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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Sep 30. 2021

그냥 오늘한테나 잘하자

<꿈, 좀 바뀌면 어때>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캐릭터 선택이다. 마법사를 고를 수도, 전사를 고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게임의 캐릭터가 랜덤으로 정해진다면 어떨까. 막내란 그런 것이다. 막내로 태어났다면 본인의 캐릭터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결정이 된다. 왕자냐 이등병이냐. 누나가 2명이었던 나의 캐릭터는 다행히 전자였다. 형이 2명이었다면 자연스럽게 이등병 캐릭터로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남자 막내로 태어났다 보니 가족과 친척들의 사랑이 한껏 쏠렸다.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여 윷놀이를 해도 이기든 지든 항상 할머니는 나에게만 용돈을 쥐여 주셨다. 뿐만 아니라 식사할 때도, 청소할 때도, 막내인 나는 가만히 앉아 있거나 티비를 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할 줄 아는 거 없고, 귀하게 자란 티가 팍팍 나는, 누가 봐도 막내 같은 모습의 내가 되어 있었다. 캐릭터는 분명 레벨 업을 했는데 무기도 없고 갑옷도 없이 레벨만 오른 느낌이랄까. 심각할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난 어느 하루, 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형주야, 엄마 설거지해야 하니까 자장면 2개랑 탕수육 좀 시켜줄래?” 

 “내.. 내가? 알았어..”


 뭐 대단한 일도 아닌 것 같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겐 미션과 같은 일이었다. 나름 머리를 써서 전화하기 전 미리 머릿속에 대본을 썼다. 자장면 2개랑 탕수육 주세요. 그래. 이제 전화를 걸어보자.     


 “네 OO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 자장면 2개랑 탕수육 주세요.”     


 됐다. 해냈다. 하지만 순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돌아왔다.     


 “주소가 어디세요?”

 “네.. 네? 주소요? 여.. 여기 부.. 부산... 인데... 광역시고...”

 “아파트랑 호수만 말씀해주셔도 돼요.”     


 아뿔싸. 주소를 생각 못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사장님의 웃음소리가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난 새로운 일이 생기거나 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아 귀찮아. 그냥 네가 해."

 “에이, 그거 해서 뭐하냐. 인생에 별 도움도 안 되겠구만”     


고놈 참 말 안 듣게 생겼네


 새로운 도전이 겁이 났던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세상 쿨 한 척은 다 하고 다녔다. 그런 도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망가지거나 무너지지는 않았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작은 사건들로 이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난 집안일 대신 운동을 배우곤 했다. 아버지를 따라 안 해본 구기 종목이 없을 정도로 운동에 미쳐 살았다. 그 덕이었을까. 운동이란 매개체로 주위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축구를 하고 테니스도 치면서 어느 순간 소위 말해 인싸가 되어 있었다. 또한 노래를 좋아했던 내가 미국에선 밴드 보컬이 되어 있었고, 군대에서 모든 라면을 먹어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 했던 내가 4년 뒤 라면회사 인사팀에서 일하게 될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하나의 일들이 모여 또 다른 기회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자유를 주면 함정이라 하고, 작은 비즈니스를 얘기하면 돈을 못 번다하고, 큰 비즈니스를 얘기하면 돈이 없다고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고 하면 경험이 없다 하고, 정통적인 비즈니스라고 하면 어렵다고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고 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한다.                         

                                                                                                            -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내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을 알 순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도 본인이 핑계를 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편하니까. 핑계인 걸 알지만 도전을 안 하면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아도 되니까. 근데 사실 정답은 없다. 선택은 본인 마음이다. 그래도 난 새로운 도전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일이 아니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 도전으로 몇 년 뒤 내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 얼마 전 소파에 누워 나비효과라는 영화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일을 바로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미래로 돌아오면 또 다른 참담한 미래가 펼쳐져 있다. 비록 작은 사건이라 해도 미래는 크게 변한다는 걸 아주 무섭게 표현한 영화다. 근데 난 어차피 과거로 갈 수 없으니 그냥 오늘이나 잘 보내려고 한다. 미래가 참담해지는 건 싫으니까. 근데 잠깐, 오늘 뭘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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