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 반려종의 시선 2장. 아픔과 돌봄에 대하여
그 애에게는 상처가 많았다. 비단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을 기억한다. 오른쪽 앞다리는 부러진 채 눈물자국으로 범벅이던 작은 얼굴. 그리고 삐쭉빼쭉 마구잡이로 솟은 털과 언제 잘랐는지도 모를 만큼 길게 자란 날카로운 발톱.
엄마가 품에서 내려놓자 아이는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않고 한 시간을 가만히 있었다. 당시 십 대였던 내 마음 한편에는 나쁜 생각이 자리 잡았다. ‘얘는 뭐지? 왜 이렇게 꼬질꼬질해? 무슨 강아지가 이래? 귀엽지도 않아….’ 그렇게 두 시간째, 우리 가족은 아이를 넓게 둘러싸고 앉아서 힐끗힐끗 아이를 훔쳐보고 있었는데,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아이는 처음으로 움직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준비해 두었던 물을 마시더니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의 무릎 위로 슬그머니 발을 올렸다. 아이는 일주일 내내 엄마 곁에만 맴돌았다. 처음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는 파래진 혀를 길게 빼물고 헥헥대며 짖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 곁만 맴돈 것은 아마 마음 둘 곳 없던 아이를 조심히 안아 들고 꼬박 세 시간을 토닥여 주며 함께 집으로 함께 온 사람이 엄마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동물이 낯선 우리에게 강아지가 겁에 질리거나 무서울 때 혀가 파래진다고 조심히 일러 주었다. 이 애는 겁이 많으니 번쩍번쩍 안아들지 마라, 큰 소리로 놀라게 하지 마라…. 아이가 온 이후로 우리에게 안 되는 것은 너무 많았고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 집에 온 날 아이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울었다. 결국 새벽에 아이가 있는 거실로 가서 이불을 덮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하울링을 하기도 했고 혀를 한참 내밀고 헥헥대다가 또 가만히 나를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서는 쿰쿰한 냄새가 풍겨 왔고, 내가 곁에 와 있어도 위안이 안 된다듯이 새벽 내내 엉엉 울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다음 날, 결국 뜬눈으로 등교하고 말았다. 졸리기는커녕 하루 종일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꼬질꼬질하고 눈물로 뒤덮였던 얼굴. 쉬는 시간마다 몰래 내지 않은 휴대폰을 붙잡고 엄마에게 아이의 상태를 묻곤 했다. ‘밥은 먹어?’ ‘뭐 해?’ ‘잠은 자?’ ‘계속 울어?’ 같이 시시콜콜하고 별것 아닌 것들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날은 야간자율학습도 제치고 집으로 달려갔는데, 아이는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조금은 뽀송해진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시선을 거두었지만. 그런 아이가 궁금해서 주변을 맴돌고 일부러 아이 곁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나흘, 아이가 처음으로 내 무릎에 살며시 올라왔다.
세상에…. 내 무릎으로 올라오더니 몸을 말고 잠을 자는 것이다! 구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조금은 말끔해진 털과 여전히 축축한 눈가로 다리 한쪽을 올리던 모습. 내가 아이에게 동정과 연민이 아닌 애정을 느낀 첫 순간이었다. 아이가 먼저 다가와 준 것에 감격해서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가만히 아이에게 다리를 내어 주었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아이가 곤히 자는 모습을 보니 저려오는 다리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났고, 아이는 다리의 깁스를 풀게 되었다. 드디어 아이와 산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달 동안 강아지에 대해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은, 강아지에게 산책이란 사람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아이의 삶에서 절대 배제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었다.
걸어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을 말을 들은 뒤,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와 첫 산책길에 올랐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아이는 산책을 극도로 무서워했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만 봐도 짖으며 이내 울어 버리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잘만 걷고 냄새도 맡는데, 우리 아이는 걷지도 않을뿐더러 냄새를 맡기는커녕 울어 버렸다. 결국 오 분도 걷지 못한 채, 집에 데리고 들어와 엄마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에는 걷지 않는 모습이 밉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에는 안쓰러워서 돌이 된 듯한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별의별 희한한 것들을 수반한 아이의 산책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먼저 멀리 뛰어가 아이의 간식을 두고 헨젤과 그레텔처럼 꼬시는가 하면, 나오자마자 아이를 안고 달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내려놓았고, 말을 알아듣는지 듣지 못하는지도 모를 아이에게 애원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자꾸 사람을 모자라게 만들었다.
