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눈을 본다. 눈동자 가득 경계를 담고 그르렁거린다. 새벽녘의 고양이 눈은 커진 눈동자만큼이나 어둠을 담고 있다. 나는 고양이가 무섭다. 한순간 내게 달려들 것만 같다. 녀석들은 나의 등장에도 잠시 움찔할 뿐 여전히 서로에게 날 선 울음으로 새벽을 찢는다. 빗자루를 들고 땅을 구르며 소리로 내지른다. “저리로 가!” 앙칼진 걸음으로 쫒고서야 덩치 큰 녀석이 등을 돌려 담장을 넘는다. 나머지 녀석도 다른 쪽으로 사라진다. 고양이가 달아난 어둑한 새벽하늘 끝에 바람이 지나는지 별이 흔들린다. 등이 서늘하다. 들고 있던 빗자루를 냅다 던진다.
어떤 것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친하기 어렵다. 스물을 갓 넘긴 무렵이었나. 사람을 믿었다가 크게 배신을 당했다. 한 달이 넘도록 신열이 내리지 않았다. 일어나면 어지러웠고 먹으면 토했다. 순식간에 살이 내렸다. 밤이면 가위눌림에 고함을 치기 일쑤여서 하숙방을 같이 쓰던 언니는 짜증을 부렸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던 청춘에게 잠은 가장 큰 호강이었기에 눈치가 보였다. 조금이나마 적게 자려 긴장을 해도 자정이 넘으면 스르르 눈꺼풀이 내렸다. 새벽 서너 시, 달디 단 꿈속을 헤집고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가까웠다 멀었다 아기 울음소리 같은 그것이 귓전에 아른댔다. 보채듯 압박해 오는 그 소리는 저주로 흔드는 무당의 방울 소리처럼 끊임없이 바늘 되어 박혔다. 손으로 귀를 막다가 화장지로 틀어막다가 급기야 신열에 들뜬 몸으로 나는 수천의 고양이를 죽였다. 저주 같은 그 소리는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서 내 숨통을 조였다. 영물이라더니 목숨이 아홉 개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늦잠이라며 흔드는 동료의 손에 눈을 뜨면 이부자리는 땀으로 흥건했다. 불안한 청춘의 시간은 참으로 더뎠다.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희망은 사치였고 오늘이 언제 끝날지 과연 그 끝이 있기나 한지 마음도 몸도 만신창이였다.
한날은 퇴근길에 빙초산을 샀다. 차마 쥐약은 사지 못했다. 옥탑방 처마 밑에 뿌리면 독한 냄새에 고양이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창문 밑에서 나는 소리만이라도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튿날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난리를 쳤다. 남의 집 옥상에 해작질을 한 종자가 누구냐며 욕설이 유리창을 흔들었다. 물을 길어다 빙초산을 씻어 냈다. 지난한 봄이 겨우겨우 지났다. 예고도 없이 하숙집 주인이 번듯한 주택 단지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에게 어찌할 건지 물었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출퇴근길을 마다 않고 회사마저 옮기며 따라갔다. 덕분에 한동안 고양이를 잊고 지냈다. 서서히 가위눌림도 사라졌다. 새벽에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고마웠다.
고양이가 다시 내 삶에 든 것은 둘째를 낳고였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서너 해까진 고양이가 있는 줄 몰랐다. 아침 현관문을 여는데 지린내가 진동했다. 아이가 기어 나와 쌌을 리는 없고 도둑일까 의심했다. 어떻게 남의 집 현관문에 오줌을 쌀 수가 있냐며 투덜댔다. 벅벅 솔질로 씻어 낸 것이 무색하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보초 서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문을 열어 보았다. 보일러실에서 허연 털 뭉치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고양이가 내 집 안에 있을까?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저기서 나오지?’ 알 길이 없는데 그 뒤로 흰 고양이가 가끔씩 눈에 띄었다. 빗자루를 들고 악을 쓰며 쫓아내도 슬그머니 다시 와 쓰레기 봉투를 헤집고 오줌을 지렸다. 치킨이라도 먹은 다음 날 새벽 마당은 흡사 전쟁터 같았다. 타협의 여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양이 눈동자가 싫었다. 보는 듯 안 보는 듯한 희뿌연 눈동자와 마주한 날은 짜증이 배가 되었다. 뭔가 자꾸 눈치를 보고 꾀를 내는 듯했다. 나 없는 틈에 슬금슬금 해작질을 하는 것도 몸서리가 났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 남편의 거짓말과 닮아 있었다. 육아와 생활고로 기진맥진인데 술버릇까지 더해지던 고약한 시절이었다. 어렵게 시작한 사업은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어음이 난무했다.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 것이 힘들었다. 돈 계산이 안 되는 남편이 마시는 술은 모두 빚이 되었다. 욕구를 아무리 줄여도 생활의 부채가 쌓였다. 남편은 곧잘 거짓말로 궁핍을 회피했다. 원망도 이자가 붙었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이리 집을 헤집는데 무슨 일이 잘될까. 고양이 수명이 족히 10년은 넘는다는 소리에 비명이 터졌다.
키라를 만난 것은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해였다. 버려지던 고양이를 받아와 차고에 숨겨 두다 들켰다. 큰아이는 이삼 일 안에 분양 보낼 테니 며칠만 눈감아 달라며 큰 눈망울로 졸랐다. 나는 볼 생각도 않고 입을 꽉 다물었다. 새벽녘 동네 고양이들이 설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차고는 동네 고양이들이 들락거리는 아지트였다. 5개월짜리가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살그머니 내려가 차고 앞에 섰다. 애절한 야옹 소리 사이로 문대신 가려 놓은 판자를 긁는 소리가 급박했다. 제 딴엔 문을 넘어 살아 보겠다고 작은 몸으로 열심히 뛰어올랐다.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큰아이를 깨워 상자에 담아 현관으로 옮기라 했다. 그리고 이름이 생겼다.
키라는 선천적으로 잇몸이 부실했다. 없는 형편에 병원을 수시로 다녔다. 그래도 내치지 않았다. 더 부드럽고 더 영양가 높은 사료를 주문했다. 키라는 영리했다. 절대 하지 말라고 한 규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안방과 부엌에 녀석은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건 불안정했던 내 마음에 한 줄기 위로로 닿았다. 기특한 녀석에게 나는 마당을 허용했다. 밤이면 슬그머니 나가 온 데를 쏘다니다 새벽이면 검정을 묻힌 채로 문을 두드렸다. 물을 싫어하는 녀석을 강제로 씻기고 나면 식구들은 녹초가 되었다. 어느 순간 거무튀튀한 몰골도 뭉텅뭉텅 빠지는 털도 그러려니 했다. 자기보다 고양이를 더 챙긴다며 키라를 발로 차던 남편도 서서히 고양이에게 정을 붙였다.
희한했다. 새벽녘 고양이 울음소리가 전과 달랐다. 전보다 더 긴장했지만 무섭지 않았다. 키라의 소리가 묻어있을까 염려했다. 행여 나 같은 이를 만나 빗자루로 맞지 않을까 저주를 받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나지막이 키라를 부르면 어김없이 현관 앞에 나타났다. 어느덧 고양이는 따스함이 되었다. 그 무렵 아이들이 그리는 모든 그림에 키라가 등장했다. 나는 키라를 대상으로 시를 짓기도 했다. 남편의 거짓말도 술주정도 서서히 줄었다. 더뎠던 시간에 속도가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