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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라는 단어

난임 부부에게 임신이란?

by 민선미

아이를 기다리며 하루, 한 달, 일 년이 흘러 육 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임신이란 단어는 내게 주홍 글씨처럼 따라다녔다. 드라마를 보거나 광고를 봐도 ‘임신’이란 두 글자는 뾰족한 화살처럼 내 가슴에 박혀 쉽게 빠지지 않고 뿌리내렸다. 명랑하고 밝았던 마음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였던 순간들은 사라졌다.



삼신할머니는 왜 간절한 사람에게는 어렵고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쉽게도 임신시키는지 따지고 싶었다. 결국, 시어머님은 방도를 찾았다는 듯 숨넘어가게 연락이 왔다. 남편이 없는 평일에 시간을 비우라며 용한 곳을 예약했다고 했다. 친정엄마도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점집을 하는 동네 이웃을 찾아가서 하소연하였다.



점점 우리 부부의 문제가 양가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때마침 임신한 언니와 올케는 나를 볼 면목이 없는지 가족 모임이 있으면 저절로 자리를 피했다. 가족들조차 내가 임신을 못 하니까 눈치 보며 피하고 싶은 불편한 존재로 남았다.


어디든지 내가 나타나면 정답게 나누던 대화도 티 나게 뚝 끊고 쉬쉬하며 별일 아닌 척했다. 남겨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던 서러움은 상처가 되었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수록 단단해지기는커녕 사람 만나는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며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이미 굳어진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친정 언니와 올케는 내가 임신하려고 몇 년간 전국으로 쫓아다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임신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오히려 미안해했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높다란 빌딩만큼 쌓여갔다.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름 제 충천하는 시간은 유일하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었다. 일일 연속극과 드라마는 유일한 나의 쉼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에 나오는 ‘임신’, ‘아기’, ‘임산부’란 단어를 듣기만 해도 가슴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응어리진 가슴을 치며 드라마를 보다가도 채널을 그냥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특히 막장인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은 사고 쳐서(혼전 임신) 결혼할 수밖에 없는 장면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왜 임신은 간절한 사람에게는 각박하고 원치 않는 사람에게만 되는 건지 화가 났다. 아무리 드라마 내용이라 해도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봤다면 분명 분통 터질 노릇이었다. 누구는 임신이 되지 않자 애가 타 죽겠는데 아무런 상관없는 드라마 주인공까지 질투했다. 남녀가 결혼해 잠만 자고 나면 임신되는 줄 알았던 내가 참으로 무지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결혼하고 사는 사람들의 부류가 여럿 있다. 임신이 계획대로 되는 사람이 있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다산의 여왕이 되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비혼도 있고,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기로 약속한 딩크족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입양까지 생각할 정도로 아기를 간절히 원했고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서라도 꼭 낳아 키우고 싶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 결혼했으니 아기 낳아 오순도순 사람 사는 냄새 풍기며 살고 싶었다. 자녀 없이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점점 살기 좋아지고 편해질수록 나쁜 일도 많이 생겼다. 우리 부부처럼 임신이 어려운 부부도 많아졌다. 원인불명, 나팔관 막힘, 자궁내막증, 자궁 근종, 정자의 운동 저하 등 원인은 다양했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로 마음고생, 몸 고생하는 여자가 많아졌다. 병원에 가서 아기를 가져야 하니 당연히 경제적으로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난임 부부를 위해 마련된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소득 금액에 따라 그렇지 않을 시 자부담이었다.






선물처럼 아기가 찾아오는 오는 줄 알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전쟁이었다. 남들은 애 때문에 싸운다는데 나는 애를 갖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 남편과 전쟁해야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 내 일처럼 걱정해 주고, 관심 가져주는 게 송곳으로 아픈 상처를 계속 후비듯 상처가 아물 틈이 없었다.


임신이 소원이 되면서 실패할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만 떠올랐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면서 대인기피증이라는 병이 달려들었다. 친구가 아무리 좋았어도 내 처지를 비관하며 만남도 꺼려졌고, 부부동반으로 만나던 모임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서 강제적으로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아무도 안 보이게 숨고 싶었다. 심지어 사소한 일도 돌봐주던 가족들조차 불편했다. 아기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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