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부부가 겪는 사소한 일들
따르릉 따르릉 ~~
남편은 출근을 서두르며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미리 혼자 있는 것을 알고 전화한 것처럼 타이밍 한번 끝내줬다. 걸려 온 전화는 시어머니였다. 시아버지도 출근으로 집을 나섰을 시간이고 남편도 회사에 출근한 시간이라고 예측한 후에 전화한 것이 틀림없었다. 달려가서 전화기 화면에 나타난 발신인을 확인하고 앗! 하고 숨을 고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인데 ~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니?”라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대화는 시작되었다. 나도 임신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전할 말이 없는 내 속마음은 어쩌라고, 휴~ 속이 답답했다. 아침마다 다그치는 전화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TV에서 나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쳤다. 상대방이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다. 상처받은 마음을 간신히 잠재운 고요한 바다에 또다시 돌멩이를 던져 나를 비참하게 했다. 어머님은 내 감정에는 조그마한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밤사이 꾼 태몽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안달 난 듯 다급해 보였다. 머뭇거리는 내게 대답을 재촉하는 어머니가 불편했다. 똑같은 꿈을 어찌하여 저렇게 매일 꿀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내 꿈에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태몽이 괜히 얄미웠다. 아무리 자고 또 자도 일어나도 태몽은커녕 그 어떤 꿈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 같았다. 기대에 부풀어 대답을 재촉하시는 어머니께 “아직 소식이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입이 얼마나 죄인지,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아실까? 싶었다. 아마 모르셔서 나한테 이러시겠지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며느리의 속사정 따위는 묻지도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내는 긴 통화는 숨을 막히게 했다. 아침마다 걸려오는 전화가 받기 싫어졌다. 어머니는 급한 성격이라 벨 소리가 몇 번 울린 후 받지 않으면 그냥 끊어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벨 소리가 울리면 전력 질주해서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한테 전화 걸어 내 위치를 물었고 이어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왜 엄마 전화를 안 받았어?”라며 짜증을 냈다. 그 짜증 속에는 고작 집안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전화도 못 받느냐며 주부가 하는 일을 하찮게 취급해 버리는 듯했다. 언제나 같은 방법으로 전화하는 어머님 때문에 남편과 나는 부부싸움까지 했다. 어머님은 출근해서 일하는 남편에게 집에 있는 나를 어디에 있는지 묻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벨 소리가 울리고 두 번안에 전화를 받아야 했다.
어머님의 관심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며느리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듯했다.
“아직도 무소식이야? 응? 분명히 내가 꿈을 꿨는데.”
꿈만 꿔서 임신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은 사업이 바빠져 매일 야근에 회식이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날 밝은 아침이면 전화를 걸어 새로운 태몽 얘기를 계속 이어가는데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걸, 아시면서 전후 사정은 묻지도 않았다. 친정엄마 같았으면 벌써 사실대로 말했을 텐데 말하기 어려운 시어머니기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겉으로는 남편 사업이 우선으로 잘 돌아가야 한다며 위하는 척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아기도 잘 키울 수 있다고 위로까지 해주며 다 때가 있다고 했다. 아기 낳으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아야 한다며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형편이 어려울 때 아기를 키우는 일은 모두에게 안 좋은 일이라며 경험담을 늘어놓으셨다.
어머님은 때가 되면 아기는 선물처럼 자연스럽게 점지해준다며 서두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재촉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서두르지 말라는 말에 어느 장단에 맞출지 난감했다. 일리 있는 말이라 이의 제기할 수 없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 생각하는지 자기만 믿으라고 자신했다. 아무리 자연의 순리대로 따른다고 말했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갈수록 조바심이 나고 초조했다. 우리 부부는 극도로 불안한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왜 노력하지 않고 나이만 먹느냐며 서운해했다.
남편도 어머님의 전화에 점점 불만이 쌓여갔다. 어머니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남편에게 일러바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게만 하던 잔소리를 남편에게도 시작했는지 주말마다 본가에 가던 일을 탐탁지 않았는지 피했다. 가족 간의 관심사는 임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대화의 끝은 언제나 싸움으로 안 좋게 끝나버렸다. 그 가운데는 늘 어머님이 계셨다.
알콩달콩 신혼인데 둘이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님과 함께 셋이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화도 잦아지고 몸도 마음도 서로 지쳐갔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그냥 넘길 일에도 으르렁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온화하고 따스했던 대화는 온기가 사라졌고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날카로워지면서 차라리 입을 꾹 닫고 있는 게 편안했다. 무슨 말만 꺼냈다 하면 임신에 도움 주는 음식이나 임신 잘되는 방법뿐이니 그럴 만도 했다.
태몽은 예지몽으로 아기가 들어서거나 들어설 것을 예견해준다. 남편이 꾸기도 하고 산모가 꾸기도 하지만 희한하게도 시어머니가 태몽을 많이 꾸어준다는 전통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매일 꾸셨던 태몽, 나도 꾸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간절함으로 기도했다. 안타깝게도 내겐 정성이 부족했는지 태몽도 개꿈도 꾸지 않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자리 들기 전 제발 태몽 좀 꾸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던 일도 드물어졌다. 대신 태몽을 안 꾸고도 건강한 아이를 점지시켜 임신, 출산까지 한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