게 한다. 울음 소리는 엄마의 뇌에서 공감을 촉진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를 높일 수 있다.
세 번째, 심리적 반응이다.
아기 울음은 엄마에게 보호 본능을 일깨우고, 아기의 안전과 편안함을 보장하기 위해 빠르게 행동하게 만든다. 또한, 아기 울음에 대한 엄마의 반응은 양육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울음에 자주 대응할수록 아기와의 신뢰 관계가 더 견고해진다.
네 번째, 아기 울음을 들으면 엄마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는 등 신체적으로도 반응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즉각적인 행동을 유도하는데, 이는 아기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준비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신체적 반응이다.
결국 아기의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엄마의 신체와 정신에 깊은 영향을 미쳐 아기를 돌보고 양육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반응을 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