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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Oct 03. 2021

경상도 출신 UN 총장

<꿈, 좀 바뀌면 어때>

 "잘 못 들었습니다?"

     

 이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올 만큼 전역한 지 한 달 만에 허겁지겁 복학했다. 드라마를 보면 복학생이 화장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치 내가 저러고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 재미없었던 신입생 시절과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귀여운 후배들도 생기고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도 하기 시작했다. 술자리도 많아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나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우리 과 09학번 선배들 사이에는 해외 어학연수의 붐이 불고 있었는데, 10학번이었던 우리는 선배들이 해외 어학연수를 갔다 오는 걸 보고 내심 부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던 해에 미국에서 고모의 전화 한 통이 왔다.      


“형주야, 미국 와서 공부해 볼 생각 없니 ?”     

영화에서 마당 잔디 깎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고모와 고모부는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살고 계셨는데, 이제는 하던 일에 안정을 찾으시면서 나에게 미국으로 와서 잠깐이라도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안 그래도 09학번 선배들이 부러웠던 찰나 나는 고민도 없이 수락하게 되었다. 고모는 미국 서부에 위치한 벨뷰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시애틀과 굉장히 근접한 도시였다. 같은 서부였지만 LA처럼 바다가 있는 자유로운 도시라기 보단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서귀포 같은 느낌의 한적한 도시였다. 나는 우리 집 근처에 있던 벨뷰 커뮤니티 컬리지라는 학교에 ELC(English Language Course)를 듣게 되었다. ELC 코스는 영어 수업이 위주인 만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만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한국인이 많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 신청서를 내고 간 첫 오리엔테이션 날.     


 '끼리끼리'. 내가 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였다. 이 낯선 곳까지 와서 왜 그렇게 자국민을 찾고 싶은 걸까. 외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본능일까.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새로운 나라의 친구를 사귀면 좋겠다는 나의 기대완 달리 이미 같은 나라의 친구들끼리 똘똘 뭉쳐 다니는 다른 학생들을 보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더욱 중요한 건 그 틈 사이에 끼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소위 말해 인싸였다. 남들 앞에 나가서 대표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반에 있는 모든 친구들과 잘 지내는 스타일의 인싸였다. 복도만 지나다녀도 여기저기 인사하기 바쁜 그런 스타일이랄까.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아웃사이더가 되어있었다. 미국 영화만 봐도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한테도 인사해주고 학생들끼리 홈 파티도 열면서 신나게 놀던데. 한국에선 먹지 않던 병맥주를 손에 쥐고 친구들과 치얼스를 외치는 나의 모습을 그렸는데. 역시 영화는 영화였던 건가.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인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내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학기가 이렇게 끝나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역시나 꿩 대신 닭. 굳이 무리가 형성되어 있는 그룹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무리를 만들면 되니까. 그때부터 나처럼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친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 눈에 들어온 첫 타겟팅. 우리 반에 함께 수업을 듣던 일본인 친구였다. 일본인은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음료수를 한잔 건네면서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웬걸. 생각보다 털털하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친구 1명씩을 데리고 오면서 우린 4명이 되었다. 4명으로도 충분했지만 오지라퍼의 특징인가. 주위에 있는 다른 친구들이 아른거렸다. 초기의 나처럼 유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인싸들은 본인들 알아서 잘 놀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결국 아웃사이더로 남게 되니까 말이다.  또다시 새로운 꿈이 꿈틀꿈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그룹원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같은 친구들을 모아서 그룹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나의 제안에 우리 멤버들은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반에서 수업을 받았었는데 반에는 무리에 끼지 못한 친구들이 항상 있었다. 그렇게 한 명씩 우리 그룹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5명, 10명, 15명. 이런, 생각보다 너무 커졌다. 그룹은 어느 순간부터 운영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그룹 안에서도 그룹이 나뉘게 되고 또다시 끼리끼리가 되어버렸다. 그도 그러할 것이 20명 넘는 그룹 안에 10개국이 넘는 인종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고, 사상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지 못해 다툼도 있었다. 그때 초기 멤버였던 친구가 말했다.     


“그룹장을 정해야 할 것 같아”     


 난 남들 앞에 대표로 나서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만큼은 회장이 하고 싶었다. 내가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렇게 난 나를 추천했고 1대 회장으로 뽑히게 되었다. 공통어가 영어였기에 모든 일을 영어로 처리하고 소통해야 했지만, 책임감이 있었다. 그룹의 규칙과 정기 모임도 정했다. 적어도 한 달에 3번은 단체 모임을 하고 모든 멤버들의 생일을 챙기고, 함께 여행도 다녔다. 


 많이 모이는 건 좋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문화적인 충돌이었다. 그룹 내에 10개국 이상의 친구들이 모여있다 보니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동 쪽 친구들은 문화적으로 가부장 제도가 심했는데 가끔 그들의 무례한 어투에 그룹 내에서 불만의 씨앗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엔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중동 친구들을 퇴출 시켜달라는 요청을 했다. 하아. 내가 살면서 각국의 문화를 조율하고 국가 간의 관계를 우호 증진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 정도는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적어도 UN만큼의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중동 친구들과 그 친구에게 불만이 있었던 아이들을 한자리로 불렀다. 서로의 불만을 터놓고 얘기하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많은 얘기가 오가고 큰소리도 치면서 싸우기도 했다.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맡으면서 서로의 이견을 좁혀주기도 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른 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서로의 기분이 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감정싸움에 조금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동 친구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얘기와 함께 최대한 신경을 써서 고쳐보기로 하겠다고 했다. 이에 불만이 있던 친구들도 본인들도 너무 삐뚤어진 마음으로 듣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삼자대면이 끝이 나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그룹은 큰 탈 없이 잘 유지 되었고 그렇게 난 7개월간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미국 생활 도중 많은 친구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덕분에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었고 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다 말해주었지만 정작 더 많이 변한 건 나였다.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취업에 대해 논하지 않았고, 편협했고 편견에 가득했던 나의 시선을 그룹 친구들이 없애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공부하는 수많은 친구를 보았고, 작은 일과 결과에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역시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난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학을 생각하는 친구들에겐 항상 말한다. 3개월간 죽어라 알바해서 돈을 모으고서라도 다녀오라고. 영어를 배우러 유학을 가라는 것이 아닌 너 스스로를 찾으러 떠나라고 말이다. 적어도 한 번쯤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스스로에게 줘보는 것도 좋을 테니까. 그곳에서 어떤 경험이 기다리고 그 경험이 또 어떤 결과를 낳을지 가보기 전엔 모르니까 말이다. 혹시 누가 또 알까. 내가 라면을 먹다 라면 회사에 취직한 것처럼 혹시 나중에 UN에서 일하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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