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났다. 37.7도. 코로나 검사키트는 한 줄로 나왔지만, 주말 끼고 삼 일째라 은근히 걱정이다. 나가 있는 식구들에겐 부러 알리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일이 흔할 텐데 모른 채 지나길 바라서다. 월요일 서둘러 병원을 찾는다.
“장염이네요.”
의사의 한 마디에 통증과 상관없이 마음이 가볍다.
약국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이른 시간인데도 시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바지런히 지나간다. 불룩하게 기억되는 시장에서의 추억, 엄마와 자주 먹던 콩설기가 생각난다.
시장은 가게 문 여는 소리로 분주하다. 벌써 손님을 기다리는 가지런한 야채들 사이 콩나물 통 내리는 소리가 활력 있다. 새벽 문을 연 떡집의 좌판에는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함이 색색으로 풍성하다. 장염이라는 의사 말을 떠올린다. 콩설기만을 계산하며 시장의 냄새를 맡는다. 초록의 햇사과 향이 들큼한 시장에 싱싱함을 더한다.
시장엔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어묵 가게와 두붓집은 아이들 유치원 시장 체험으로 종종 왔던 곳이니 20년이 넘었다. 주인이 친절하여 갓 나온 어묵을 꼬치에 꽂아준다. 분식 가게와 고추방앗간은 내가 이곳에 살기 전부터 있었으니 30년이 넘었다. 주인은 물건에 덤으로 시간을 얹어 판다.
오가며 들은 시장 사람들 사연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누구는 아파서 한동안 가게 문을 닫았고 또 누구는 손자가 결혼했다. 어느 집 자식은 대기업에 취직했으며 어느 집 자식은 엄마를 찾아와 채소 판 돈 내놓으라 고함을 질렀다. 가게를 열고 반년도 안 지나 문 닫은 가게주인의 얘기도 섞인다. 더함도 모자람도 사람 사는 모습으로 건강하다.
모퉁이 생선가게가 조용하다. 구부정한 허리, 주름진 손마디로 손님에게 부지런한 주인장이 보이지 않는다. 가게 앞에 빈 나무상자가 가지런히 쌓여있다. 어디가 아프신가. 걱정되는 마음에 두리번거리는데 누런 상자 쪼가리에 써둔 비뚤비뚤한 글씨가 눈에 든다. ‘쉽니다. 7/20~.’ 웃음이 난다. 며칠까지 쉬는지 딱 떨어지지 않는 주인장의 성품은 에누리로 덤으로 손님 끄는 비결이다. 그 누구의 쉼보다 반갑고, 안심이다.
시장을 나오는 데 마음이 어느새 불룩하다. ‘괜찮나?’ 누구 하나 물어주지 않지만 낯익음이 이마 위 물수건처럼 열을 내린다. 당신이 까준 파, 당신이 다듬어준 나물, 당신이 끓여준 국을 먹고 내가 잘 살았다. 외로움은 허상일 뿐 혼자 산 적 없음이 위로로 따듯하다. 이번에도 몸만 아프고 마음은 거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