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름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너에게 염증이 생겼어. 지금 치료하면 아무 문제 없대. 치료가 얼마나 아플지는 모르겠어. 처치실에 같이 들어가고 싶은데 그건 안된대. 수의사 선생님이 널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야. 편할 순 없겠지만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릴 거야. 너를 너무 사랑해.
이런 말을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헥헥헥헥헥헥. 쉴 틈 없이 뱉어지는 숨 때문인지 침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눈앞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시선이 허공에서 헤매고 있었다. 얼굴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디로 가야 벗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든 움직여 보겠다던 네 개의 다리가 멈췄다. 막힌 문 앞에서 파르르 떨리던 다리가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번쩍 들어 올려진 작은 몸은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굳은 뒷다리 사이로 말려들어 간 꼬리가 애처로웠다. 가장 좋아하던 간식을 코 앞에 들이밀었다. 먹지 못했다.
“아이고. 그렇게 슬프세요? 어쩔 수 없어요. 다 그래요.”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정말요? 정말 어쩔 수 없는 거 맞나요? 다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고 내버려 두기엔, 내가 얘를 너무 걱정하게 되었어요. 말하지 못했다. 개에게 미용사와 수의사는 최악의 존재라던데. 아무리 거절해도 끝까지 하는 사람들. 아무리 무섭다고 비명을 질러도, 벗어나려 몸부림을 쳐도 놓아주지 않는 사람들. 왜 자신을 붙잡고 바늘을 찔러 넣는지 알 길이 없는 개는, 차가운 테이블 위에서 공포에 질렸다.
발톱 가위를 들고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발버둥과 비명이 잦아들지 않아도 괜찮아지길 바라며 계속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의 의미를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계속 달랬다. 알아듣길 바라며 이해하길 바라며 마음이 가닿길 바라며 말했다. 내 마음이 느껴질 거야. 알아듣지 못해도 느낄 수 있을 거야. 생각했다.
Tu peux rassuré. 불어를 배운 적 없는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난생 처음 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속삭이며 쓰다듬으면 어떨까. 못 움직이게 하면 어떨까. 발톱을 자르면 어떨까. 머리카락을 자르면 어떨까.
아픈 거 아니야. 금방 끝내 줄게. 조금만 참아줘. 삼킨 침이 목에서 화끈거렸다. 나도 하고 싶지 않아. 멈추고 싶어.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처롭고 상냥한 말과 함께 손의 압력이 느껴졌다. 다치면 안 되니까. 온 힘을 다해 벗어나려는 개를 움켜쥔 손의 압력이 점점 강해졌다. 압력이 강해질수록 저항도 강해졌다. 붙잡을수록 테이블 위는 침으로 흥건해졌다. 개가 뱉어내는 숨이 뜨끈했다. 괜찮다는 말은 나를 달래고 있었다.
미안해. 하지만 내 의도는 그렇지 않아. 내 마음도 아파. 그러니까 견뎌줘.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좀 편하게 있어 주면 얼마나 좋아. 벗어날 곳 없는 미용 테이블에 올려진 개는 공황에 빠졌다.
진료실에 앉아 기다렸다. 1분 정도 흘렀을까. 처치실에서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병원은 고요했고, 병원 안 모든 개와 사람이, 그리고 고양이가 비명에 집중했다. 비명의 울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소리가 터졌다. 울부짖음. 마치 분노에 찬 사람의 울음소리 같았다. 땅과 가슴을 꾹꾹 눌러 치며 우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듣는, 내 개가 내는 소리였다. 비명과 걸걸한 울부짖음이 번갈아 계속되었다. 20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불안했다. 하지만 내 개가 평생 처치실 안에 있을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기다리면, 수의사 선생님이 나올 것이었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해 줄 것이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열린 진료실 문밖으로 대기실에 있는 개들이 보였다. 벌벌 떨고 있거나 꼬리가 말려들어 가고 안절부절못하는 개들이 보였다. 울 것 같지만 숙연한 보호자들의 얼굴도 보였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개들과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언제 끝나는지, 끝나긴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혼자 감당하고 있을 내 개가 내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도망쳐도 번쩍 들어 올려지는 무수한 순간들. 어김없이 낯선 사람의 품속에서 몸이 구속되는 기분은 어떨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니. 그러게 왜 안전한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어. 왜 항불안제를 먹여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았어. 지금 누가 더 무섭겠어.
재진. 산책하듯 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는 신나게 걷는다. 옆에서 줄을 잡고 병원까지 같이 걸었다. 만들어지고 버려진 개. 구조되고 선택되어 살아남은 개. 사람 세상에 들어와 끊임없이 한 사람을 관찰하고 기다리는 개. 감정을 따라 행동하며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선택할 수 없는 개. 아픈 곳을 낫게 하기 위한 처치라는 것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번 수의사 선생님의 품에서 벗어났을 때 내게 달려든 모습이 떠올랐다. 귀와 턱이 전부 침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내가 이 개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벌벌 떨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한 보살핌이 안전하다고 배운 적 없는 개는, 평생을 병원과 미용실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점점 몸이 고장 난다고. 사람이 개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는 보호자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상황을 파악한다. 개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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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름
개의 불안과 공포를 신중하게 다루는 일이 당연해지길 바라며 동물행동학을 공부한다.
개가 두려움에 떨지 않고 필요한 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실천하기 위해 ‘썸데이 제로’를 운영한다.
구조견들이 입양 후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