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이 대상에게 주는 영향과 부모의 새로운 별칭에 관한 제언
사람은 살면서,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서 참으로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경험을 하게된다.
미성년자 시절 언젠가 처음으로 ‘00씨’라고 불렸을 때가 기억난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에 듣던 ‘선배님’이라는 호칭도 나 자신을 한층 성숙하게 느껴지게 해주었다.
직장에 가서는 직급이나 직위로도 불렸는데, 직급 또는 직위가 바뀔때마다 얼마간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기분 좋은 변화였다. 한 편으로는 하루아침에 바뀐 호칭을 다른 사람들이 실수도 한 번 없이 바꿔부르는 것에 감탄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다. 마지막 회사에서는 그저 ‘00님’으로 불렸었고, 나는 그렇게 나 또는 동료를 부르는 방식이 좋았다.
결혼식 즈음에 나는 신부님, 남편은 신랑님으로 불렸던 건 그 때도 지금 생각해도 마뜩잖은 일이다.
이후 임신을 하고는 병원과 산후조리원 등에서 ‘산모님’으로 불렸고,
출산 이후에는 ‘어머님’ 또는 ‘00이(아이) 보호자님’으로 불리는 중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때부터는 오랫동안 ‘학부모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교육기관 이외의 장소에서 아이의 양육자에게 ‘부모님’이 아니라 ‘보호자’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생각건대 아이를 키우는 주체가 반드시 부모에 한정되지 않는 상황이 많아서일 것이다. 조부모 또는 일가 친척 또는 그 외의 관계자가 아이를 주로 양육하는 경우도 있기에 덮어놓고 ‘부모님’이라는 용어로 양육자를 통칭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보호: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결국 보호자라 함은 어떤 대상을 신체적, 정서적 모든 면에서 두루두루 잘 보살펴 돌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보호’라는 행위가 부모 역할의 전부인양 생각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사전적 의미대로 ‘내 아이에게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에만 부모의 모든 신경과 관심, 자원을 쏟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위험한 일들도 마주하게 되고 곤란한 상황도 겪게 된다. 그게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되면 그 아이가 겪어 내며 성장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을 ‘보호’라는 미명하에 아이가 그 모든 것들과 마주하지 못하도록 재량을 펼치게 될 것이다. 혹시 부모님이나 배우자 등이 병원 치료를 받을 때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보았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보자. 보호자로서 자연스레 그 환자의 병증의 경중과는 무관하게 그가 해야할 모든 일들을 대신 해주고 거동을 제어하게 되지 않던가.(“일어나지 말고 그냥 누워있어” 등과 같이)
말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말로 불리다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들게 되기도 한다.
내 아이를 그 어떤 곤란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한 ‘부모 자신의 판단으로’ 자녀의 친구 관계에도, 전공 선택에도, 장래 희망에도, 삶의 계획에도 손을 뻗치려 한다. 요즘 인기 있는 학업 성적 관련 컨설팅 또는 자녀 교육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부모들 중 많은 수가 본인의 아이가 반드시 의사가 되어야 한다던지, 꼭 특목고에 진학해야한다던지, 어떤 전공을 하는게 좋겠다던지, 죄다 본인들이 정하려고 드는 것을 목격한다. 나는 부모 스스로 자녀에게 ‘자기 주도 학습’을 강조하면서도 자녀의 삶의 모든 면에서 주도성을 빼앗는 이런 웃지 못할 현상은 상당 부분 ‘부모=보호자’라는 관념 하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 자신들이 생각하는 소위 ‘좋은’ 또는 ‘안정된’ 길로 아이를 이끌어야 결과적으로 아이를 '잘 보호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넘어선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말이 주는 힘과 유사한 맥락으로 사람은 어떻게 불리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이름을 비롯하여 별명, 호칭 등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구분짓는 라벨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과, 그 불리는 호칭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과 관련한 연구는 오래 전에서부터 최근까지도 매우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Zwebner et al. (2017)은 사람들이 이름에 대해 갖는 인식이나 고정관념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 관련한 것이다. 이는 특정 이름에 대해 대중이 갖는 고정관념에 의해 사회적 기대를 받게 되면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결국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그들의 이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불리는 이름에 따라 자신이 보여지는 방식을 맞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로, 이는 이름이 단순한 라벨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요소임을 증명한다.
Bao & Cai (2022)는 이름이 직업 결정과 학업 또는 직업 성취에 영향을 미침을 밝혔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기대나 편견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크며, 이는 기회와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더 흔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규범에 더 쉽게 통합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배척과 같은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름이 다양한 맥락에서 개인이 어떻게 인식되고 행동하는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 연구이다. Fang (2023)은 이름이 개인의 행동과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이름이 개인의 정체성, 사회적 상호작용, 학업 성취, 심리적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이름은 ‘사회적 자극 가치’를 지니며, 개인의 행동과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름이 독특하거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수록 개인의 자존감과 성취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연구로 Zhang et al. (2021)은 독특한 이름을 가진 CEO들은 자신을 더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인물로 인식하며, 이를 통해 전통적인 경영 방식과 다른 혁신적인 전략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연예인(특히 래퍼)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독특하고 뇌리에 남을만큼 강력한 예명을 사용하는 것이 어찌보면 그들의 창작 활동과 성과를 촉진하기 위한 매우 영리한 전략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또 다른 유명한 연구로서 Kalist & Lee (2009)는 이름의 선호도가 낮을 수록, 특히 이름이 고유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을수록 청소년들이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더 높음을 증명했다. 또한 이름이 개인의 자존감과 행동 패턴에까지도 영향을 미침을 주장했는데, 연구 결과 이름의 인기가 낮은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느끼고, 그 결과 범죄와 같은 반사회적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이름이 개인의 사회적 적응과 심리적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이다.
