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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Oct 12. 2021

게스트하우스 vs 개'st 하우스

<꿈, 좀 바뀌면 어때>

 2018년 2월, 과감히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했다. 퇴사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일주일 후 바로 제주도로 넘어가 나와 형을 포함한 4명이 함께 꾸릴 가게를 그리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업체를 수소문해 선정하고 우리의 의견이 대부분 포함된 2층 자리 게스트하우스의 도면을 그렸다. 실패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나였기에 정말 죽어라 노력했다.     


 우리 4명은 가게가 완성될 때까지 좁은 집에서 함께 살았다. 눈만 뜨면 사업에 대한 회의를 하곤 했다. 고집이 센 4명이 모이다 보니 의견 차이로 매일 다투는 게 일상이었다. 사소한 것까지 중요시하는 나와 큰 그림을 먼저 보는 동생들, 완벽함을 추구하는 형까지. 의자를 10개를 놓을지 16개를 놓을지로 반나절을 싸우곤 했다. 참, 지금 생각하면 그땐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무경험에서 나오는 조급함과 고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9개월을 건물 건축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 간 곳이 없었다. 매트리스는 동대문에 있는 모든 가게와 공장을 돌아다녔고, 소규모로는 잘 팔지 않는 곳의 공장을 끝끝내 설득시켜 물건을 떼오기도 했다. 여성분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샴푸, 린스, 클렌징폼과 겟잇뷰티라는 뷰티 예능을 보며 1등 제품만 골라 갖췄다. 큰 고데기, 봉 고데기, 소빗, 대빗, 큰 거울, 손거울까지 준비했다. 혹시나 손님이 삐그덕 거리는 2층 침대가 불편하실까봐 DIY로 벽에 고정된 침대를 설치했고, 각 자리마다 이쁜 조명까지 설치했다. 그렇게 내가 생각한 가게가 완벽하게 완성이 되어갔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신 붙박이 침대


 물론 좋았던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함께 꿈을 키워가기로 했었던 동생 2명은 나의 부주의함과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도중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가끔 먼저 하긴 하지만, 매일 먼저 걸 때마다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제는 차마 먼저 걸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9개월이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마침내 공사가 완료되었고 오픈 준비만을 앞두었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시물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부터 다음날 자고 나오는 모습까지. 내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동안 수십 개의 게스트하우스를 지내봤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받은 첫날 손님 2명. 다음날 12명. 그다음 날은 1명. 그렇게 와주시는 한분 한분이 감사해 기억하는 모든 분의 기억을 인스타와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오실 때 내가 알아볼 수 있도록. 다행히 그 글을 보고 많은 분이 좋게 봐주셨는지 그때부터 손님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오픈이 한 달이 채 되지 않던 날 처음으로 모든 객실이 손님으로 가득 찼다.     

한 명씩 기억하기 위해 적은 글들 

 그 이후부터 코로나가 터질 때까진 공실률이 매달 5퍼센트도 안 될 정도였고, 제주 내에서도 탑 순위권에 위치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우리 가게를 알 정도였으니 나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공해서 형과 나도 더욱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내가 요리와 청소, 빨래를 모두 하다 보니 급격하게 체력이 소진되면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힘이 들었다. 야식을 매일 먹었음에도 8kg이 빠졌다. 안되겠다 싶어 셰프와 청소직원도 고용하고 직원 수도 늘리면서 체력적인 문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저녁에 파티가 있었는데 음식과 술을 판매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나는 대기업에 다닐 때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치가 떨릴 만큼 상대했기에 우리 가게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다른 게하보다 술 규제를 엄격하게 관리했다. 술 판매량을 제한하고 취해 보이는 손님이 있으면 방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이성을 만나기 위해 온 듯한 손님이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조용히 따로 불러서 그러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2019년 크리스마스 솔로 파티

 그러다 보니 파티에 대한 소문이 좋아져서 여자 손님들이 파티에 참가를 많이 하게 되었고 여자가 많다는 소문이 돌다 보니 남성들이 예약을 많이 하게 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자연스레 성비가 맞다 보니 과음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매일 새벽이 나에겐 전쟁 같은 하루였다. 화장실에서 해결할 일을 방에서 해버려 새벽에 치우는 일도 많았고,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소리를 지르며 씻는 사람들을 제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매일 새벽 1시간마다 일어나 손님들을 관리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갔다.    

  

 어느 순간 손님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진상 손님이 게스트가 아닌 개’ st로 보이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멀리서 걸어오는 걸음걸이만 봐도 진상일지 아닐지가 보였다. 그래서 빠른 시간에 손님을 파악하게 되고 진상이라고 생각된 손님에게는 입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차갑고, 엄하게 대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되었다. 스스로 마음을 고쳐잡아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들면서 체력적으로는 컨디션이 돌아오게 되었지만, 손님을 보는 내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같이 하는 형에게 미안했다. 나의 이런 모습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같았다. 3년 동안 같은 일만 반복 하다 보니 흥미도 재미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도 내가 가게에 머물러야만 했기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2020년 말쯤 힘겹게 형에게 말을 꺼냈다.    

 

 “형,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

 “알고 있었어. 느껴지더라. 이해해.”     

휑하고도 초라했던 나의 마지막 날

 평소와는 달랐던 나의 모습에 형도 이미 눈치를 챘다고 했다. 그렇게 난 2020년을 마지막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12월 31일. 내가 떠나는 날.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늘 생각했던 마지막 날은 손님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가 만든 이 상황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휑한 게하 풍경보다 더 초라했던 건 아마 좋아하는 일도 결국은 싫어져 포기해버린 내 스스로의 모습이었다.      


 늘 플랜B를 준비하고 움직이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대책이 없었다.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매일 머릿속에서 돌아갔던 상상 속 상황극도 코로나로 문을 닫은 극장들처럼 휴업상태였다. 그래 일단 좀 쉬자. 그동안 너무 스스로 푸쉬했어. 기계도 매일 일하면 고장이 나는데 나라고 별수 있었겠어. 딱 일 주일만 쉬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2주일간의 제주 여행을 마지막으로 본가로 돌아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도 지겨워지는데 이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1년,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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