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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비와 구봉이, 나의 채식 일지

나무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까비를 만나다


   찬 바람이 불면 노랗고 달큰한 향의 군고구마가 생각난다. 어김없이 고구마 상자에 손을 넣어 고구마를 꺼내 잘 씻어 오븐에 넣고 시간을 맞춰두고 기다린다. 40분. 그 시간이 참 길다. 뜨거운 고구마를 꺼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며 호호 불어 먹고 있으면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까비다. 혼자만 먹어? 나도 고구마 좋아한다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다. 성급히 핑계를 대며 까비야 미안 너무 뜨거워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며 고구마를 크게 잘라 접시에 펼쳐 식힌다. 이때부터 자기 고구마인 걸 알고 까비는 마음이 급해진다.


   늘 고구마 구워 나눠 먹던 까비가 지금은 없다. 혼자 먹는 고구마는 그때의 맛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맛이 좋은 고구마라도.


   2022년 5월 3일 아침에 까비와 이별하고야 깨달았다. 까비가 우리의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자 가족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 혹시라도 까비에게 섭섭하게 한 일이 있었을까? 매일 아침이 힘들었고 눈을 뜨면 나와 눈 맞추던 그 자리에 까비가 누워 바라보던 눈빛이 너무나 그리웠다.


   까비는 2005년에 우리 집에 왔다. 14살이던 큰아이가 홈스쿨을 선택하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멀리 원주에서 우리가 사는 과천으로 오게 되었다. 까비는 엄마를 일찍 여의고 아비 개인 산이가 키운 강아지다. 주인아저씨가 밥을 주면 산이는 늘 새끼들을 먼저 먹이고, 새끼들이 모두 먹고 나면 그제야 밥이든 특식이든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아비를 둬서 그랬을까? 까비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고 인내심이 컸다.


   까비는 엄마가 말라뮤트, 아빠가 진돗개였기에 몸집이 말라뮤트만 하지는 않았지만, 진돗개보다는 훨씬 덩치가 큰 개였다. 그런 까비가 자기 몸집의 1/10도 안 되는 친구들을 위해 자세를 낮추고 소리를 죽이고 기다려 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는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집을 오래 비울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집 강아지를 돌보는 일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런 날이면 까비는 터그 장난감을 물어다 낯선 집에 오게 된 작은 강아지들에게 물려주면서 놀아주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표시를 아주 점잖게 기다려 주면서 해주었다.


   까비의 신기한 점을 또 발견한 일이 있었다. 이제 막 1살이 지난 까비를 두고 외출했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 앞 상자에 들어 있는 무와 고구마를 꺼내서 맛있게 먹고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 강아지가 무와 고구마를 스스로 꺼내 먹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까비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채식을 했다 실패했다 다시 하기를 반복하고 있던 때였다. 인간은 채식을 해도 강아지가 채식을 좋아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때였는데 그렇게 고구마와 무맛을 알아버린 까비는 그 후 내가 부엌에서 채소를 다듬거나 과일을 깎고 있으면 늘 부엌에서 기다렸다. 자기 몫의 채소와 과일을 달라는 듯.


   나는 오랫동안 채식과 씨름을 벌였다. 처음엔 갓 태어난 둘째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아 모유 수유를 하는 내가 완전 채식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한한 채식을 시작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투쟁


   나는 채식을 오랜 시간에 걸쳐 내 인생에 안착시켰다. 내가 채식 생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채식하며 동물권 운동을 하는 분들은 동물의 권리를 위한 다양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중 법을 바꾸기 위해 국회로 진입한 것이 개 식용 종식을 위한 법안 투쟁이다.


   오랫동안 그것이 문화냐 아니냐를 두고 찬반이 거세었다. 까비와 함께 살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개 식용에 대한 문제가 단순한 식문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다르자 나도 더 적극적으로 식문화를 바꾸는 일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보신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어쩌면 조금은 덜 먹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신에 집착할 시간에 더 공평하게 좋은 음식이 시민의 권리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한쪽에선 먹을 것이 없어 삶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잊으면 안 된다.


