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보이는 것과 실제 행복감 간의 상관관계 없음에 관한 무논리 소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직장을 몇 년 다니다 대학원에 진학했기에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도, 결혼에 대한 계획 또는 기약도 없는 상태였다.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논문 공장 공장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나는 당시 내 연구 주제에 심취해 학구열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학구열 보다는 사랑에 불타오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한창의 젊은 나이에, 어떤 식물도 3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지하 연구실에서(우리들은 그 곳을 ‘던전-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몬스터들이 모여있는 소굴’이라 불렀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공부하고 논문을 쓰며 보내는 삶을 살던 내가 대학원 생활의 우울함을 연구로 승화시키는 것에도 이골이 날 때 즈음,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라 내가 일부러 휴양지인 발리로 출장을 가고자 발리 학회를 선택했던 것인지 우연찮게 꼭 프로젝트 성과 제출이 필요했던 논문을 투고하기에 그 곳에서 열리는 학회가 적당해서였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발리에 나홀로 출장을 가게 됐다.
본래 학회 참석 차 출장을 다녀오게 되면 해당 학회에 열심히 참석한 후 귀국하여 연구실 동료들에게 학계 동향을 브리핑하는 것이 관행이나, 그 당시의 나는 어차피 혼자서 가게 됐으니 내 논문을 발표하는 날만 몇 시간 학회에 참석하고 나머지 출장 기간에는 발리에서 완벽한 휴양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갔다(물론 이건 지도교수님께는 아직도 비밀이다). 비록 출장이긴 했지만 낭만의 휴양지 발리에서 홀로 젊을을 불태워보리라 다짐했었다.
나는 당시까지 혼자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전혀 없어서 ‘나홀로 여행’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내가 사비를 추가해 묵기로 한 그럭저럭 괜찮은 발리의 한 호텔 프라이빗 비치의 썬베드에 누워 비현실적으로 파랗디 파란 하늘에 행위 예술 작가가 흰 유화 물감을 온 몸에 묻히고 뒹군 듯한 질감과 형태의 뭉게 구름을 배경으로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공연의 관객이 된 양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멍때리는 내 자신을 상상하며 더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하나 처음 가보는 외국의 휴양지에서 고독과 사유를 즐기는 나홀로 여행의 환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곳 발리에서 던전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고립감과 상실감을 경험했다. 애초에 나라는 인간 타입에게는 나홀로 여행 자체가 맞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낯선 자극을 느껴보는 일들의 연속이다. 어떠한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또는 낯선 자극을 느낄 때(예를 들면 처음보는 음식을 맛보았을 때, 이국적인 바닷물의 색깔을 보았을 때와 같이) 그것을 즉시 옆 사람에게 표현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큰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산해진미를 맛볼 때에, 황홀한 절경에 취할 때에도 그 감동과 감흥을 함께 나눌 대상이 없으니 뭐랄까, 혼자 VR 안경을 쓰고 가상현실 세계에서 접속해 잘 만들어진 가짜 현실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대략 4-5일에 걸친 여행일정 내내 처절히 외로웠고 매우 깊은 고독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때 발리에서 나는 다시는 혼자서 여행하는 일 따윈 없을것이라고 내 자신에게 다짐을 했더랬다. 발리는 그렇게 나에게는 외로움과 고독으로 점철된 섬이 되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남편과 딸과 함께 동남아 휴양지에 여행을 왔다.
오늘도 아침에 느긋하게 호텔 조식을 먹으며 앉아있는데,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모여 조식을 먹는 사람들 틈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 한 젊은 남자가 눈에 띄었다. 연인이나 신혼부부를 비롯해 가족단위, 심지어 3대에 걸친 대가족까지도 함께 휴양을 즐기기 위해 찾는 이 곳에서 홀로 투숙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에 유독 그에게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의 표정과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나로 하여금 10년도 훨씬 전의, 식당, 카페, 비치 썬베드, 마사지샵 가릴 것 없이 발리의 어느 곳에서나 혼자서 고고히 앉아있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아름다운 롱 비치 원피스를 차려입고 잘 셋팅된 헤어에 눈꼬리가 올라간 선글라스를 끼고 도도히 앉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젊지만 암울한 시절의 모습이다.
“밥 제대로 앉아서 안먹으면 스노클링도 없어!!”
“어어!! 그만 놀고 한국 갈까? 가??”
“자꾸 엄마 아빠 부르면서 혼자 안 놀 거면 그만 놀고 방으로 가자! 엄마 아빠도 좀 쉬어야지!!”
“좀 그만해!! 이제 다신 여행 안온다!!”
이런 류의 가능한 모든 협박에 가까운 회유를 펼치는 나와 내 남편의 얼굴에는 여행이나 휴양의 여유로움 또는 즐거움은 전무하고 솟구치는 짜증만이 이글거린다. 나의 머리는 산발이고, 원피스는 어제 입었던 것인지 그제 입었던 것인지 또는 새로 꺼낸 것인지 기억조차 가물하다. 내가 이런 극한의 짜증으로 인한 피로감을 경험할 때면, 비록 그다지 알맞은 용도는 아닐지라도 자주 떠올리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다.
나는 비록 아무리 지치고 피곤하고 혼이 다 빠질만큼 정신사나운 챗바퀴 통 속을 매일 뼈와 살이 닳도록 굴러다니는 것 같은 고됨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이 예전의 고상해보이던 삶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좋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이 태어나기 전의 그 삶이 마치 살아있지 않은 자들이 사는 저승이나 다름 없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힘에 부칠때면 나는 생각하곤 한다. 힘이 들면 또 어떠랴, 그래도 나는 이승에 살고 있는걸. 아무리 고상하고 고매하고 우아아할지라도 저승의 삶은 부럽지가 않은걸.
지금은 동남아 휴양지까지 놀러와서도 눈 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하루종일 꾸지람만 들은 가여운 딸을 침대의 중앙에 재워두고 침대의 한 쪽에서는 남편이 하루종일 찍은 딸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킥킥 거리는 중이고, 침대의 다른 한 쪽의 나는 내일 또 이 아이를 즐겁게 해줄 테마파크와 공연 티켓을 알아보느라 졸린 눈을 부릅뜨며 검색에 한창이다.
다시금 십여년 전, 가슴이 깊이 패인 발목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비치 원피스를 차려입고 도도히 발리의 한 호텔의 프라이빗 비치를 거닐 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혹여 고아하고 여유롭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실상 그 때의 나는 퍽이나 처량했다.
발리의 바닷바람은 무척이나 후텁했지만, 나는 뼛속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에 몸을 떨었더랬다.
지금의 나는,
눈뜨자마자 수영한다며 새벽같이 잠에서 깬 아이와 새벽 바다 수영을 하고, 씻을 겨를도 없어 짠물에 떡이된 머리를 질끈 올려묶은 채 아이가 자기 원피스랑 비슷하게 입자며 골라준 원피스를 실랑이 끝에 마지 못해 뒤집어 쓰고는 온갖 짜증과 피곤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나는,
참,
참으로,
정말이지 행복하다.
그 블랙의 섹시한 비치 원피스를 입고 애써 행복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해변을 거닐던 그 때의 나는 꿈에도 몰랐다. 언제간 이런 노곤함과 초췌함 속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행복감을 느낄 날이 온다는 것을.
오늘 아침 식당에서 홀로 조식을 먹었던 그대들에게도 언젠간 이런 행복한 날이 찾아오길.
그러니 혹여나 조금 외롭더라도 혼자인 지금을 꼭 즐겨주길.
이 생을 여행하는 모든 삶의 여행자들이 행복하길 바라 마지 않는,
아름다운 휴양지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