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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Sep 24. 2021

우리 집 연예 대상

<꿈, 좀 바뀌면 어때>

 “마음 약해서! 헤이! 참지 못했네! 헤이! 돌아서는 그 사람 ~ 빠라바빠빠빠”


 성악을 전공하셨던 할머니의 영향이었을까. 작은누나와 난 어릴 때부터 끼가 많았고 우린 심심할 때마다 친척들 앞에서 노래와 춤을 추곤 했었다. 누나는 보컬 나는 그 옆에서 백 댄서를 자처하곤 했다. 내가 좀 더 자라고 나서는 부산시가 주최하는 가족 노래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학교 축제에서도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큰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젠틀병이었다.

     

 누나와 나는 최근까지도 집에만 있으면 함께 노래를 부르고 화음을 쌓고 문워크를 추면서 놀곤 하는데 밖에만 나가면 세상 얌전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한다. 밖에서는 끼 많은 이미지보단 똑똑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하는 성격이었다. 우리 집에서 내 별명이 '우리 집 연예 대상'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항상 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제 공연에 와주신 여러분 너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곡은 같이 노실 준비되셨나요?"


 혼자서 밴드 보컬이 되어 관중들과 소통하는 상황극도 해보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명장면을 혼자서 따라 해 본 적이 '많다' 정도가 아니라 '습관'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젠 어머니도 이런 내 모습을 그냥 무시하시곤 한다. 학창 시절엔 이런 나를 알아보고 함께 오디션을 보자고 제안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난


 “아.. 난 그냥 재미로, 재미로 하는 거야..” 


 라는 핑계로 거절하곤 했다. 그렇게 하나의 꿈으로만 잊혀지고 했던 찰나 나에게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1년의 세월을 보낸 뒤, 남자라면 꼭 가야 할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상 원망스럽게도 나는 가장 춥다는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부대에 가게 되었고, 산골짜기에 있는 부대에서 1년에 눈만 6개월을 치우며 지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행정병에 속해있었는데 근무와 휴가, 신병 교육을 담당했던 인사업무 담당 병사였는데 상병이 된 어느 날 본부에서 하나의 메일을 받게 된다. 

    

 ‘슈퍼스타 K 오디션 지원자를 뽑습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이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던, 그 당시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 k에서 군인들에게도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설레었다. 두근거렸다. 하지만 또다시 나는 내 안의 젠틀맨과 싸우기 시작했다. 스스로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나가서 뭐 할래?’

 ‘나가면 우승할 것 같아?’     


 이번만큼은 스스로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중대장실에 찾아갔다. 똑똑. 그리고 말했다.     


 “충성! 중대장님, 슈퍼스타 k 지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인생 첫 오디션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중대 오디션이었는데 참가자가 많지 않지 않아 그중 한 명만 뽑아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내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게 되어 올라가게 되었다. 두 번째 오디션은 대대 오디션이었다. 중대가 여러 개 모이면 대대가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행정병 직무 때문에 대대에 계신 간부님들을 알고 있던 터라 떨지 않고 차분히 노래했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다음은 연대 오디션. 대대가 여러 개 모이면 연대가 되는데 이 연대 오디션만 통과하면 그토록 고대하던 연예인 오디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오디션만 통과하면 나도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다는 거다. 대대에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대대 인사과장님이 직접 운전을 하시고 가시면서 압박 한 스푼도 잊지 않으셨다.

     

 “너희 떨어지고 오면 보자”     


 그 당시까지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나 스스로도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말했던 것처럼 노래를 취미로 하는 친구들 주위에 있다 보니 나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이때까지도 난 TOP10에 오르면 어떤 노래를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김칫국을 마셔도 너무 마셨다. 오디션장에 도착하니 당시 슈퍼스타 k의 상징이었던 번호표를 나의 배에다가 붙여주었다.


 ‘아.. 드디어..’     


 번호표 하나만 붙였는데도 뭔가 연예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잠마저 오려던 찰나 스텝 한 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0000번 참가자 들어오세요.”     


 방 탈출 카페에 가면 안대를 쓰고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방안으로 안내를 받게 되는데, 오디션 방으로 가는 길은 너무 긴장했는지 안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눈앞에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탁자, PD님, 카메라. 생각보다 단출한 방 안의 분위기를 뒤로하고 PD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준비된 노래 있으시면 뒤에 카메라 보시고 불러보세요.”     


 세상에. 저렇게 큰 카메라는 세상 처음 보았다.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 카메라의 불빛이      


 '사람들이 왜 카메라 울렁증이라고 하는지 알겠니?'      