   까비를 만나고 더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와 먹거리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채식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먹거리 정의라는 개념을 알리는 장을 만들어왔다.


   문화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이런 경험에 노출되고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30년 전 학교 급식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부모는 학교에 공부하러 가지, 밥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고 말하며 학교 급식 정상화와 친환경 학교 급식 개선에 관해 관심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하루라도 학교 급식이 부실해서 내 아이가 밥을 못 먹으면 난리가 난다. 그런 날이면 영양교사들은 학부모의 민원전화로 몸살을 앓는다. 학교 급식은 이제 민원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공공 급식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졌다. 그래서 영양교사와 하는 수업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기획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8년, 먹거리 정의 30인의 밥상


   지금은 의무교육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급식을 무상으로 먹을 수 있다. 이게 중학교까지이다. 한창 자라야 하는 학령기에 잘 준비된 식사를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학교 급식의 중요성을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방학의 끼니는 어떨까? 학교 급식은 교육청 소관의 업무로, 방학 중 끼니는 아동 급식 카드라는 이름으로 각 지자체 소관 업무이다. 그러다 보니 방학이 되면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성장기 아동, 청소년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아동 급식 카드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고, 카드를 들고 밥을 먹으러 가면 환대 받기보다는 눈치를 보며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 문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해결해 보자고 자리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먹거리 정의 30인의 밥상. 매달 다양한 주제로 먹거리와 시민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함께 만나 나누는 식사는 당연히 채식이 기본값이 되었고 지역 내 먹거리 불균형을 관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가 만든 협동조합 식당에서 질이 좋은 식사로 함께 돌봄을 실현하고 싶었다. 우리는 8번을 만나 밥상을 마주하고 이런 문제를 논의하여 아동 급식 카드를 이용해 밥을 먹는 아동, 청소년이 우리가 만든 협동조합 마을 카페에 와서 편히 모든 메뉴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할 때도 까비는 자기 몫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서명 받을 때면 늘 내 옆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까비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관심을 갖게 만들고 서명하고 행동에 동참시키는 큰일을 해냈다. 까비 덕분에 한 일이 많았다.


   학교 내 채식 급식 선택권


   먹거리 정의 30인의 밥상에 초대된 영양교사 두 분과 내 생각이 맞아떨어져 영양교사들과의 수업이 가능해졌다. 기후 위기와 먹거리 전환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이 오고 가지만, 도대체 무엇을 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전달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도 새로운 업무가 늘어나 일의 피로감이 더 늘었다는 인식이 아닌 내가 해보고 싶고 바꿔보고 싶은 일이 되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했다. 영양교사들에게 특화된 교육으로. 기후 미식이라는 말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기, 나는 영양교사와의 수업에서 가장 중심에 뒀던 일이 다양한 채식을 맛보게 하는 일이었다. 미식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어떤 상상력도 키워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채소로 이런 요리가 가능해? 이런 소스라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먹어보는 일만큼 정확한 일이 없다.


   해마다 선생님들과 기후 위기의 원인, 해결책,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자연식물식으로 밥상을 차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채식 밥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다양한 맛을 낸다는 사실을 알고 선생님들은 환호했다. 선생님에게 나는 “우리 강아지 까비도 무와 고구마 맛을 알고 채소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채식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학교에서 채식으로 좀 더 다양한 급식을 만들어 볼 것을 부추긴다. 자꾸 먹다 보면 좋아하게 되고 더 다양한 상상력으로 음식을 차려낼 수 있다고, 아마도 학생들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들의 노력을 치하하고 고마워할 날이 올 거라며 속삭인다. 그렇게 난 까비 덕분에 좀 더 용기를 내 사회적으로 채식으로의 먹거리 전환에 대한 일들을 해 나갈 수 있었다.


