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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연 Oct 17. 2022

05. 우리 집에서 그러고 싶어 : 꼭 같이 가요

#시어머님의 살아온 날이 궁금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11년 차 며느리

#5-1. 시어머님께서 하늘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전하는 이야기 

         

엄마,

베란다 문 열고 거실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너무 시원해. 

시원한 바람에도 엄마 생각이 나.     

우리 집 짓고 나서 딱 한 번 오셨다 갔지. 

하룻밤만 주무시고 가라 했는데 기어이 가셨어.

그때 나는 서운하대.

아들만 위해주고 나는 그냥저냥 대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들까 봐 그런 거지?

키우고 있던 개, 돼지, 꽃사슴들 밥도 줘야 했었고.     

“엄마, 나는 데려온 자식이야? 왜 자꾸 일만 하자고 그래?”

나의 한숨 섞인 말에 엄마는 그랬어.

“나중에 시집가서 일하는 사람들 지휘하려면 네가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야.”


아마, 엄마가 시집가서는 고생을 많이 했었나 봐.

식구들한테 치이고 일꾼들한테 치이고 일에 치이고 서러움에 치이고. 그래서 내 딸은 구박받지 않게 잘 가르쳐야지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열심히 일을 배운 덕분에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어.

고마워, 엄마.     


엄마가 내 옆에 계시면, 우리 집에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함께 지내면서 그때 왜 그러셨는지, 따질 거 있음 따지고 참 힘들었겠다, 위로할 일 있음 위로하고 어찌 살아왔누, 통곡할 일 있음 통곡하고 싶어.

일 잘하는 내 모습도 자랑하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사진:픽사 베이]


#5-2. 며느리가 시어머님께 전하는 이야기 


위로, 통곡, 자랑.

세 단어를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 보니, ‘응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어머님은 기둥, 등대, 장군, 이런 단어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어머님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을 읽으니 우리 어머님, 제 두 팔로 꽈악 안아드리고 싶어요.     


어머님 댁 거실에 앉아 있다 솔바람이 사라락 들어와 우리를 한번 휘감고 나가면 어머님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아우 좋다. 세연아, 살찌는 바람 들어온다.” 

“살찌는 바람이 뭐예요?”

“이렇게 온 가족이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놀 때 시원한 바람까지 불면 마음도 편하고 절로 살이 찌지, 그래서 살찌는 바람이라고 해.”


저는 살면서 살찌는 바람이란 단어를 그때 처음 들어봤어요. 그 의미가 너무 이해가 잘 돼서 한참 웃었네요.     

저는 요즘 집에서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제 몸을 와락 안고 훑어주고 가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 어머님은 잘 계시려나?’ 

이 집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어머님, 아버님 1박 2일로 오셔서 함께 산책도 하고,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 같이 먹고 했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평생 가게 쉬는 날 없이 일하셔서 1박 2일로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신 건 자식에 대한 진한 사랑이 있으셨으니 가능한 거였어요. 저 그때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뒹굴 거리던 시간이 참 좋았어요.   


어머님의 엄마, 그러니까 외시 할머님 산소에 한번 가요. 

같이 가서 우리 같이 따지기도 하고, 위로도 드리고, 통곡도 하고 와요. 

그리고 제가 우리 어머님 이렇게 잘 살고 계시다고 자랑도 많이 해드릴게요.

꼭 같이 가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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