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 타박상이랑 다리 골절이에요, 오른쪽. 뭐... 교통사고요. 그냥... 핸드폰 보면서 횡단보도 건너다가.
핸드폰... 핸드폰이 좀 그렇긴 하죠. 그렇지만... 혹시 그런 적 없으세요? 핸드폰을 잠깐 본 것 같은데 고개를 드니 두 시간 세 시간씩 지나 있던 적이요. 전 아침 먹고 식탁에 앉아 폰으로 인터넷 기사 좀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들이 밥 달라고 해서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더라고요. 9시에 온라인 수업하라고 애들 컴퓨터 켜주고 그사이 저는 잠깐 쉬면서 핸드폰을 본 건데 점심시간인 거예요. 식탁에는 먹다 남은 지저분한 그릇이랑 수저가 그대로 말라붙어 있고.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죠. 음... 솔직히 한두 번은 아니고... 아마 작년 겨울? 봄부터인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애들이 학교도 학원도 못 가고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저도 어딜 못 나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요?
뭐 별 건 아니에요. 포털에서 기사 몇 개 보다 보면 뜨는 광고 타고 들어가서 인쇼 좀 하고 장바구니 놀이 좀 하고... 요새 온라인 집들이가 대세잖아요? 인기 있는 인테리어 사진 좀 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검색해보고요, 지역 맘카페랑 SNS 들어가 보고... 뭐 그런 거죠. 네? 팔로우요? 음... 글쎄요. 한 삼사백? 아니 그 많은 걸 매번 다 보진 않고 그냥 넘기는 게 대부분이긴 한데... 사람들을 못 만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아무래도 요즘 유행을 알기 어렵잖아요. 그런 거라도 봐야지 그럼 어떻게 해요.
남편은 별 관심 없어요. 가끔 쓸데없이 그런 걸 뭐하러 보냐고는 해요. SNS 보고 상술에 넘어가 이것저것 사재낄까 봐 그런 거겠죠. 얼마 전에도 식구 수대로 접시와 머그잔 세트를 좀 샀는데 하필이면 남편이 집에 있을 때 택배가 온 거예요. 쓸데없는 것을 또 샀다고 투덜거리더군요. 주말 아침에 브런치를 예쁘게 차려주면 자기도 기분 좋아하면서. 밖에 나가서 그 정도 상차림 받으려면 네 식구에 십만 원도 더 들걸요? 그리고 요즘은 거리 두기니 집합 금지니 해서 식당 가기도 어렵잖아요. 게다가 리퍼 상품이어서 정상가보다 85%나 싸게 산 거였다고요. 제가 접시 몇 장 사는 것보다 자기가 게임을 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인지 본인은 모르죠.
요즘 애들이 집에서 게임을 얼마나 하는지 아빠가 어떻게 알겠어요? 낮에 집에 있어야 알지. 온라인 수업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하나씩 사줬거든요. 그러니까 눈만 뜨면 그 앞에 앉아 게임만 하는 거예요. 우리 애들요? 아들 쌍둥이요. 딸들은 좀 낫다면서요? 아니에요? 유튜브? 아 언니 딸은 유튜브를 그렇게 봐요? 유튜브랑 뭐? 틱톡? 우리 애들은 게임해요. 제 아빠가 밤마다 게임하는 거 보고 배운 거죠, 모, 어디서 배웠겠어요.
전 아침부터 피곤해요. 남편이 새벽에 출근하거든요. 집에서 6시에 나가는데, 아, 우리 남편은 택배 대리점 운영해요. 근무지가 멀진 않지만, 일찍 움직여야 해서 아침은 사무실에 나가서 먹어요. 제가 도시락을 싸줘요. 그것도 다른 직원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싸려면 전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도시락이 잘 싸진 날은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요. 사진에 하트가 많이 달리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예쁘다, 맛있겠다, 대단하다고 댓글까지 달아주면 으쓱해지죠. 맞아요, 전 제 자존감을 위해서 인스타를 해요. 저 같은 주부가 인스타에서나 칭찬받을 수 있지 어디 가서 칭찬받겠어요. 남편도 먹을 줄이나 알고 반찬 투정이나 할 줄 알지 도시락 싸줘서 고맙다는 말 한 번 한 적도 없고. 사진 올리고 부엌 좀 치우고 나면 애들 깨울 시간이에요. 초 4. 당연히 소리를 질러야 일어나죠. 겨우 밥 먹이고 세수시키고 머리 빗겨서 방에 들여보내야 저도 한숨 돌려요.
