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현 Sep 22. 2024

채우지 못한 노트와 독립선언(2024아르코창작기금 선정

 한바탕 전쟁을 하고 아이들이 떠났다. 독립이었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저축 통장을 내밀고 방을 고르고 손잡고 나가 그릇을 고르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덕담을 나누며 독립시키겠다는 오랜 생각은 상상으로 끝났다. 내가 부른 참사였다. 나와는 전혀 닮은 데 없이 굴어도 콩 심은데 콩 난다고 내 못된 성정 그대로였다. “엄마 말 안 듣고 살려면 나가 살아!”라는 말에 두 딸은 밤새 불 켜고 앉아 두런거리더니 동이 트자마자 ‘독립하겠다’ 폭탄선언을 했다.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자식을 키우며 치마폭에 숨는 아이로 남길 바라지 않았으니 감사한 말이건만 억장이 무너졌다. 나가라 해서 나가는 자식을 두고 불효를 운운할 수도 없고 냅다 한마디 뱉었다. 

 “돈은?” 

 둘이서 용돈 모아 둔 돈이면 월세로 원룸을 구할 수 있다며 밤새 인터넷으로 집도 봐뒀단다. 산고産苦를 참았던 순간보다 더 큰 인내로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몇 마디 얹었다. 

 “치안이 허술한 곳은 절대 안 된다.” 

 그 길로 나가 어둑해서야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세 곳을 보여 주며 엄마가 안심 될 만한 곳을 선택하면 계약한다고 했다. 어찌나 당찬지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이 반쯤 나오다 들어갔다. 엄마보다 컴퓨터를 애지중지 챙겨 나가는 아이들을 보는데 어디서 그런 서러움이 솟는지 미소로 손 흔드는 건 고사하고 며칠이고 싸매고 누워 전화 한 통을 못 했다.    

  

 어미를 떠난 아이들은 봄날 물오른 버들강아지 같았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학업을 이어 가면서도 낯선 경험에 푹 빠져 싱싱했다. 나 혼자 빈 둥지를 껴안고 시골집 처마 밑에서 들었던 새끼 제비 소리를 되감고 되감았다. 모유가 도는 듯 눈알이 싸하고 눈물이 맺혔다. 혼자 학교 가는 법을 가르치려 전봇대 뒤에 요리조리 숨어 뒤따랐던 기억이 났다. 아이는 돌아보다 한 걸음 가고 돌아보다 두 걸음 가고 열두 번도 더 그러고서야 겨우 정문에 들었다. 쉼 없던 어미 제비의 날갯짓이 겹친다. 

    

 아이들 방은 이제 내 서재다. 여전히 아이들 물건이 넘쳐난다. 가끔씩 아이의 노트를 펼친다. 이삼십 권이 넘는 노트는 모두 예닐곱 장에서 필기가 끝나 있다. 깨알처럼 촘촘하고 반듯한 글씨체다. 채우지 못하고 남아 있는 빈 종이에 마음이 무너진다. 마지막장까지 채웠더라면 아이들은 다르게 독립했을까. 면이 서는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는 독립이었으면 폭죽 소리 들리고 눈물자국 없었을까. 어리석음인 줄 알면서도 기억이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내 연습장 귀퉁이에서 발견한 작은딸의 낙서

 나는 열 칸짜리 공책으로 글씨를 배우던 날부터 또박또박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숙제를 어김없이 해 가는 내 공책에 머물던 흘림체의 선생님 칭찬은 자존심이었다. 중학교 단짝 친구와 오래도록 편지를 주고받았다. 눈이 내리 듯 동글동글 써 내려간 친구의 글은 읽는 기쁨은 물론 보는 설렘에 부지런히 답신을 적었다. 내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친구의 글씨만 보였다. 문제를 알아차린 건 상급생이 되고서였다. 주번은 보조칠판에 다음 날 배울 국어 지문을 적고 집에 가야 했다. 좌우 열 맞춰 지문을 적고 자리에 돌아와서 보면 내 뜻과 달랐다. 국어 시간에 보조칠판을 펼치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났다. 줄도 없고 크기도 제각각인 글씨에 대한 부끄러움은 커서도 이어졌다. 은행에서 직원이 내민 서류에 글씨를 쓴 후 선뜻 내밀지를 못 했다. 알아보기 힘든 글자에 정자체로 덧칠을 하니 서류는 지저분한 낙서장처럼 보이기 일쑤였다. 면이 서지 않은 손이 자꾸 오그라들었다. 어느 결에 나의 이상형은 글씨를 잘 쓰는 남자였다. 

    

 부족함에서 비롯된 환상은 쓸데없는 선입견을 만들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반듯하다는 생각은 반듯한 사람은 글씨를 잘 쓴다는 생각과 맞물렸다. 남편은 반듯하게 잘 생겼다. 네 통의 연애편지에 답장이 없는 그를 두고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다. 서운했던 마음은 코팅된 편지를 그의 서랍에서 발견하자 사라졌다. 답장을 안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글씨가 엉망이었다. 가지런히 흘려 쓴 글씨가 아닌 삐뚤빼뚤 크기도 간격도 졸렬했다. 마치 연필을 쥐어 본 적 없는 사람의 글씨였다. 무안할까 봐 웃지도 못하고 실망한 마음 들킬까 애써 시선을 피했다.   

  

 글씨에 면이 서길 바란 내 기다림은 지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연필 쥐는 법과 글씨 쓰는 자세에 엄격했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하다가도 시험지에 쓴 글씨를 지적했다. 

 “좀 큼직큼직하게 쓰지 이렇게 작은 글씨로 주관식 답을 쓰면 선생님 마음이 동하겠니?” 

 아쉽게 놓친 1점이 글씨체에 있는 양 말을 하면 아이들은 금방 골이 난 표정을 지었다. 사춘기에 들자 아이들은 글씨 대신 그림을 그렸다. 어떤 시험지엔 답보다 그림이 많았다. 외계인처럼 구는 아이들의 마음을 나는 잘 몰랐다. 글씨를 잘 쓰고 성적이 좋으면 세상에 면이 설 일이 많을 터였다. 그 뻔한 길을 놓치고 있으니 날 선 조바심이 누굴 베었을지 빈 노트가 대답하는 듯했다.     


 마지막장까지 꽉 채운 노트를 꺼낸다. 연습장이라 노트 목록으로 묶지 않았지만 두툼함에 끌려 찬찬히 펼쳤다. 삼차함수의 근의 공식이 보이고, 글씨 연습을 했는지 이런저런 모양으로 쓴 글씨가 보이고, 나태주 시인의 시도 보였다. 영어 문장도 한 바닥 적혀있고 고시조도 한 수 흘겨 있었다. 나머진 낙서 같은 그림이 가득이었다. 눈만 또는 입술만 때론 사람의 등이나 옆얼굴이 4B연필심으로 숨결을 얻은 듯 펄럭펄럭 다음 장으로 움직였다. 아이들은 정형화되지 않은 채 벌써부터 내 품을 떠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독립이 아니었다. 저 나름대로 키를 키우던 아이들이 낙서로 계속 묻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근시적인 내 양육에 갇혀 성장하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다.  

   

 아이들이 남긴 빈 노트를 연습장 삼아 낙서 같은 글씨를 채운다. 글씨체에 대한 미련은 이제 없다. 세상은 변했고 나는 타이핑 속도가 좋다. 아이들의 이른 독립은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어미다운 결정으로 가족 간에 칭송된다. 사람 사는 길은 여러 갈래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에도 파랑새는 무수히 살고 있음을 아이들이 남긴 빈 노트가 말한다.          

이전 02화 나눔의 꽃(2024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