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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May 02. 2022

마흔의 단상

은래빛 에세이



내 나이가 마흔이 되었다.

물론 만 나이로 하면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아 서른여덟이지만

누가 그랬던가, 자꾸 만 나이로 얘기하는 거 자체가 진 거라나.

쿨하게 마흔이 되었음을 인정하라고 말이다.



그래, 난 마흔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순탄한 시간이 흘러 마흔이 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혹여는 저기 저 사람이 마흔이 된 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내 안에서는 많은 굴곡과 역경과 내면의 갈등과 인내 속에서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젊은 나이는 아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지내왔던 내 삶에서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젊어 보이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이다.



물론 어르신들의 시선에서 보면 나는 이제 갓 삼십 대를 벗어난 한창 인생을 살아갈 젊은 여인네로 보일 수 있겠지만

여하튼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소소한 고민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흰머리가 그러했다.

 
마흔이 되고 나서 내 위쪽 옆머리에서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난 그것이 흰머리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빛이 반사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흰머리였고 옆머리뿐만 아니라 곳곳에 상당수 포진(?)되어 있었다.

처음엔 기겁하며 흰머리들을 속속 뽑아 없앴는데, 그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혼자서 샅샅이 머리를 뒤지며 여기저기 뽑아데다 보면,

힘주어 노려보면서 흰머리를 구별하느라 내 눈알은 몹시도 피로해졌고,

실수로 검은 머리카락을 뽑는 때도 있었으며,

두피도 얼얼해져 이게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중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얘기로는 흰머리를 자꾸 뽑으면 나중에 대머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모공에는 평생 자라나는 머리카락 수가 한정되어 있는데,

자꾸 뽑아대면 더 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도 그럴싸했다.

무한히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비슷한 예로 여성의 자궁 안에서 나오는 난자도 평생 나오는 수가 정해져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열심히 뽑고 나면 흰머리들을 전부 소탕(?)할 수 있었지만,

점점 흰머리가 늘어나다 보면 뽑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테니 법을 바꾸긴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용실에서 추천한 방법은, 흰머리를 발견하면 뽑지 말고 두피의 가까운 곳에서 가위로 살짝이 잘라주라는 것이었다.



난 그 이후로 흰머리를 발견하면 흰머리를 가만히 잡고 쓰다듬듯이 두피까지 거슬러 올라가
작은 쪽가위로 살짝 잘라주었다.
(물론 조심해도 검정머리가 같이 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안 좋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른 후 금세 자라난 흰머리가 뾰족하게 잔디처럼 차렷! 하고 서있는 것이었다.

나의 가르마나 옆머리에 짧은 흰머리가 금세 뾱! 하고 자라나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종종 부서 사람이나 친한 선후배를 만나 점심을 먹거나 대화를 하면,

그들의 시선이 나의 짧은 흰머리에 가있는 것을 종종 깨닫곤 했다.

역시 그들을 완벽히 퇴치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뾱 솟아오른 짧은 흰머리를 자주 잘라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가위질을 할 때마다 인간의 무력함을 느낀달까.

 
어딘지 모르게 나이 든 티가 나는 얼굴이나,
약간씩 변한 체형과 뱃살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내 얼굴에는 아직 크고 깊은 주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앳되고 둥근 느낌, 그리고 에너지 있는 눈빛 같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스스로 눈에 총기를 두며 미소를 띄워보아도 뭔가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또한 아이를 낳고, 불안장애를 겪으면서 조금씩 변한 체형도 그러했다.

나의 체형은 줄곧 마르고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뱃살이 나오게 되었고, 수술 자국과 튼살, 그리고 군데군데 피부도 더 거무튀튀해졌다.

탄력이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비단 겉모습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삶의 루트가 결정되고 안정적이 될수록,

그 삶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는 반면 이제 더 이상 내 삶에서 변화는 어렵겠구나 하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점차 기쁜 일도, 의욕도, 열정도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이를 먹어간다고나 할까.
 




앞서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미처 알지 못했던 소소한 고민들이 늘어가는  같다고 말했다.



예전의 내가 일상생활이나 출근을 하면서 나의 '흰머리'에 대한 고민을 했을 리 있나.

그때는 거울 속에 보이는 풍성하고도 검은 머리카락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것에 고민하느라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내가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오랜 시간을 들여서


거울 속의 내 검은 머리카락과


총기 있는 눈동자상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마흔의 단상 끝 >


타치아노, 거울앞에선 비너스, 1555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거울을 보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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