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한분이 개인적으로 직장 상사가 조조 같은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회사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면서 그렇게 연결은 잘 해보지 않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옛날에 어떤 드라마에서 직장생활을 그리면서 덕이 있는 분을 유비로 그리고, 날카롭고 일을 추진력 있게 해 나가시는 분을 조조에 비유했던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MZ 중에도 Z 세대에 해당하시는 분은 그 드라마를 모르실 것이고, M세대와 그 이전 X 세대 그 이상 되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사극에도 많이 나오는 남자 주인공 분이 거기도 나오셔서 유비 역할을 하셨지요.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유명한 궁예가 활약했던 우리나라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견훤 역할을 하셨던 배우님 같습니다. 성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전두환 전 대통령의 5 공화국을 다룬 드라마에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을 하셨던 분이지요.
생각난 김에 궁예부터 볼까요?
그가 만일 직장 상사라고 하면 어떨까요?
관심법으로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하면,
그냥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면서 또 저러는구나 싶어서 힘들겠지요.
드라마에서 관심법을 보면 웃긴데, 직접 당하면 아마 무척 싫을 겁니다.
쉽게 말하면 지레 짐작이라 볼 수 있지요.
궁예도 보면 지배층의 사치와 어지러운 나라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에 대한 애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를 바탕으로 실권자가 되어서는, 권력의 단맛에 흠뻑 취해서 맛이 가버린 것 같습니다.
잔혹한 행동까지 하다 보니 사람들이 돌아섰고 왕건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지요.
지금은 그만두신 직장 상사 분 중에 비슷한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높은 분을 모시던 자리에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보는 눈이 높고, 사람들을 만나면 대충 다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 분을 보면서 아,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를 바로 느꼈고,
언행 등을 훨씬 더 조심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실적 없이 포장을 많이 하셨는데 본인 생각보다 더 이른 시기에 퇴직을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이 다니셨던 회사 분을 만나서 알게 되었는데 높은 분을 모시던 자리에 있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까웠지요.
중국 삼국지로 와서 비교를 해볼까요?
유비는 우유부단하고, 관우의 죽음에 격분해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오나라로 진격했다 이릉에서 육손에게 크게 지고 쫓겨왔지만, 확실히 정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소의 휘하에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조운도, 공손찬 밑에 있다가 공손찬이 원소에게 진 후,
유비 휘하에 들어왔지요. 아름다운 관계라 생각합니다.
조자룡은 형주에서 조조군에 유비가 쫓길 때 훗날 유비 사후 왕위를 물려 받는 유선을 구해왔지요. 그때도 유비는 당시 유선의 이름 아두를 바닥에 던지며, 이 아이 때문에 소중한 내 사람을 잃을 뻔 했다며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때 어린 아이를 바닥에 내던져 그때부터 유선이 상태가 안 좋아진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유비와 조운의 관계를 보면 서로를 위하는 상사와 부하의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조운은 이후 촉의 오호 대장군의 한 사람이 됩니다.
참고로, 촉의 5호 대장군은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으로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유비의 덕과 정이 빛나는 장면이 관우와의 관계입니다.
우선 이들과 장비는 ‘도원결의’를 맺어 의형제가 되었지요. 한날 한시에 태어나진 못했지만 신의를 지키고 함께 가자고 다짐한 그들의 모습은 복숭아 꽃이 휘날리듯 아름다우면서도 의리와 신뢰가 있는 멋있는 관계였지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형 동생하며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배신이나 사기만 없으면 참 좋은 관계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우는 서주에서 유비가 조조에게 패한 후, 인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조조의 휘하에 들어갑니다.
조조에게 항복이 아니라 한 왕실에 항복하는 것이며 유비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떠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지요. 당시 조조는 유비가 살아있을지도 미지수이고, 설령 살아있다고 한들 땅 한 자락 없는 유비와 비교할 때, 황제를 보필하고 있고 천하를 두고 다투고 있을 정도로 세력을 형성한 자신이 지성으로 잘해주면 내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하고 관우의 조건을 받아 들입니다.
그때부터 관우에 대한 조조의 남다른 대우가 시작되지요. 온갖 선물과 잔치 등이 이어집니다.
