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청각, 시각,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곳
남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푸르른 지중해, 프로방스 감성이 낭랑한 골목을 기대할 것이다. 사람 두어 명이 가로로 줄지어 서면 꽉 찰 것 같은 작고 울퉁불퉁한 골목에 알록달록한 누군가의 대문을 보고 있자면, 왠지 나만 특별한 방법으로 진짜 남프랑스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 나에게 남프랑스 여행을 즐기는 법을 묻는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냥 골목에서 길을 잃으세요!
남프랑스는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도시마다 뿜어내는 색상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 말인즉슨 골목의 정취도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어느 도시에선 파스텔톤의 벽과 알록달록한 꽃 화분들을 볼 수 있다. 또 어느 도시에선 갑자기 갈색으로 도배된 중세시대로 떠나 볼 수도 있다.
이곳의 골목들은 직선으로 정확히 계획되어 있는 현대도시들과는 다르게, 꼬불꼬불 미로 같기도 하다. 지도를 켜지 않고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방금 지나온 길을 자연스레 또 지나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급할 것 없다. 길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곧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 발길이 닿을 것이다.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상점거리와 현지 거주자들의 보금자리가 거의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마구 걷다 보면 어느새 그냥 사람 사는 골목을 거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매일 관광객들이 골목들을 이곳저곳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돌아다니는데 시끄럽지 않을까 싶다가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음악을 듣거나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에겐 혹시 '백색소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프랑스에서는 누군가는 매일 드나드는 집 대문이 누군가에게는 몇 년을 기억할 추억이 된다. 골목에 어두운 분홍색으로 칠해진 벽을 보고 홀린 듯이 사진을 찍다 보면, 문득 건물에 열린 창문은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림 같은 모습에 빠져들어 이곳에 사는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쨍하게 비추는 햇빛과 남프랑스의 집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시시각각 장관을 만들어낸다. 대각선으로 또 직각으로 햇빛이 비추면, 그림자의 경계선이 건물을 또 다르게 꾸며준다. 내가 언제 그림자를 이렇게 열심히 눈에 담아보았나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그러다 어느 창문에서 고양이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고, 돌 틈사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비둘기들을 보며 괜히 구경을 하게 되기도 한다. 창틀에 놓인 화분이나 창틀의 디자인을 보며, 집주인의 취향을 추측해보기도 한다.
상점가에선 많은 샵들의 입구들이 작다 보니 눈과 코에 온갖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작게 나있는 창문 안으로 인테리어 샵인지 서점인지 살펴봐야 한다. 갑자기 빵 냄새가 솔솔 난다면 멀지 않은 곳에 블랑제리가 있다는 신호이니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휘젓게 된다. 스쳐가듯이 라벤더나 허브향을 맡으면 머지않아 말려진 라벤더 꽃들과 남프랑스의 수제 비누들을 만날 수 있다. 가게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한 화분들로 장식된 꽃집은 작은 식물원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남프랑스 골목에는 뻔하지 않은 상점들이 가득하다. 작은 서점, 갤러리, 옷가게, 골동품 가게, 미용실, 그릇가게, 빵집, 장난감 가게, 소품샵 등등. 어떻게 프랜차이즈도 아닌 샵들이 살아남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곳이다. 우습지만 골목의 낭만에 빠져 걷다가 문득 사장님들의 월세 걱정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걱정은 아무 샵이나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왠지 발을 들이면 중요한 손님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쓸모없는 걱정'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샵에 들어가면 편안한 분위기로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 그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편히 찾아달라는 한마디를 던진 후, 정말 본인들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프랑스 골목의 매력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아기자기함' 같이 뭉뚱그려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너무나도 다채로운 곳이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꼭 길을 잃어야 한다. 우리는 길을 잃어야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니.
정말이다. 한 손엔 지도를 켜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사진 한두 장 찍고 지나가기엔 눈과 코에 담아야 할 작은 매력들이 너무 많다. 똑같은 인테리어의 가게를 찾을 수 없고, 심지어는 도대체 프랑스는 어떤 인테리어 혹은 물건들이 '유행'인지 알 수도 없다. 그냥 주인 마음대로다. 기갈나게 본인들 마음대로 꾸며놓은 가게들과 집의 창틀을 눈에 꼭 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