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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건축대학원 졸업전시라고?

영국 UCL 바틀렛 건축대학원 졸업전시 <Fifteen Show> 리뷰

by 이서정 Dec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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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 영국박물관, 테이트 모던… 영국 대표 미술관들 제치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영국 UCL 바틀렛 건축대학원 (UCL Bartlett School of Architecture)의 졸업전시다.   

Situated Practice

Design for Performance & Interaction

Design for Manufacture

위 세 과정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피프틴 쇼(Fifteen Show)라고 불리는데, 보통 12개월의 영국 석사과정과 다르게 15개월 코스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 번째 과정을 졸업하는 친구가 있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전시도 흥미로웠지만 과정 자체가 독특해 계속 설명을 요구했다...


Situated Practice 전시 전경


Situated Practice는 "장소특정적 실천"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practice"란 단어가 참 애물단지다. 미술 작가의 작업도 "artistic practice"라고 흔히 칭하는데, 이를 "미술 실천"으로 번역할 때도 그 의미가 와닿지 않는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는 학생들이 특정 장소를 골라 그 장소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 즉, 작업물을 만들어 낸다. 결과물은 오디오나 비디오 작품, 설치물, 비판적 글쓰기, 로컬 커뮤니티 프로젝트, 퍼포먼스 등으로 다양하고, 커멘터리(commentary)라고 하는 각자의 작업물에 대한 해설을 동반한다.


학생들이 선택한 ”장소“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런던 페캠 도서관(The Peckham Library), 오스터리 공원(Osterley Park), 차이나타운의 중국집, 태국의 버튼 공장, UCL 대학의 지도보관실 등 영국부터 중국까지 지역도 다양하고, 공원부터 방 크기의 공간까지 규모도 제각각이다. 인상 깊었던 작업은 식민사관에 입각한 카쉬미르 지도를 통해 현재진행형인 점령을 들추는 "performative lecture (수행적 강연)", 작업 기간 동안 차이나타운의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그들과 소통하며 커뮤니티의 변화를 이끈 작업이었다. 후자의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했던 식당 사람들이 오프닝 날 전시를 보러 왔다는 훈훈한 스토리도 들었다.


Situated Practice 전시


Design for Performance & Interaction은 퍼포먼스와 상호작용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Situated Practice가 연구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여기는 실제 사용자의 경험이 더 중요해 보였다. 작업물들도 XR이나 로봇 등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들이 많았다. 인도인인 내 친구의 작업은 인도의 전통적인 요리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 시각, 촉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레바논의 사라진 건축물과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XR 작업은 관람객들이 체험해 보겠다고 줄을 설 정도로 전시장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다.


Design for Performance and Interaction 전시


이 두 과정 모두 건축에 뿌리를 두고 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건축을 전공했음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학과 과정과 매우 달라 보인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Situated Practice는 어떤 장소의 "환경"을 연구하고, 환경을 구축하는 사람으로서의 건축가가 어떻게 자치성을 갖고, 어떤 책임과 윤리를 가지는지 탐구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퍼포먼스와 상호작용 디자인은 사용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춰, 사람들이 어떻게 구축물과 상호작용하고, 행위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행해지며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런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같았다.


건축대학에서 이토록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이끌어낼 수 있다니 놀라웠다. 비판적 사고방식을 키우고, 창의적 문제 해결 방식을 모색하고, 자신의 창작물에 따르는 책임을 이해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영국적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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