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작열한다. 8월 무더위가 방 안에도 한창이다. 50년 된 낡은 주택에서 황국을 피우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서둘러 콩을 준비한다. 살다 살다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리 고마울 때가 없다. 긴 장마 덕에 습도마저 적절하니 황국 맛이 어떨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신다.
먼저 콩을 고른다. 처음엔 백태와 서리태를 섞어 썼다. 된장을 끓여 놓으니 거뭇거뭇 멋이 없다. 맛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고 이젠 백태만 쓴다. 기계로 고른 콩이지만 두루두루 휘저어 본다. 못난 것 두어 개가 눈에 띌 뿐이다. 고른 콩 2kg을 물에 담근다.
어릴 적엔 콩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밭에서 직접 수확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사 온 콩도 벌레 먹은 것이나 쭉정이가 많았다. 붙임성 있던 나는 엄마와 마주 앉아 상 위에 콩을 뚫어져라 살폈다. 날름날름 속도가 나는 엄마와 달리 눈만 아팠다. 엄마처럼 하고 싶어 빨리 골라 소쿠리에 담으면 “요거랑 요거는?” 하며 내가 고른 콩 무더기에 손이 놓였다. 봐주기가 없었던 엄마가 미소로 떠오른다.
반나절 지나 불린 콩을 삶는다. 콩물은 쉬이 넘친다. 시간도 오래 걸리니 불린 콩보다 서너 배 넉넉한 솥에서 삶아야 뒤탈이 없다. 손으로 만져 부드럽게 뭉개질 때까지 몇 번이고 솥뚜껑을 열고 만져본다. 한여름의 이 시간은 참으로 지루하고 덥다. 사방으로 열린 문에도 부엌은 어느새 한증막이다. 무엇을 얻고자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지.
입이 짧은 나는 날 것, 비린 것을 잘 먹지 못한다. 김치 종류도 별로다. 이십 대 초반에 횟집엘 처음 갔었다. 어려운 자리였는데 메인인 회를 겨우 한두 점하고 열심히 먹는 시늉 하느라 상추를 엄청 먹었다. “제가 식성도 물어보지 않고 큰 실례를 했습니다.” 난처한 인사에 민망한 마음이 들면서도 내 젓가락은 그대로 한 접시로만 향했다. 이 얘기는 까다로운 식성을 두고 종종 들먹거렸다. 이런 나도 먹성이 좋다는 얘길 들을 때가 있다. 된장찌개를 먹을 때다. 된장은 어느 집 누가 끓여도 내 입에 감친다. 자연히 된장에 욕심을 부릴 수밖에.
콩을 눌러보니 납작하게 퍼진다. 맞춤하게 잘 삶겼다. 채반에 콩을 건진다. 엄마는 메주콩을 뜸 들일 적엔 그 위에 꼭 막걸리에 갠 밀가루 반죽을 얹었다. 듬성듬성 콩을 붙이고 나오던 노르스름한 빵이 추억으로 구수하다. 적당히 식을 때를 기다린다. 너무 뜨거우면 황국균이 죽고 너무 식으면 황국이 피지 않아 일개 청국장이 된다. 뜨거워도 맨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에서 황국균을 한두 숟가락 골고루 섞는다. 나도 모르게 바람이 실리는지 손길이 부드럽다. 잘 피어나다오.
높이가 낮고 넓은 바구니에 젖은 면포를 깔고 황국균 바른 콩을 골고루 편다. 콩을 두툼하게 담지 않아야 한다. 처음에 바구니가 모자라 형편껏 담았더니 황국이 제대로 피지 않고 청국장이 된 경험이 있다. 다시 젖은 면포를 콩 위에 덮는다. 사랑방에 전기장판을 깔고 중간 온도에 맞춘다. 바구니를 올리고 나일론 이불을 덮어 습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한다.
된장을 좋아하는 나는 시어머니가 담가 주는 된장이 늘 불만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너무 짜서 된장을 듬뿍 넣고 끓이는 찌개는 엄두를 못 냈다. 내 투정에 콩을 삶아 섞어주었지만, 짠맛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된장을 들고 오는 건 입이 짧은 내가 어머니 정성을 몰라라 할 수 없어 챙기는 효심 정도였다.
시어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기억을 잃자, 자신이 사랑했던 꽃나무조차 몰라보고 파내 버렸다. 그런 당신이 찬바람이 나자 이웃집에서 콩을 사다 메주를 만들었다. 다음 해 음력 2월에 장을 담갔는데 6월에 장을 가르고 맛을 보니 짜디 짠맛에 더해 떫고 썼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 혹여나 하고 장독의 신비를 빌려 세월에 맡겼다. 당장 된장이 궁했다. 장은 정성이고 사랑이었음을 어머니는 그렇게 알린 셈이다.
황국균을 인터넷에서 찾아냈을 때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유레카를 외쳤다. 곧바로 그건 익히 알고 있던 누룩곰팡이의 다른 이름이란 걸 알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재래식 메주에 있는 균은 높은 온도에 약하고 발효될 때 잡균이 들어간다. 그 때문에 조건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진다. 당연히 실패를 줄이기 위해 장을 짜게 담글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았다. 더욱이 여긴 남쪽 지방 아닌가. 황국균은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발효하기에 잡균이 들 틈이 없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이거라면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되겠다. 심심한 된장을 드디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설렜다.
하루가 지나자, 콩들이 뽀얗게 옷을 입었다. 이틀째 되니 실처럼 가는 노란 꽃들이 소담스레 피어났다. 누가 보아도 황국이었다. 실실 웃음이 났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못한 일을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일었다. 들추면 안 되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러워 자꾸 귀퉁이를 열고 들여다봤다.
장판의 온도를 고온에 두고 종이 포일을 깐다. 그 위에 황국을 한 알 한 알 펴고 말린다. 첫해엔 잘한답시고 ‘된장엔 역시 한지여야지’하고 황국 알 메주를 깔고 말렸다가 들러붙은 한지를 떼어낸다고 몇 날이나 애를 먹었다. 한여름엔 선풍기 바람을 보태는 것이 건조에 도움이 된다. 너무 빠른 건조는 된장 맛이 안 나고 더딘 건조는 황국 특유의 풍미를 잃는다. 닷새 후 바싹 마른 황국 알 매주 향을 맡아보니 된장 맛이 절로 그려졌다.
황국 된장은 들큰하고 감칠맛이 깊다. 재래된장과 청국장과 확연히 달라 품격 있는 맛이다. 내가 만든 맛이 처음이었으니 근거가 약하지만 틀림없을 듯하다. 황국균의 월등한 발효 힘이면 배운 바 없는 서툰 내 솜씨도 거뜬히 묻힐 테니까. 된장에 정성을 쏟던 지난날의 어머니는 나의 황국 된장 맛을 뭐라 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