이렇듯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는 그 사람의 정서와 행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는 활발히 사용하던 말이지만 바뀌어야 할 용어가 더러 있다.
그 중에는 ‘학부형(學父兄)’이라는 단어가 있다. 예전에는 학부모를 학부형이라고 불렀다. 한자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이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부재할 경우 어머니니가 아닌 장남이 가장 노릇을 하던, 남자만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수 있던 시절의 용어인지라 요즘에는 이를 ‘학부모’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아이의 건강한 양육과 바람직한 양육자의 마음가짐을 위하여 ‘보호자’ 말도 조금 바꾸어 부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지자(支持者):
어떤 사람이나 단체 따위의 주의ㆍ정책ㆍ의견 따위에 찬동하여 이를 위하여 힘을 쓰는 사람.
아이가 개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징검다리를 건너려고 할 때
“위험해”, “안돼”, ‘하지마, 큰일나” 라고 말하는 보호자가 아니라,
징검다리 중간에 돌 하나를 더 놓아주며
“하고 싶으면 한 번 해봐”
“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빠져도 괜찮아. 내가 보고 있어”
“물에 빠져 신발 젖으면 업어줄게”
“근데 내 생각에 넌 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아이의 선택에 용기를 주고 시도에 도움을 주는 충실한 지지자.
부모가 보호자가 아닌 지지자로 불린다면 과연 아이의 선택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게될까?
아이의 이성 친구를 반대하고, 장래 희망을 대신 써주며, 진로를 결정해주고, 결혼에 반대하게 될까?
사람은 도전을 통해 성취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며, 스스로 결정할 때 책임감과 독립심을 얻는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아이의 도전을 가로막고, 실수 할 기회를 빼앗고, 아이 대신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면 아이는 성장할 수 없다. ‘보호’라는 단어는 ‘간섭’이나 ‘통제’를 유의어로 갖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의 신뢰를 받으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증가하고 더 나은 성과를 이루는 경향이 있으며 (Fute et al., 2023), 부모가 자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지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녀의 충동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며 반사회적 행동을 줄이는데 기여할뿐 아니라 (Jones et al., 2007) 부모의 지지적 행동은 자녀의 삶의 만족도와 웰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Young et al., 1995).
여기 하나의 묘목이 있다.
‘보호자’는 그 나무가 비도, 미세먼지도, 세찬 바람도 맞지 않게 씌워준 가림막과 같고,
‘지지자’는 그 나무가 비를 너무 많이 맞아 뿌리가 흔들릴 때, 태풍을 만나 제대로 서있지 못할 때, 결코 쓰러지지 못하게 옆에 딱 버티고 선, 그 나무보다 몇 배는 두껍고 튼튼한 지지대와 같다.
가림막이 없이 비와 먼지와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성장한 그 나무는 비록 뿌리가 일부 드러나고 먼지가 끼이고 상처가 생겼을지라도 강한 생명력을 가진 멋진 나무로 성장하리라.
가림막은 없지만 두터운 지지대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그 어린 나무는 거센 비바람을 수없이 만날지언정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라.
너의 결정에 찬성해
너의 생각을 지지해
너의 선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게
나는 이렇듯 나의 자녀에게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싶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개인이 특정한 과제나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신념.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안한 개념으로, 자기 효능감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며, 실패를 극복하는 데 더 강한 동기를 갖게 된다.
[참고문헌]
Bao, H. & Cai, H. (2021) Psychological and Behavioral Effects of Personal Names in Real World: Evidence and Theories. Advances in Psychological Science, 29(6), 1067-1085.
Fang, Z. (2023) Names and individual differences: a systematic review. Current Psychology, 42, 28160–28166.
Fute, A., Sun, B., Oubibi, M. ( 2023) General Self-Esteem as the Mechanism Through Which Early-Childhood Parental Trust and Support Affect Adolescents’ Learning Behavior: A
Jones, S. E., Cauffman, E., Piquero, A. (2007) The Influence of Parental Support Among Incarcerated Adolescent Offenders. Criminal Justice and Behavior, 34, 229-245.
Kalist, D. E. & Lee, D. Y. (2009) First Names and Crime: Does Unpopularity Spell Trouble?. Social Science Quarterly, 90(1), 39-49.
Young M. H., Miller, B. Norton, M., Hill, E. (1995) The Effect of Parental Supportive Behaviors on Life Satisfaction of Adolescent Offspring.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57, 813-822.
Zhang, Y. A., Zhu, D. H., Kang, Y. (2021) Being Extraordinary: How CEOs' Uncommon Names Explain Strategic Distinctiveness.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42(2), 3231.
Zwebner, Y., Sellier, A., Rosenfeld, N., Goldenberg, J., Mayo, R. (2017) We Look Like Our Names: The Manifestation of Name Stereotypes in Facial Appear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4), 527-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