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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 Oct 15. 2024

방바닥 서재

 ‘연푸른색 하늘거리는 레이스 커튼이 좋겠다. 책장은 공간 분리용으로도 쓰이게 양면장으로 둬야지. 골방처럼 만들어진 공간엔 빈티지한 낡은 의자를 둘까. 책장과 책상은 마호가니로 할 거야. 붉은빛이 돌면서 단단한 느낌을 주는 그 나무야말로 서재의 격을 가르지. 바닥 한쪽엔 북슬북슬한 양탄자도 깔자.’ 나는 또 손에 든 커피가 식는 것도 잊은 채 서재 꾸미기에 몰입한다.    

 

 서재를 갖는 건 나의 오랜 소망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하고 거기에 얽힌 얘기를 듣는 것도 좋아해 종종 유튜브를 찾아본다. 유튜버들이 공개한 서재를 보면 한결같이 빼곡하게 차 있는 책과 큼직한 책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의 눈으로 그들이 자랑하지 않는 구석구석도 훑는다. 서재를 자랑하는 그들의 표정이 거실이나 부엌을 자랑하는 유튜버들과 사뭇 다른 것이 눈에 잡힌다. 책 부심은 나도 그들 못지않다. ‘언젠가 저렇게 꾸며봐야지’ 늘 마음만 굴뚝이다.


 어릴 적 우리 집 일곱 식구는 작은방 하나와 큰 방 하나, 작은 툇마루가 있는 집에 살았다. 읽을 책도 구하기 어려웠던 형편이니 서재라는 건 딴 세상 단어로 알았다. 하지만 작은 집은 달랐다. 작은아버지는 진로소주 회사에 근무했는데 벌이가 좋으셨는지 이층 양옥집에 살았다. 숫기가 없던 나는 그 이층 집이 생경해 엄마를 따라서만 두어 차례 방문했다. 갈 적마다 응접실이라 불리는 곳에 앉아 작은엄마가 내어 준 노란 주스를 마셨다. 한 날은 긴장이 풀려 꼼지락거리며 심심해했던지 작은엄마는 집 안을 구경해도 좋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이 방 저 방 육중한 문을 열어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빽빽하게 가득 차 있던 책, 책, 책들. 금박으로 제목이 새겨진 표지가 두꺼운 책이 책장에 넘쳤다. 내가 누워도 될 만큼 큰 책상은 나를 압도했다. 한쪽 벽엔 동갑내기 사촌과 한 살 아래 사촌이 타 온 상장들이 갈색 액자에 담겨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조심스럽게 책을 한 권 꺼냈다. 그 속에 글자는 내가 알던 글자와 같았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이걸 읽고 싶다고 작은엄마께 말하고 싶었다. 그때 작은엄마가 들어오셨다. 내가 들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꽂으며 “여긴 들어오면 안 돼. 이건 아무나 만지는 게 아니야.” 하시는데 어린 자존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주눅이 든 나는 책을 읽고 싶다는 말도 못 꺼냈다. 대신 서재를 갖고 싶은 욕심을 품었다.     


 결혼하고 단칸방에 살다 방 세 개로 늘려갔지만, 모든 공간은 아이들 것이었다. 동화책과 참고서를 꽂을 자리도 부족했다. 언감생심, 어디에 내 책상을 둔단 말인가. 늘 작은 밥상을 거실 한쪽에 펴두고 책들을 방바닥과 상 위에 펼쳐둔 채로 엎드려 책을 읽었다. 아이들 공부를 봐줄 때도 상 위에서 머리를 맞대었고 밥 먹을 때는 책들을 내려놓고 밥을 먹고 다시 책들을 올려두었다. 그러면서 새 책이라도 들이는 날엔 서재를 꾸미는 꿈을 야무지게 꾸곤 했다. ‘여유 방만 생겨봐라. 내 너희들을 귀하게 모실 거야.’     


