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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아주 Sep 24. 2021

47년생 엄마 #1

딸이 써주는 자서전


죽성동 청과시장에서 장사(1988)


들어가는 글


엄마가 쓰신 자서전

 작년 겨울, 엄마는 신안군 지도에서 올라와 군산에 사 두었던 18평 아파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는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 여름내 지도에서 농사지어다가 양파, 마늘, 파 등 채소를 군산에 와서 팔고는 이제 겨울이 되니 좀이 쑤시신 것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나를 졸라댔다.

“이것 좀 고쳐봐.”

“아휴, 이거 고치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줄 알아? 그만 좀 써.”

엄마가 내민 백과사전 분량의 연습장을 보고 나는 기가 질렸다. 그래도 한 동안 엄마가 쓴 책을 열심히 수정해 드렸다. 그러면 엄마는 내가 빨간색으로 줄 긋고, 문맥에 맞게 채워 넣은 글들을 고스란히 담아 새 공책에다 옮겨 적으셨다. 엄마 책 한 4분의 1쯤 수정했을 때 봄이 왔고 엄마는 다시 농사지으시러 시골로 가셨다. 엄마가 내려가시니 나도 한 시름 놨다. 글 빨리 고쳐 달라고 닦달하는 통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육아휴직을 냈다. 집 근처에 평생교육원이 새로 개원해서 개설한 강의만 60개가 넘었다.  수강 신청할 때 ‘자서전 쓰기’라는 강좌를 보게 되었다.

‘아! 여기 가서 자서전 쓰는 법을 배우고 엄마 자서전을 쓰면 되겠다.’

엄마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서전 쓰기 강좌에서 다른 분들이 쓴 글을 읽어 보기도 하고 강사님의 조언도 들으며 엄마가 쓴 책을 조금씩 다시 써 나갔다.

 

  책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엄마, 이모랑 엄마 고향인 청송과 안동에 다녀오기도 했다. 엄마의 친아버지 산소를 없애고 화장하기 위해 간 것이다. 그 일을 마치고서 엄마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터랑 빨래터, 농사짓던 낙동강 둔덕 같은 곳들을 돌아보고 왔다. 엄마의 친아버지가 ‘이 아이가 내 딸이오.’하고 자랑했던 청송 버스터미널도 지났다. 여행하면서 엄마와 이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 엄마, 이모뿐 아니라 우리 엄마 시대의 모든 사람의 삶이 이렇게 힘들었구나.’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 보고 ‘너희들은 호강하는 줄 알아야 해’ 하는 소리를 할 때마다 꼰대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하며 엄마 세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애쓰고 살아왔는지 실감했다.

 

  엄마가 살아온 글을 쓰면서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군산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하였다. 요즘은 인터넷에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간단한 것은 온라인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자세한 것은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빨랐다.  또 군산의 사건 사고를 알아보느라 전주 시립 도서관 신문 서고에 하루 종일 쳐 박혀서 신문을 뒤적이기도 했다. 군산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호기심이 생겨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이번 추석 명절에도 역전 새벽장, 아파트 좌판에서 과일 장사를 하셨다. 엄마는 돈이 없으신 것도 아닌데 싼 과일만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기고 그걸 다 안 팔고는 못 배기신다.

“엄마, 그거 팔아서 돈 많이 벌었어?”

“뭐, 그냥 쪼금 남았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추석 손주들에게 줄 용돈은 그걸로 다 벌었을 것이다. 추석 명절을 보내고 엄마와 아빠는 또 시골로 내려가셨다. 마늘을 심어야 한다면서.... 엄마 세대의 삶은 정말이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새벽 역전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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