   까비를 잃어버리다


   그런 까비를 나는 잃어버렸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까비와의 이별이 와 버렸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2일 밤 10시, 다음날 일찍 서울에 갈 일이 있어 까비를 산책시키려고 줄을 매고 나가자고 하는데 까비가 안 나가겠다고 버텼다. 엄마 밤늦게는 산책 못하니 지금 가자고 아무리 말을 해도 꿈적을 안 해서 애들한테 까비가 지금 산책을 안 나가려고 하니 이따 시키라고 당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 깬 것이 새벽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까비가 이상하다고 누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며 나를 깨웠다. 내가 사는 동네는 택시가 없는 동네다 보니 그 새벽에 병원에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멀리 있는 남편에게 전화해 빨리 오라고 한 후 그저 기다리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 다시 딸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까비가 누워있는 마당으로 나가보니 까비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딸아이가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번갈아 까비의 심장을 뛰게 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까비는 더는 움직이지도 숨을 쉬지도 않았다. 좀 더 빨리 까비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저녁 잘 먹고 산책하러 가지 않았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내일 나가야 하는 일 때문에 까비의 상태를 잘 신경을 쓰지 못한 내 탓 같았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동네 친구들도 모두 까비가 떠난 사실을 알고 슬퍼했고 우리를 위로했다. 점잖고 친절한 까비와의 이별은 그렇게 준비도 없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다.


   구봉이를 만나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 날 동네 친구 동동에게 전화가 왔다. 주인이 있는 개인데 방치되어 있어 구조했고, 지금은 우리 집 바로 위에 있는 식당의 마당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고 있고 동네 분들이 맡아서 임시 보호 중인데 입양 갈 곳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까비가 떠난 사실을 안 동동은 우리가 구봉이를 입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것 같다.


   동동과 함께 구봉이를 보러 가면서 물었다. 이름은 왜 구봉이인지. 우리 동네에 구봉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구봉이를 구조한 장소가 구봉마을 입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이름, 구봉이.


   동동의 기대와는 달리 딸아이도 구봉이에게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 새로운 생명을 만나는 일이 힘든 일임을 나도 알게 되었다. 다행히 구봉이는 친절한 동네 분들의 보살핌을 집단으로 받고 있었다. 우리 동네 토박이 아저씨는 자신의 마당 한 편에 구봉이를 위한 집을 만들어 주셨고, 호박식당 내외분은 구봉이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동동은 구봉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심장사상충 치료를 해주고 저녁이면 산책도 시켜줬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사는 구봉이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목줄은 있었지만 리드 줄은 없어 자유로이 산을 타면서 지내던 구봉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 눈치를 봐야 했지만 자유로웠던 구봉이, 지금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지금 구봉이는 묶이지 않았던 옛날을 그리워할까?


   구봉이를 만난 이후 나는 매일 구봉이의 얼굴을 보러 잠시 들렀다 온다. 그러나 집으로 맞이하지는 못한다. 이제 생명을 만나는 일은 책임을 져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하며 사랑해야하는 일임을 알게 되니 예전처럼 무모하게 일단 살아보자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구봉이에게 좋은 반려인이 나타나면 좋겠다. 내가 자연식물식을 하는 일이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속삭이듯 누군가 구봉이의 속삭임을 듣고 손 잡아주면 좋겠다.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사는 방식이 먹거리로 연결되고 이것이 문화가 되는 문명의 전환이 오기를 바란다. 까비는 나를 깨어나게 하고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와 먹거리를 이야기하도록 해주었다. 내가 식생활 강사로서 더 확장되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건 까비와 내가 나눈 사랑 덕분이다.


   구봉이는 보살핌은 없었지만 자유로운 삶을 살다 인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구봉이도 사람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겠지. 안전과 자유를 구봉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구봉이에게 물어도 답은 없다. 내가 못 알아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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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성미선)


유쾌한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고 밥 짓는 일과 밥 먹이는 일을 사랑한다.

자연식물식으로 차린 밥을 함께 먹자고 사람들을 꼬시고

채식과 우리 농업을 지키고 싶은 사람.

까비를 통해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어

지금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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