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중국 역사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어지러운 시기 다양한 영웅호걸들이 등장하는 삼국지의 배경인 삼국 시대이고,
그 다음이 초한지의 무대가 되는 춘추전국시대입니다.
그리고, 주원장의 명나라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임진왜란에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국의 침략에 맞선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조명 연합군의 분투 등)
원나라와 고려, 청나라와 조선 시대 (삼전도의 굴욕 등)와 같이,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함께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반면교사가 되는 부분들이 참 많지요.
세계 역사의 흐름에서 받은 영향을 볼 때, 청일전쟁, 아편전쟁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고,
서태후 (청나라), 기황후 (원나라), 측천무후 (당나라)와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구요.
하나씩 중국 역사 이야기에서 살펴보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우리와도 이웃해서 할 이야기가 화수분 같아 소재 빈곤으로 글이 끊길 염려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 이야기를 담은 중국의 책 중 가장 유명한 책은 무엇일까요?
저는 단연 사마천의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책 이름 자체가 역사의 기록이지요.
사마천이라는 인물의 개인사까지 함께 보면 무척 흥미롭습니다.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큰 impact를 주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라 skip 하고,
저는 그가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대한 기록을 완성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시대에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과 같은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상이랄지 작가가 담고 싶어 하는 생각 뿐만 아니라,
이 정도의 엄청난 양의 글을 완성도 있게 마무리했다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하는데요.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모두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2만 6,000여 자의 방대한 양이구요. 가끔은 500 자 원고지 한 장을 채우기도 힘든데 엄청난 양이지요.
더욱이, 이 다섯 부분이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이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 대단하구요.
그의 서술 방식과 인물의 배치 그리고 평가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또한, 단순히 건조한 역사 기록만을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우정과 배반, 이익과 손해, 지혜와 아둔함, 탐욕과 베풂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더욱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책 출간을 해보고 있는데, 과연 이 정도 수준과 분량의 완성도 있는 저서를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독서와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기는 황제 또는 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인물의 전기이고,
표는 연표, 서는 경제, 법률 등 각 분야의 제도의 기록입니다.
세가는 제후국의 역사이고, 열전은 각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지요.
공자가 칭송했다던 백이, 숙제 이야기가 우리에게 익숙한 열전 이야기지요.
기억하시나요?
백이 숙제 주려 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흥부가 기가 막혀 라는 육각수의 노래 가사에도 나올 정도입니다.
앙? 이게 무슨 노래냐구요? 95년도 발표 곡이라고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렇게 아저씨인 것이 탄로 납니다. 95년생 친구들이 같이 회사 다니고 있는 마당에 말이지요.
백이와 숙제는 중국의 은나라, 주나라 시대의 인물로,
고죽국이란 나라의 무려 왕자였습니다.
고죽국의 임금이 왕위를 몰려줄지를 고민하다 셋째인 숙제에게 넘겨주기로 합니다.
셋째 숙제에게 나라 경영이라는 어마어마한 숙제 (home work)를 주네요.
그런데, 고죽국의 임금은 숙제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서 셋째 숙제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런지요?
“아버지가 내가 제일 낫다고 생각하셔서 이미 나로 정하셨으니 내가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첫째인 “백이”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요?
“그건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일이고. 사실 나 그때 불만 많았거든?
첫째인 날 제 끼고, 둘째도 아닌, 셋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장자적통! 내가 왕위를 잇는 것이 맞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어린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한 것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과거 급제한 집안의 자랑으로, 같은 편이었던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과 척을 지고 고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그 측근들을 치려하자, 선죽교에서 그의 부하를 시켜 정몽주를 살해하며 위기에서 가문을 구하는 등 적지 않은 활약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이성계는 그런 이방원을 좋아하지 않고, 둘째 부인의 소생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몸이 좋지 않을 때,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인 세자와 정도전 등을 모두 제거해 버립니다.
권력을 위해서 아버지도, 동생도 없는 잔혹한 모습이지요.
모두가 떠받들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력을 잡기 위해 이런 잔혹함과 갈등은 많이 목격됩니다.
삼국지에서도 한때 천하에 가장 가까웠던 명문가의 원소가 방심 끝에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패퇴하다 죽게 되었을 때 셋째인 원상에게 주군의 자리를 주려 하자, 첫째 아들인 원담이 반발하며 분열이 일어납니다. 조조라는 강적을 앞에 두고 분열. 즉, 적전분열.
필패가 예상됨에도 권력에 눈이 멀어 원상과 원담을 중심으로 패가 나뉘고 결국 조조가 하북을 접수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 외에도, 고구려 말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 case (고구려를 멸망으로 이끌었지요)
그리고, 단종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문종의 동생 세조 (수양대군, 세종 대왕의 아들입니다.) 등 사례는 무궁무진합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은 그만큼 큰 것이지요.
자, 그럼 실제 역사에서 유명한 백이와 숙제는 어땠을까요?
셋째 숙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왕위를 형인 백이에게 내놓습니다.
위의 역사 이야기를 보면, 백이라면,
“그렇지. 원래 내 자리였는데, 생색은 자식. 그래 고맙다. 살려는 드릴께. 아닌가? 후환을 없애?”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공자가 칭송한 백이 숙제 이야기가 아니겠지요.
첫째 백이는 돌아가신 아바마마의 명령이니 당연히 숙제가 보위를 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위가 무슨 물려 받기 싫은 빚 마냥 서로에게 미루다,
백이가 먼저 도망 가고, 숙제도 백이를 따라 도망치고 맙니다.
위의 다른 분들과 참 다른 이야기지요.
결국 둘째 아들인 중자가 임금이 됩니다.
이런 걸 어부지리라고 해야 하나요? 참,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로 갔다가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크게 실망합니다.
부끄러운 세상이다. 우리가 어찌 주나라의 곡식으로 먹고 살아가겠는가.
하며 수양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며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 굶어 죽었다고 하지요.
여러분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백이와 숙제가 공자님 말씀처럼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줘도 못 먹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마천과 공자의 판단은 당연히 전자인데, 무엇이 맞다고 섣불리 단정 짓진 않겠습니다.
생각은 다양하고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역사를 통해 현실을 보고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셨으면 합니다.
다음에 사마천의 사기 중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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