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도 물구나무서기를 한 적이 없던 나였다. 무용과 전공자도 아닌데 물구나무서기를 한다면 궁금할 것이다. 한동안 허리통증으로 거꾸리 운동기구가 몸에 좋다고 해서 헬스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그 거꾸리 운동기구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한겨울의 고드름처럼 시리고 아프다. 사연 있는 물건을 볼 때마다 우리는 내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지금도 헬스장에 홀로 있는 거꾸리는 나를 난임의 추억으로 끌어당긴다. 과거의 난임을 겪는 부부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가 바로 물구나무서기다.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임신이 잘 되는 비법이라며 무조건 따라 했다. 왜냐면 시어머니도 이 방법을 얘기해줬기 때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인가 싶었다. 어떻게 시어머니가 이런 방법을 알려주냐며 놀라겠지만 더 심한 말도 들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으로 견딜 수 없었다. 그때마다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위로받았다.
나와 같은 상황의 여성들이 모여있는 난임 카페가 친구보다 가족보다 따뜻했다. 어디 사는지 몇 살이지 묻지도 않고 자기 일처럼 따뜻한 댓글로 보듬어 주었고 위로해줬다. 수치스럽고 속상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곳도 없었는데 난임 카페가 효자였다. 인공수정하면 거꾸로 세워 놓는다는 말도 여기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임신 질문 방에서 부부관계를 가진 후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임신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인공수정하지 않아도 평상시에 자연 임신법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해보기로 작정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물구나무서기를 해봤다. 또 다른 비법이 있다면 몽땅 해볼 심산이었다.
임신하기 위한 부부들이 하는 가장 흔한 실수가 있다. 부부관계 회수를 더 많이 하면 임신이 잘 될 거라며 시도 때도 없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 하는 게 더 좋다는 민망한 얘기까지 들어야 한다. 금술 좋은 부부가 아기가 없다는 말도 모르냐며 핀잔을 준다. 참으로 부끄러울 수 있는 일이지만 난임 부부가 흔히 겪는 일이다. 결국에는 인공수정을 시작하면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무리 오래 물구나무서도 임신 되기는커녕 머리와 목의 통증만 늘어 갔다. 임신만 된다면 그런 통증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기대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온갖 잡다한 비법들은 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엉덩이를 하늘 높이 향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코를 골고 자는 남편을 뒤로하고 밤마다 나는 무용과 지망생으로 변신했다.
점점 우리 부부는 잠자리가 숙제처럼 의무감으로 시작되었고 마무리도 물구나무서기로 끝을 맺었다. 내 몸의 사소한 증상 변화에 민감해졌고 사소한 복부의 통증이라도 느껴지면 설마설마 기대했다. 허리와 엉덩이를 벽에 붙여 최대한 발끝은 천장으로 쭉 뻗어서 몇 분을 하는지 몰라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지 적당한 시간을 알지 못해 때론 기대어 잠들 때도 있었다. 괴상하고 망측한 자세로 잠든 내 모습이 초라하기보다는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이까짓 게 뭐 어렵다고. 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지 궁금했던 남편도 묻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점점 대화는 짧아져 갔고 궁금해도 절대 묻지 않으며 최대한 참았다. 연애할 때의 애틋함은 사라지고 의무적인 부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공수정을 하지 않을 때도 물구나무서기를 계속했다. 속으로 꿍꿍이가 있었다. 바로 자연임신이 될 것 같은 기대를 내려놓지 못했다. 부족한 것보다 과한 게 낫다는 신념으로 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더 오래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욕심이 과했는지 물구나무서기를 하다 앞구르기를 하는 횟수가 많았다. 깜깜한 방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몸짓 소리가 쿵!! 하고 정적을 깨드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냐며 소리치던 남편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묻지도 않는다.
남들은 허리통증 완화를 위해 거꾸리 운동을 하고 있지만 나는 임신이 빨리 되라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면 아마 비웃을 것이다. 이렇게 난임은 나의 허리통증까지 치료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이렇게 해서 임신이 된다면 일석이조가 증명되는 거였다. 언제까지 물구나무서기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임신이 될 때까지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물구나무서기는 마지막 코스요리처럼 장식됐다. 속으로는 두 손 모아 밤마다 계속 빌었다. 시키는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며, 제발 임신하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