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날로 잡았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조용해서 입가에 말(言)대신 미소가 걸렸다. 장을 담그기에 앞서 손가락을 꼽으며 날을 잡으시던 어머니가 우스웠는데 어느 결에 내가 그러했다. 어둠 속을 걸을 때 더듬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대할 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늘었다.
옛사람들은 장 담그기 좋은 날로 12간지 중 말[午]날과 손 없는 날인 음력 9일과 10일을 최고의 날로 쳤다. 장맛이 쓰면 집안에 망조가 든다. 간장과 된장은 일 년 중 가장 큰 먹거리라 절로 달력의 음력을 살폈다. 날을 정해도 비가 온다면 허탕인데 날이 좋으니 역시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일기예보까지 살폈던 사실은 장독대에 슬그머니 숨겼다.
보통은 음력 정월이나 3월에 장을 담그지만 나는 양력 1월 하순 초입에 장을 담갔다. 정월장은 삼월장보다 싱겁게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요즘은 장 담그기 키트도 있고 김치냉장고도 있어 적은 양이라면 아무 때나 장을 담가도 무방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삼십 여년 장으로 살뜰하게 내 입맛을 챙겼던 시어머니에게 받은 것이 비단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안이 적고 친구마저 적은 내게 곁에 남아 울타리가 되어 준 인연이 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엮어 낼까 싶었는데 어느 날 뜻이 맞았다. 모두들 어머니의 장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 사연으로 그리움이 같았다. 된장은 어찌어찌 사 먹지만 간장은 옛 맛과 너무 먼 맛이라 국이 맛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 햇살 부자인 내가 맞춤이었다. 언니는 미룰 새도 없이 시골집에 있던 큰 항아리를 실어 왔다. 거미줄 듬성한 항아리를 소독하고 세 집이 먹을 일 년 농사를 준비했다.
메주는 꼼꼼히 따져 네이버에서 구매했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건 메주균 종류가 그만큼 많아서 그렇다니 한 집에서 메주를 구매하는 건 위험했다. 두세 군데 메주를 섞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명인의 솜씨를 기대하며 상자를 열자 익숙하고 귀한 냄새가 먼저 반겼다. 연신 코를 가까이 댔다. 날을 정하고 하루 전에 흐르는 물에 메주를 씻어 말렸다. 메주 무게의 네 배의 물을 마련하고 보메 비중계가 18 눈금이 되게 천일염을 넣고 불순물을 가라앉혔다.
햇살이 손을 보태자 항아리에 메주를 쌓았다. 소금물을 체에 밭쳐 채우고 숯과 고추, 대추를 띄웠다. 날벌레를 막으려 면보로 항아리 입구를 감싸고 고무줄로 단단히 묶었다. 다른 항아리엔 황국장을 담갔다. 지난여름 만들어 둔 황국메주알을 꺼내 16보메로 준비한 소금물을 세 배 쯤 넣었다. 다시마와 황태 머리까지 넉넉히 넣고 꽁꽁 싸맸다. 일반 된장은 6,70일 후에 가르고, 황국장은 4,50일 후에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면 일 년 장 농사가 마무리 된다.
두 해 전 코로나로 사람 사이 거리가 멀었을 적이다. 노란색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누군가를 뜨겁게 부둥켜안고 싶었지만 가까운 이도 선뜻 품을 수 없었다. 심란한 마음에 어떤 우연을 기대하며 남편의 출장길을 따라나섰다. 낯선 장소가 주는 설렘으로라도 고여 있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싶었다.
대구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이 골목 저 골목에 발길을 놓고, 모퉁이 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대학 입구를 지키는 사자상도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눈처럼 흩날리는 은행잎을 보았다. 끝없이 떨어지는 노란색은 그리움 무더기가 되어 수북이 쌓였다. 그 속에 발을 묻고 길게 시간을 보내며 검은색 마스크의 웃픈 현실을 위로 받았다. 살 것 같은 마음에 허기가 몰렸다.
남편과 해 저무는 식당 거리를 기웃거렸다. 입이 짧은 내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니 어느덧 골목 끝에 다다랐다. 더 갈 곳도 없는 그곳에서 청국장 전문점이라 쓴 흐린 간판을 보았다. 그래, 어디서나 믿고 먹는 맛 아닌가. 식당은 정갈했다. 70을 초로에 둔 것 같은 내외분이 조용한 품새로 음식을 내왔다. 한 수저 뜨면서 눈이 번쩍했다. ‘이 맛이 진짜 청국장이지!’ 같은 마음으로 남편과 연신 눈을 맞추며 한 냄비를 다 비우자 그리움이 마침표를 찍었다. 대구를 떠나던 날에도 식당 문 열기를 기다려 한 그릇 뚝딱하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여름이 기승을 부리기 전에 된장을 가져가라 재촉했다. 서로 바쁘니 세 명이 한가한 날을 잡는 것도 일이었다.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고도 몇 달이 지났다. 간장은 뜨거운 햇살에 시나브로 달여져 처음보다 양이 많이 줄었다. 거의 매일 국을 끓이는 집들이라 된장보다 간장이 필요하다 그랬기에 마음이 급했다. 싱겁게 담은 장이라 뜨거운 햇살에 행여 잘못될까 염려도 컸다. 오며 가며 뚜껑 여닫은 수고에 걸맞게 한 수저 가득 맛나게 뜨는 모습을 어서 보고 싶었다.
“으음, 좋은 냄새!”
기분 좋은 소리가 장독대에 화음으로 울렸다. 된장 7kg에 간장 10L를 받아 안은 넉넉한 표정에 안 먹어도 배부른 듯 흐뭇했다. 언니네 작은딸은 임신 초기였다. 출퇴근이 힘겨웠던지 감기 몸살로 제 어미를 불렀다.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 된장찌개에 흰쌀밥을 차렸다. 편도가 부어 침 삼키는 것조차 힘든데 뚝딱 맛있게 먹고 기운을 차렸다며 인사를 전해 왔다. 어릴 적부터 자식처럼 봐 왔던 친구였다. 이제야 뭔가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맛에 시어머니는 치매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메주를 쑤고 장을 담갔을까. 된장을 꾹꾹 눌러 담던 손길이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