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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Jan 26.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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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동희가 잠을 깼다. 노트북 화면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희권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왜 조금 더 안 자고. 나는 준비할 자료들이 있어서…… 그런데, 너에게 익명으로 메일을 보낸 사람 말이야. 혹시 그 사람이 프로그램을 유출한 장본인 아닐까? 수사망이 좁혀오니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칩을 무력화시키려는 거지. 그가 정부 관계자던 아니던 아무튼 칩이 무력화되면 수사가 흐지부지 끝날 것 아냐.”


그럴듯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노동호 연구원 말대로라면 칩이 통신망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어.  추측이 맞다면 너에게 메일을 보낸 자는 전국의 통신망을 사용해 무슨 짓을 벌일 거야. 12 10 정오를 기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전에 전국의 모든 통신망을 차단해 버리는 거지! 어때?”


전국의 통신망을 어떻게 차단하냐?”


동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웃어?”


아냐,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전국의 통신망을 셧다운 시킬  있는데?”


“내가 알기론 대한통신에서 모든 통신사 망을 관리한다고 들었거든. 일단 대한통신을 찾아가 보는 거야. 가서 방금 내가 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그대로 하면 넌 미친놈 취급받을 거야.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서 전국 통신망 셧다운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거지. 조심은 해야겠지? 아니면, 차라리 경찰에 제보하자!”


자신이  말이 재미있는지 이번엔 희권이 웃었다.



두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일, 희권이 야간 근무로 출근하기 전까지 12월 10일 일어날지 모를 사건에 대해 추측과 의견을 나누었다. 혼자 남은 동희는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검색하다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보였다. 어머니가 그 옆에 있었다. 부부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앨범에서 본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얼마 전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부부라 하기엔 나이차가 많이 나 보였다. 자신의 부모를 둘러싼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컸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것은 아버지의 말소리였다.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적이고 믿음직스러웠다. 목소리는 낭랑하고 통쾌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저랬나 싶었다. 고개 숙인 어머니는 울기만 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붙잡으려 했지만 아버지 목소리에 눌려 더 이상 어찌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결국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칠오가 나타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자들이 칠오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칠오를 폭행했다. 누구도 어떤 소리 내지 않았다. 조용한 폭행이었다. 몇몇 사람은 웃기까지 했다. 맞고 있는 칠오도 즐거운 듯 미소 지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정답게 웃으며 맞고 때리는 그 모습은 어떤 싸움보다 잔인하고 무서웠다. 얼마쯤 뒤 칠오를 때리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칠오는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칠오가 아니라 노동호였다.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며 동희의 청각을 후벼 팠다. 정신을 차린 동희가 밖이 밝아 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까지도 그 소리는 계속 울렸다. 희권의 방에는 작은 전화기가 있었다. 그 장난감 같은 전화기의 벨소리는 짜증 날 정도로 컸다.


동희야, 큰일 났다. 노동호 환자가 오늘 새벽에 죽었어!”


수화기 속 희권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동희까지 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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