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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Jul 09. 2024

어떻게 이 꽃밭이 공짜인가요?

7월, 눈부신 남프랑스 발랑솔 라벤더


남프랑스, 특히나 프로방스 지역을 대표하는 꽃 또는 향이 있다면 단연 '라벤더'일 것이다. 누구나 윈도우 바탕화면으로라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법한 끝이 보이지 않는 보랏빛 물결과 맑은 하늘, 그것은 남프랑스의 7월을 물들이는 라벤더 밭이다.


사실 나는 라벤더 밭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 7월에 라벤더를 보러 꼭 다녀오라고 하면 그냥 성의를 보이는 마음으로 꼭 가보겠다고 대답해 왔다. 사실, 길가에 핀 개양귀비부터 아이리스, 금작화, 유채꽃, 각종 들꽃들까지 남프랑스에 오던 날부터 눈에 치이고 치인게 꽃이었다. 게다가 라벤더는 온갖 상점에서 파는 그릇에 새겨져 있으며, 말린 라벤더 향낭을 여기저기에 파는 덕에 지겹도록 본 꽃이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 2시간 거리의 베르동 협곡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며,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발랑솔(Valensole)을 지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목적지인 베르동협곡에 몸을 한번 담가보고자 하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라벤더 밭을 본다는 기대에 가득 부푼 남편이 실망하지 않도록, 나도 라벤더 밭이 정말 궁금하다며 많이 과장하며 라벤더에 대한 내 무관심을 가렸다.


그렇게 우리는 눈이 시원해지는 듯한 남프랑스의 평원을 달려 발랑솔에 도착했다. 착각인 줄 알았으나 에어컨 바람을 통해 옅은 라벤더향이 맡아졌다. 그리고 푸른 하늘과 붉은 흙 사이에 보랏빛 물결이 보였다.



아뿔싸, 나는 또 어리석게 예단했구나.

무관심했던 마음은 머쓱하게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남프랑스의 라벤더 밭은 눈, 코, 귀를 모두 호강하게 하는 곳이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일자로 줄지어 찬란하게 하늘거리는 보랏빛 라벤더

바람이 불때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익숙하고도 포근한 라벤더 향

꽃밭에 가만히 서있으면 꿀을 따느라 바쁘게 윙윙거리는 벌떼의 소리



첫 번째 라벤더 밭에 내렸을 때, 이건 우리가 가진 기술로 담을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핸드폰으로 요리조리 각도를 만들어 찍어봐도, 몸을 한 바퀴 돌려 동영상을 남겨봐도, 보랏빛 물결은 눈에 담기는 만큼 내 작은 핸드폰에 담기지 못했다. 열심히 드론을 띄우고 있던 이들이라면 아마 조금은 담아갔을 수도.



더 좋은 라벤더 밭이 있을 거라며 발길을 재촉하는 남편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천천히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양쪽으로 도저히 빨리 달릴 수 없는 꽃밭들이 펼쳐졌다.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는지 허리춤까지 오는 라벤더 밭,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어린 라벤더 밭, 막 몇 송이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해바라기 밭, 황금빛으로 찰랑거려 이름 모를 꽃이 가득한 듯 착각하게 하는 밀밭까지.


그리고 꽃밭이 자리하고 있는 길가나 작은 공터에는 어김없이 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다들 맞춰 입기라도 한 듯이 흰색 원피스를 입고 라벤더 밭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해져 갔다. 이틀간 계속된 라벤더 밭 구경 중에, 펜스를 쳐놓거나 어딘가에서 입장료 혹은 사진 찍는 값을 받는 곳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여기 라벤더 밭주인들은 왜 돈을 안 받지?



우뚝 솟아오른 산방산 아래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노란 물결이 생길 때면, 작은 유채밭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천 원씩 입장료를 받는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열심히 가꾼 꽃밭에 사람들이 들어가 즐겁게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는 것이니 입장료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과하게 큰돈을 받으시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한철 쌈짓돈을 만드는 황금밭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작은 유채밭보다 몇십 배 또는 몇백 배는 되는 라벤더 밭을 공짜로 열어놓는다니! 심지어는 '꽃을 밟지 마세요', '꽃을 꺽지 마세요'라는 팻말조차 없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한 것인지 아니면 문화가 너무 달라 돈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는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몇백 조각의 라벤더 밭에서 관광객들은 누구나 몇 번이고 차를 세워 꽤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진을 남겨 갈 것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남프랑스의 대표 이미지로 기억될 거다. 물론 사진에 담을 수 없는 황홀한 아름다움도 그들의 입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것이다. 이렇게 남프랑스 사람들에게 오랜 친구이었던 라벤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남프랑스 대표 꽃' 또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풍경'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안 그래도 교통이 그리 편리하지 않아 한번 여행하기도 어려운 남프랑스이다. 게다가 12개월 중 라벤더가 피는 7월을 꼭 맞춰 여행일정을 잡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권할 것이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웬만하면 7월에 이곳에 놀러 오라고.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달리는 차 안에서 끝없는 보랏빛 라벤더 밭을 보여주며, 차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라벤더 향을 맡아보게 하겠다.


역시나, 남프랑스는 정말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심지어 그것을 공짜로 즐길 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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