삽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불현듯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단순히 겁이 나서가 아니라면?’ 혹시 아이에게 어떤 사연이나 트라우마가 있는데 산책을 강행한 거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마침내 들고 만 것이다. 괴상한 산책 프로젝트를 잠깐 뒤로하고, 아이를 소개해 준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아이가 산책을 무서워해요. 이상하죠? 걷지도 않으려 하고 사람이 지나가면 너무 무서워해요. 왜 그럴까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한참 말이 없다 이윽고 “사실은…” 하며 주춤주춤 말문을 이었다.
“아이가 학대당하던 애라 사람을 무서워해. 키우는 동안 산책을 해 주지 않아서 산책하는 것에 대해 몰라서 그럴 거야….”
전화를 끊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 둔 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말이 되어서는 안 됐다. 때린 이유도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서, 멍청해서, 짖어서 같은 변변찮은 이유였다. 갓 태어난 아이가 똥오줌을 가릴 수 있던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펫숍에서 그 집으로 팔려 갔고, 겨우 생후 6개월도 못 넘기고 다리가 부러진 채로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날은 내 몸 안의 어딘가 부러진 것처럼 마음 부근이 저리고 아팠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부지런히 아프고 부절히 속상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작은 몸으로 누구 하나 의지 못 한 채 고단하게 지냈을 것을 생각하면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에게 있던 멍울이 나에게도 옮겨 왔던 날. 고단했을 아이의 삶이 가엾고 속상해서 아이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잤다. 아이를 위한 산책 프로젝트는 접어 두고 아이에게 길가의 사람들이 아이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아이와 지내며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사람의 체온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툭하면 품속을 파고들어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낮잠을 자고, 사람과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을 좋아하고, 멀찍이 떨어져 봤자 발치 언저리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그때쯤에는 아이가 직접 두 발로 걷지 않아도 되니까, 바깥의 세상이 아이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날부터 억지로 아이를 안아 들어 하네스를 채우는 대신 품에 안고 함께 아파트를 한 바퀴 돈다던가, 편의점을 들러 본다든가 하는 ‘우리 동네 탐방’ 같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이 주쯤 지났을 때 아이는 내가 외투 입는 소리만 내도 방으로 달려와 자신을 안으라고 졸랐다. 바깥에 나간 아이는 내 품속에서 떨지도 않았으며, 바깥 냄새를 킁킁 맡는가 하면 또 사람만 보면 경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얌전하고 착한 강아지가 되었다.
매일 조금씩 반경을 넓혀 아이와 동네의 번화가도 함께 누비게 되었다. 그 무렵, 혹시 아이가 직접 걷고 싶진 않은지 하는 생각에 우리가 산책으로 규정한 우리 동네 탐방 프로젝트를 다녀와서 아이에게 하네스를 입혀 주었다. 아이는 괴상망측한 프로젝트를 할 때와 달리 하네스를 입혀 줘도 떨지도 않았으며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팍 터졌다. 아직 나가 보지도 않았지만, 의젓한 그 모습에 맘이 뭉클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비장한 마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만약 걷지 않는다면, 종용하지 말아야지’, ‘평생 이렇게 내가 같이 탐방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이런 결연한 마음이 무색하게 아이는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쉬를 하더니 우다다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는 길을 다 안다는 듯이 우리가 가던 탐방 코스로 나를 이끌었고 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세 달 만에 아이가 아이 발로 직접 걷는 얼떨떨한 산책을 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에게 소통은 인간과 인간 사이로 한정되는 것이라고 편협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 아이가 아이 발로 걸었던 첫 산책에서 분명 아이가 ‘나 즐거워. 나 이제 무섭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입을 움직인 것도 아닌데, 분명히 그랬다.
삐걱거리던 날들을 지나 아이가 제 발로 걷기 시작한 날부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의사 표현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서툴기도 했고 가끔은 오역을 해 아이의 미움을 살 때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아이도 나의 의사 표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울고 있으면 엉덩이를 들이밀어 체온을 나눠 주는가 하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것이, 한 생명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지금, 보내 주는 몫 역시 남아 있다는 것을 안다. 보내 주는 방법을 두고 아이와의 야단법석한 공방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잘 이야기해서 잘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래도 조금 더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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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폭군 같은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