 드디어 성년이 된 자식들이 독립했다. 아이들 짐이 슬금슬금 빠지고 여유 방이 생겼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가는데 나는 책을 늘리지도 책상을 사지도 않고 있다. 서재에 대한 꿈이 식은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쇼핑몰에서 마호가니 책상을 검색한다. 유튜브에 올려 온 서재 얘기도 꾸준히 시청하고 ‘오늘의 집’에 올라온 서재 꾸미기 글도 관심 있게 읽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엎드려서 책을 읽는다.     

 지난 2022년 4월 강서구에 국회 부산도서관이 개소했다. 고대했던 일이라 소식 듣자마자 찾아갔다. 탁 트인 드넓은 평지에 책을 연상시키는 외관을 보자마자 설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지 꽤 북적였다. 높디높은 천장 아래 그린 색 바닥에 놓인 원목 책장엔 주제별로 책들이 가득했다. 책장과 책장 사이 곳곳에 낮은 의자와 소파가 놓여있어 어디서든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의자가 불편하면 바닥에 앉아서 책을 봐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책장과 책장 사이 간격이 넓었다.      


 국회도서관 격에 맞게 컴퓨터도 많이 준비되어 있고 이용도 편리했다. 오디오북 대여라든가 세미나실과 비디오 시청실 대여는 처음 보는 것이라 부러운 마음에 이 동네로 이사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구조물로 디자인된 어린이실은 동심이 반짝였다. 다람쥐 통, 야외텐트, 미니 집, 블록 형태의 의자들에 앉아보며 책을 부러워했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새로 지은 도서관은 내가 갖고 싶었던 것과 갖고 싶을 것 같은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내 서재를 여기다 꾸며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도서관 근처에 산다. 걸어서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며 지낸다. 그 덕에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린이 전집 같은 건 사지 않았다. 이런 혜택 속에 살면서도 새 도서관을 보니 욕심이 생긴다. 그만큼 나는 서재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책 펴고 앉으면 그곳이 서재지 서재가 뭐 별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반평생 살고 보니 물욕이란 게 참 볼품없는 욕심임을 깨닫는다. 아이들 크면 읽히려고 했던 책들이 막상 읽으려고 보니 낡아 있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힌 적이 있다. 아까워서 쓰지 않고 두었던 물건들이 삭아 못쓰게 된 일도 있다. 뭐든 때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야 책이 귀해 서재를 두고 책을 보관하는 일이 중요했겠지만, 요즘에야 멀티미디어의 시대 아닌가. 핸드폰으로 책을 읽는 시대에 서재란 엎드릴 공간이면 충분하다.     


 지금 지구는 인구 과밀과 과소비로 인해 환경오염이 위험수위를 넘었다. 이런 시대엔 남아도는 물건은 서로 빌려주고 빌려 씀이 시급하다. 도서관은 엄연하게 따지면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는 아니지만 책이 관련된 공유를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 건물을 지을 적에 라운지나 세탁실, 주방과 같은 공유 공간을 설계해 원룸이나 투룸의 좁음을 해소하는 건물이 늘고 있다. 남아돌아서 공유하는 것이나, 부족해서 공유하는 것이나 나는 같은 범주라 본다. 공유하는 문화가 지금보다 빠르게 확장되길 바란다.     


 한 동네 하나의 도서관은 한 집에 하나의 서재를 갖는 효과가 있다. 나는 요즘 책을 사면 읽고 나서 누구에게 건네줄까 고심한다. 집 책장에 있어 봐야 부패하기밖에 더 하겠는가. 건네받은 이가 읽고 또 다른 이에게 건네준다면 이것이 움직이는 도서관이고 움직이는 서재이지 않을까. 한 발 더 나가 책 마지막 장에 소감을 짤막하게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볼까, 생각 중이다. 책 읽은 이의 포스트잇이 늘어나면 그것이 바로 비대면 독서토론이겠다. 움직이는 서재에 순기능까지 더하는 생각만으로도 삶이 기쁘게 와닿는다.    

 

 오늘도 나는 방바닥 서재에 엎드려 이웃의 서재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열심히 서재 꾸미기에 몰입한다. ‘언젠가는 꼭 웅장한 마호가니 책상을 들여야지. 그래야 엎드려 책 읽는 버릇이 고쳐질 거야.’ 혼잣말하며 뒹굴뒹굴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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