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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어서 만나자!

by 민선미



불임이라는 말보다 난임이라는 말이 한 줄기 희망이었다. 듣기만 해도 거북한 난임판정을 받을 때만 해도 당신은 ‘불임(不姙)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불임은 2005년 이후로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대신하여 임신을 방해하는 요소를 치료하고 시술하여 가능하다는 뜻을 지닌 난임(難姙)이라고 2012년부터 모자보건법에서 바꿔 표기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 난임 부부는 눈에 띄게 증가했고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분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누구나 난임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싫을 것이다. 내 일이 아니겠지 하며 생각될 수도 있다. 난임이라는 진단을 받고 집에 오는 하늘은 유난히 누르락붉으락 댔다. 불치병진단을 받은 듯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행복한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난임이라는 사실을 누가 아는 게 더 두려워 주변을 의식하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묻기도 전에 도망치기 바빴다. 아이 없이 사는 부부들을 장애인처럼 취급하는 눈빛이 너무 무서워 피하고 싶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을 것인데 나 스스로 방화벽을 치고 담을 쌓았다. 최대한 비밀로 철두철미하게 지켜내어 보란 듯이 아이를 낳아서 정상인이라며 증명하고 싶었다. 난임병원에 다니면서도 누구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없어 인터넷 카페를 통해 궁금한 정보를 알고 위로받았다. 모든 난임 부부가 그렇듯 우리 부부도 병원 진단을 오진이라며 절대 믿지 않았다. 전국으로 용하다는 난임병원은 양방, 한방 할 것 없이 찾아 누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종교를 찾아다니며 하나님, 부처님 외치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았다.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친척들이 발 벗고 나선 후,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 고통은 몇 곱절이 되었다. 빨간 깃발이 꽂힌 점집도 마다하지 않았고 부모님이 다니던 절에서 기도도 올렸다. 하루빨리 임신이 된다면 못할 게 없었다. 사실 당당하게 난임이라 말하면 되는데 그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인정하기 싫었다. 아기를 못 낳는다는 게 불치병에 걸린 환자처럼 취급받아 온 과거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아이 없이 사는 부부들을 보면 안타까워하며 동정의 눈빛을 보낸다.

보통 사람처럼 대하는 게 아니라 먼저 측은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이 나를 더 아픈 곳을 후벼판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신은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결실을 얻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부부의 결합체가 임신이란 생각에 기대돼 설레고 행복했지만 긴 세월에 효자 없다고 세월이 갈수록 부정적이고 옹졸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내가 살기 위해서였다. 결혼한 사람은 꼭 아기를 낳아야만 하는 관례처럼 유교적 관념도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현대는 비혼주의, 딩크족이 저출산의 문제가 되지만 이들도 난임을 겪다 딩크족이 되었을 가능성도 컸다. 난임을 받아들이기 싫고 알려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나야?”라며 발버둥 치며 이건 꿈이면 깨고 싶었다.



난임병원에 다니며 누가 볼까 봐 공공칠 작전을 펼치듯 절대 비밀로 들키지 않기 위해 핑계를 만들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병원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심지어 난임병원에 다니면서도 예외 일 거라며 자연 임신법을 찾아 헤맸다. 인터넷 카페에 임신에 성공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나와 같은 원인불명인데 자연 임신법으로 임신한 글들을 수십 번을 정독하며 따라 했다. 어디에서 좋다는 음식, 좋다는 운동법이 있다면 먹었고 무조건 실천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빚을 져서라도 갖고 싶은 게 바로 ‘아기’였다.





난임진단을 받은 부부라면 하루빨리 난임을 인정하고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실망도 덜 한 법이다. 가장 힘든 점은 가족들이 처음부터 믿어주지 않았고 걱정하는 척 위해주는 말들이 가슴 깊은 곳에 생채기를 냈다.


어떤 위로도 놀리는 것처럼 들리고 수용되지 않았다. 최대한 가족들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인터넷에 여러 난임 카페에 가입하여 난임 부부들과 서로 위로받고 정보를 공유하며 힘이 되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난임 부부에는 임신은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계획해서는 안 된다. 난임진단을 받은 부부라면 특히 전략적인 계획을 세워야 실망도 덜 한 법이다.



난임을 겪는 부부에게 위로만 주고 싶어서 굳이 과거를 들춰내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다. 좋은 정보보다 나쁜 정보로 금전적, 육체적, 정신적인 소모를 막고 싶었다.


그동안 겪은 고통을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기를 낳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난임을 인정하고 우리 부부에게 맞는 운동법, 식이요법 등 최고의 전문가를 만나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시험관아기를 해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30%의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국가에서 난임 지원을 받아 잘못된 정보로 허송세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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