주도성과 침착성 그리고 추진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여러 인재들이 몰리는 조조의 진영에서 이렇게 좋은 대우를 해주면 넘어가기 쉬울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과 대우 때문에 상사로써 조조를 좋아하는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지요.
의리와 충의로 삼국지 등장 인물 중 거의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답게 유비와의 의형제 의리를 지키고자 받은 선물을 쓰지 않고 모두 그냥 쌓아 둡니다. 나중에 유비를 찾아 떠날 때 쌓아 둔 그대로 돌려주지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인스타의 수많은 자랑질과 그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그 선물 공세 중 유일하게 반응한 것이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관우에게 선물할 때였습니다.
반색하는 관우에게 다른 선물들은 다 시큰둥하더니 그리 좋냐고 조조가 묻습니다. 역시 무장이라 좋은 무기나 명마에는 큰 관심을 보이는구나 싶었던 것이지요. 드디어 선물이 먹히는구나 생각도 했을 것이구요.
그런데, 거기에 대고 관우는 유비 형님을 찾으러 갈 때 한달음에 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하며 조조에게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의 부하들이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다. 헛수고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옆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이렇게 조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주고 애써서 선물한 사람 성의가 있는데,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 되는 거지. 쩝”
그때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제 기억엔 장료인데,
장료가 관우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그런 말을 건넵니다.
관우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고, 입 바른 말은 못 하고, 형님이 살아 계시면 돌아가겠다고 약조를 받고 왔는데 왜 말을 못 하냐며 반문합니다.
다만, 본인도 내심 미안했는지 살려주고 배려해 주신 만큼 떠나기 전에 공을 세우겠다고 말하지요.
실제로 후에 원소와의 대전에서 원소군의 맹장이라는 안량과 문추에게 조조군이 고전했을 때 둘을 날려 버립니다.
마치 동탁군의 화웅에게 동맹군이 고전할 때 그를 없앤 것처럼 말이지요.
이래서 정이라는 게 무서워서 땅도 제대로 없이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때로 쫓겨 다니는 유비를 관우나 조운 같은 사람들이 계속 따라다닌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정성과 인덕이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삼고초려’ 지요.
제갈량도 알았을 것입니다. 천하삼분지계까지는 가능하겠지만, 과연 이 우유부단한 유비가, 저 과감하고 치밀한 조조를 이기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을까? 한 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에게 열세였고 쫓겨 다니다가도 결국 천하를 제패했는데, 유비의 상대는 여포가 아니라 조조인데 가능할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고생하다 제 명까지 살지도 못하고 일찍 죽는 것 아닐까 싶었을 것입니다.
결국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 중원 정벌이 안 되어 50대의 나이에 죽지요. 당시엔 환갑이면 오래 살았다고 하던 시대였는데, 초야에서 신선 놀음하며 살았으면 아마 50대에 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신 역사에서 우린 제갈공명 그리고 그의 출사표를 보지 못했겠지요. 이래서 인생은 아이러니한 것이고 한번 살아볼 만하며 도전해 보고 열심히 해볼 만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여러분들은 유비나 조조 혹은 삼국지의 다른 인물 중 어떤 사람이 상사 혹은 동료나 후배 구성원이 되어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유가 있겠지요? 혹은 스스로는 어떤 인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후를 좋아합니다. 순욱보다.
원소나 하후무처럼 아둔하고 고집 있으며 권위의식 있는 사람은 피하라는 말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런 사람들 밑에 있다가는 스트레스 받는 정도가 아니라 더 안 좋은 일을 겪을 수 있을 것이거든요. 사마 중달이 지금 중국에서도 종종 피해야 할 사람의 대명사로 불린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아, 동탁이 상사고, 부하가 여포라면 더 아찔할까요?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지육림에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공명정대하게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술과 기름에 건강이 상해서 제 명까지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도 걱정해야 할 것 같구요. 제갈량이 상사고 관우가 충성스럽고 맡은 바 일을 잘 차리하는 부하라면 좋을까요?
역사는 이렇게 현실에 비추어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와 함께 시원한 한 주 되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