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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 Oct 09. 2024

잘 지내고 있니

 열네 살 때 일이었다. 학교를 갔다 오니 집 마당이 전쟁터였다. 그런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병아리 열 마리와 어미 닭이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죽어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말 못 할 지경’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세상에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분노와 분노 사촌들이 일제히 내 안에서 터졌다.  

    

 온 동네를 훑으며 범인을 색출하러 다녔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뒷집을 지나는데 ‘뽀삐~, 뽀삐~!’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담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왔던 손님이 나가면서 애완견을 찾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뒤 안 어딘가에서 하얀 털이 복실한 작은 개가 뛰어나왔다. 주둥이가 벌겠다. 개 주인은 깜짝 놀라고 다친 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태를 파악한 나는 분기탱천한 기세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저 개가 우리 병아리들을 죽였어요!”    

 

 개 주인은 병아리 죽은 게 뭐 대수냐 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오히려 어른에게 따지는 나를 버릇없다고 훈계했다.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죽어있는 병아리를 보며 악을 쓰며 대성통곡했다. 개가 약육강식의 본능으로 병아리를 해쳤다고 억지로 이해하고 진정하려 해도 개 주인의 태도를 생각하면 울음이 그치다가도 다시 터졌다.


 마침 엄마가 돌아왔다. 상황을 보고 내 얘기를 듣더니 뒷집으로 갔다.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싸우고 이길 것을 기대했던 마음과 다르게 조용했다. 돌아온 엄마의 손엔 지폐가 한 장 들려있었다. 그뿐이었다. 어미가 죽은 것도 아닌데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고 엄마는 오히려 내게 고함을 질렀다. 병아리들은 비참한 죽음에 애도도 받지 못하고 치워졌다.      


  몇 날을 가슴앓이했다. 병아리들이 어미를 따라 아장아장 일렬로 다니는 기특한 모습이 떠올라 계속 눈물이 났다. 그런 내가 걸렸던지 엄마는 토끼 한 쌍을 사 왔다. 혹시나 또 있을 개의 공격을 막고자 토끼장을 높게 두고 문도 아주 촘촘하고 튼튼한 철사로 둘렀다. 토끼가 먹을 풀을 뜯으러 다니며 나는 병아리 죽음에서 벗어났다.   

  

 

 토끼네는 사이가 좋았다.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 나는 아주 열심히 토끼풀을 뜯으러 다녔다. 며칠 지나고 아침에 날벼락처럼 새끼들이 다 죽어있었다. 토끼장을 샅샅이 살펴봐도 외부 침입은 없었다. 안타까웠지만 새끼들을 묻어주고 상심해 있을 토끼들을 위해 싱싱한 풀을 뜯으러 나갔다. 늘 먼 데 가서 풀을 뜯어왔는데 그날은 힘이 없어 근처 밭두렁에서 뜯어다 주었다. 수컷 토끼가 먼저와 풀을 먹었다. 수컷 토끼가 암컷 토끼를 쳐다봤다. 암컷 토끼는 오지 않았다. 수컷 토끼는 그날 저녁에 입에 거품을 물고 죽었다.      


  나는 홈즈처럼 온갖 추리를 해봤다.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나중에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그날 근처 밭에 약을 쳤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상심해 있을 토끼들에게 내가 사약을 내린 꼴이었다.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남은 암컷 토끼에게 극진하게 잘했다. 혹여나 몰라 밭두렁 풀을 일절 뜯지 않고 산에 있는 풀을 뜯어다 주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암컷 토끼가 드러누워 숨을 헐떡였다. 이번만은 살리고 싶었다. 토끼를 방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해주고 기도도 했다. 간절함에 응답한 것인지 토끼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암컷 토끼도 죽었다. 세상이 또 참혹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에 신(神)을 부르며 눈물을 닦았다. ‘토끼가 너무 착해서 천국이 일찍 너를 원했구나.’     


  나는 이 죽음 앞에서 경건해야 했다. 새끼들을 잃고 수컷 토끼도 떠나보냈던 암컷 토끼의 비애적 삶에 그냥 땅에 버려지는 설움까지 더하는 건 용납이 안 됐다. 상자를 직접 만들고 산을 뒤져 꽃송이를 모아 깔고 암컷 토끼를 뉘었다. 어린 동생들을 문상객으로 세우고 암컷 토끼를 추모하는 글을 낭독했다. 그것으론 경건함이 부족했다. 하늘에 닿을 경건함이 필요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경건한 음악은 ‘애국가’였다. 동생들에게 가슴에 손을 올리게 하고 애국가를 불렀다. 4절까지 불렀다. 그리고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묻고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았다. 내 서슬에 겁먹고 있던 동생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나는 토끼 무덤 옆에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있었다.      


 오래도록 그때의 나를 잊고 지냈다.      

 한반도에 살면서 전쟁에 무감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무뎌진다. 오십을 넘기고 나니 더 그렇다.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횟수가 느는데도 이상하게 죽음에 무뎌진다. 전쟁에 가장 큰 적은 이런 무뎌짐이다. 우크라이나의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총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진을 접한다. 금세 끝날 것 같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망가진 일상과 돌아오지 못하는 목숨, 내 안에 깨워야 하는 것이 있음을 눈치챈다.     


 현실과 몽상 사이, 그 어디쯤의 나이였던 열네 살의 나. 꿈꾸는 현실에서 벗어나 사실을 직시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감정과 이념과 신념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렸고 어리석었지만, 민감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


 ‘정말,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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