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살아온 날이 궁금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11년 차 며느리
#4-1. 시어머님께서 하늘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전하는 이야기
엄마, 옛날 재래시장은 지붕도 문도 없었잖아.
그냥 사방팔방이 뻥 뚫려 있어서 비 오면 비 그대로 맞고, 눈 오면 눈보라에 추위에, 연탄 화로 가져다 놓고 장사했는데 말이야. 지금은 잘해놨어.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나오게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고, 저녁이 되면 가로등 불빛이 밝혀주거든.
cctv도 많이 설치해 놔서 물건 도둑맞을 걱정도 없어.
근데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재래시장 와서 장사할 일은 없지 싶어.
우리 세대에서 재래시장 문 닫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런지 모르겠네. 부안도 인구가 많이 줄고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이 돌아가시고 시골도 빈 집이 많다네.
한 번씩 오시던 어르신들이 안 보여서 동네 분들에게 물어보면 요양원에 계시거나 돌아가셨단 이야기를 간간이 들어. 금방 우리 차례가 올 텐데, 서글퍼져.
갈 때 되면 가야 하는데, 또 살 만하면 가게 된다는 말도 있고.
식구들이 이제는 좀 재미있게 몸도 편하게 하고 살라고 하는데 모르겠어 엄마.
엄마도 내가 쉬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식구들 위해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할게.
엄마도 그렇게 살았잖아.
나, 엄마 딸이라 어쩔 수 없나 봐.
엄마, 나 지켜주고 응원해 줘.
#4-2. 며느리가 시어머님께 전하는 이야기
황영자! 황영자! 황영자!
오늘은 어머님 성함 만세삼창으로 글을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어머님은 자신의 존재보다 늘 가게를 먼저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예, 상서상회입니다.”
3년간 이어지는 코로나 때문에 어머님 가게에 못 들리다, 얼마 전 오랜만에 들르게 되었지요. 가게 전화벨이 울리자 어머님께서 전화를 받으며 하시던 인사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눈 뜨고 있는 시간 대부분을 상서상회 안에서 보내고 계시는 어머님은 40여 년 가까이 ‘황영자’라는 이름 석 자보다 ‘상서상회’라는 가게 이름 넉자를 앞세워 살아오셨네요.
“세연아, 저기 뭐 달라진 거 없나 봐 봐라”
“네? 어머님? 어떤 거요?”
“좌판을 바꾸니까 가게가 아주 깨끗해지지 않았냐~ 어떠냐~ 세연아~ 앞으로 몇십 년은 또 끄떡없다~~”
집에 에어컨, 냉장고를 바꾸셨을 때보다 가게 선풍기, 좌판, 난로 바꾸셨을 때 더 신이 나서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나요.
집 앞의 탁 트인 마당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보내주는 공기보다 시장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공기가 더 좋다는 우리 어머님.
손님이 오시면 꼭 “우리 아들, 며느리, 손녀!” 라며 저희를 소개해 주시는 우리 어머님.
반평생이 훌쩍 넘는 시간을 봐온 손님들과는 이미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이 지내고 계신 우리 어머님. 그래서,
“이 시간쯤이면 와야 하는데, 이제 한번 나올 때가 지났는데 안 보이네”라며 단골손님의 부재를 걱정하시던 우리 어머님.
‘금방 우리 차례가 올 텐데’라는 글귀에 마음이 파도처럼 부서집니다.
서글픔을 안고서도 가족을 위해 더 일해야겠다고, 그 마음 표현할 길 없어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글로 풀어놓는 어머님의 그 시간에 머물러 봅니다.
어머님! 이제는 집 앞마당이 아닌 파란 물결 넘실거리는 바닷가가셔서 철썩 철썩 부서지는 파도 벗 삼아 산책도 하시고, 김치에 물 말아서 한 끼 떼우지 마시고, 저희 없어도 아버님과 같이 좋아하시는 장어집 가셔서 한상 제대로 드시기도 하시고, 가게 나가기 힘드신 날 하루 쯤은 집에서 빈둥빈둥 농땡이도 피우시면서 어머님을 위해 사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온 마음 다해 뜨겁게 응원할게요.
이제 어머님 위해 사셔요.
사랑합니다.
[사진: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