 라며 건방졌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얘기하는 것 같았다. 첫 소절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입을 떼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한 소절을 내뱉으려고 하던 찰나 수만 가지 생각과 함께 가장 크게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음 이탈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래서 순간 준비했던 음정보다 3~4 키는 낮게 부르기 시작했다. 박진영이 그렇게 강조하는 공기 반 소리 반은커녕 낮은음에서는 공기 100 소리 0인 상태로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다시 하고 싶었지만 수고하셨어요라는 피디님의 한마디에 재도전은커녕 빠른 묵례와 함께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방 탈출 카페보다 훨씬 더 힘든 탈출이었던 건 분명하다.

     

 부끄러웠다. 쪽팔렸다. 노래 좀 할 줄 안다고 까불고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테니스 선수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깨달은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건방져져 있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향했다. 밖에는 인사과장님이 나와 계셨다. 어땠니 한마디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과장님은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하셨다는 듯이 괜찮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부대로 복귀해서 음료수 한잔을 사주셨다. 그렇게 내 첫 오디션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때의 사건은 내 인생에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오디션 탈락의 아픔을 조금씩 잊어 갈 때쯤, 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교 휴학을 하고 미국에 1년 정도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친척이 미국에 살기도 했고 나 역시 미국 생활을 꿈꾼 적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난 시애틀 옆 벨뷰라는 지역의 한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같은 반에 친했던 일본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학창 시절 밴드부도 하고 코러스도 담당할 만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그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 하던 날 같이 온 한국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우연하게도 우리 학교의 The reverbs 라는 밴드 이름을 가진 다국적 밴드부의 회장이었다. 그 안에는 중국, 러시아, 대만, 홍콩,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나라의 멤버가 있었는데 원래 밴드의 보컬이었던 학생이 이번에 졸업해서 보컬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새롭게 보컬을 뽑는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고민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실력이 있어서인지 지원자가 많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좋게 봐주었던 밴드부 담당 선생님이 나를 보컬로 뽑아주셨다. 그날부터 나는 The reverbs의 메인보컬이 되었다.

저 때는 저 머리스타일이 멋있어 보였는데 다시보니 느끼하다. 

 학교 밴드부인 만큼 큰 무대보단 작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작게는 몇 명 많게는 수십 명 정도의 관중 앞에서 공연도 하고 끝나면 모여서 회식을 하기도 했다. 연습실을 빌려서 밴드 연습도 하고 녹음도 해보면서 슈퍼스타 k 때 느껴보고 싶었던 설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큰 무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학기가 마무리되어 갈 시점, 담당 선생님이 우리를 소집했다.

     

 “여러분, 드디어 공연이 잡혔어요. 관객이 무려.... 1,000명입니다! ”     


 이거다. 내가 바랬던 거. 학교에서는 매년 한 번씩 각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다문화 축제를 열었다. 학교에 있는 홀 중 가장 큰 홀에서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을 초대해 약 천명 이상이 모여 공연을 관람하는 큰 행사였고, 우리는 그 공연의 마지막인 피날레를 담당하게 되었다. 부담되었다. 겁이 났다. 하지만 슈퍼스타 k 때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쉬는 날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끼리 모여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부담과 겁이 설렘으로 바뀔 때쯤 공연 당일이 다가왔다. 좌석은 모자랄 정도로 꽉 찼고 공연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박수 소리로 홀이 가득 찼다. 

     

 “데이빗, 괜찮아? 얼굴이 노래!”     


 밴드의 드러머가 나에게 물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천 명, 무려 천 명이었다. 내가 살면서 또 언제 이런 공연을 해볼 수 있을까. 그것도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못 이겨내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내가 집에서 혼자 수없이 시물레이션을 돌렸던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관객들과 소통했던 내 모습이 이제는 진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 여러분! 이제 마지막 순서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바쁘게 음향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다 보였다. 앉아있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두 보였다. 이때만큼은 내가 눈이 좋은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20초 정도가 지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나 스스로 얼마나 연습했는지 부끄럽지 않아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드러머의 하이햇 소리가 들렸다. 탁.탁.탁.


 “I’ve paid my dues, time after time”     


 첫 소절을 부르니 그 느낌은 더 확실해졌다.     


 ‘아, 할 수 있다’     

 

 마지막 소절과 함께 모든 분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쳐 주셨다. 유명 운동선수의 은퇴식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직도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친구들과 함께 끌어안고 서로 등을 토닥였다. 매번 목소리만 가져가면 되었던 나보다,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힘든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 훨씬 더 고생했었을 테니까. 그렇게 축제가 끝나고 문밖을 나가는 순간, 집에 가기 위해 나와 있었던 관객들이 복도에 가득 차 있었다. 조용히 지나가려고 하던 찰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고 한 명 두 명, 우리에게 와서 사진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명에게는 사인까지 해줬다. 그날만큼은 정말 BTS 부럽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 여파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연예인이 되어있을 것 같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여느 날과 다를 거 없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매일 연예인으로 사는 것보단 그날처럼 하루만 남부럽지 않은 연예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가끔 연예인들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야, 연예인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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