그리고 조용한 틈 타서 핸드폰을 좀 보는 건데... 현타 제대로 오죠. 안 보고 싶은데 계속 보게 돼요. 나는 도시락 싸고 남은 반찬에 애들이 먹다 남긴 밥 긁어먹고 있는데 SNS에 올라오는 식사 사진들은 어쩜 그렇게 예쁜지요. 다들 진짜 그렇게 먹고사나? 출근길이 바빠서 대충 차렸다는 식탁이 프렌치 식당 같아요. 전 출근도 안 하는데 왜 우리 집 아침은 그런 분위기가 안 날까요? 전업주부들 부엌은 어떤 줄 아세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직접 다, 막, 만든다. 막 통나무를 갈아서 도마 만들고 막 쇠를 두드려…. 참나, 진짜 말 그대로 쇠를 벼려서 칼을 만들더라니까요. 자기가 직접 만든 칼에 도마에 요리를 척척척. 다들 무슨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식탁을 원목으로 바꿨거든요. 그 사람들 사진에 비하면 제 것이 좀... 촌스러워보이기도 하고. 상차림을 좀 더 예쁘게 찍으려면 아무래도 원목식탁인가 싶어서. 그랬더니 한 달도 안 돼 막 김칫국물에 막 사인펜 낙서에... 막 포크로 찍히고... 막. 애들한테 조심해라, 하지 말라 아무리 말해도 걔들 귀에는 제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좀 예쁜 밥 좀 먹고 싶다고요. 예쁜 게 좋잖아요? 안 그래요? 리넨을 깔면 좀 예뻐 보이고 예쁘면 엄마 기분이 좋고 기분 좋으면 애들한테 소리도 덜 지를 테니까, 집안의 평화를 위해 리넨을 샀어요. 식구 수대로 딱 네 장만. 그런데 3일도 안 돼 우리 둘째가 거기다 카레를 엎은 거야. 그리고 제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제 형 앞에 깔린 리넨을 끌어다 닦네. 카레예요. 언니, 카레. 나 정말 환장할 뻔했어요. 남편은 카드 문자 보고 무슨 행주 쪼가리에 육만 원을 썼냐고 퉁퉁거리고요. 내 참 드러워서... 나라고 저 사람들처럼 살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그러려면 원목 식탁, 도시락 세트, 접시, 리넨... 다 필요한 건데.
너무 부러워요. 저도 예쁜 집에서 예쁜 옷 입고 예쁘게, 살고 싶거든요. 집에서 제가 유일하게 여자여서 그런지 전혀 공감받지 못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가 이렇게 살려고 결혼하고 애 낳은 건 아니거든요. 목 늘어나고 펑퍼짐한 티셔츠는 수유할 때 1~2년 입고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뭐, 사이즈가 여전히 맞네요. 작아지지 않아 다행인 건가요. 편해요. 그런데 편해서 더 싫은 기분, 아세요?
저도 이런 것에 신경 쓰면서 살기 피곤해요. 그래서 지난주에 더는 핸드폰 안 보려고 애들 온라인 수업 시작하자마자 집에서 나왔어요. 집 근처 뒷산에나 올라갔다 오려고요.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여자를 만난 거예요. 제 나이 또래인 전업주부죠. 아니, 도대체 왜 그 여자는 그렇게 날씬하고 세련된 거죠?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고 짙은 파란색 레깅스에 허리가 쏙 들어간 바람막이를 입었는데, 20대 같더라고요. 보자마자 짜증 나서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았어요. 저는 마땅한 게 없어 남편이 작다고 안 입는 아디다스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을 입고 있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이 너무 비교됐어요. 그 여자는 아침에 리넨이 깔린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까요? 인스타도 하겠죠? 분명 하트도 많이 받을 거예요. 많이 받게 생겼어.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데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왜 나만 이렇게 초라한 건지 뭐가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내 일상은 리투아니아산 리넨은커녕 닳을 대로 닳은 수건 같을까요. 이 상태로 5년 10년만 더 살면 그땐 구멍까지 나서 수건도 아닌 걸레가 될까 무서워요. 아니 그냥 제 기분이 그렇다고요. 지금이야 젊다면 젊은 나이라 버틴다지만 오십 넘으면... 아 언니 50대예요? 동안이시네. 전 저보다 두세 살 많으신 줄 알았죠. 호호.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서 레깅스를 검색했어요. 또 다른 세계더군요. 1~2만 원짜리 저렴이에서부터 10만 원도 훌쩍 넘는 것까지 있었어요. 저같이 뚱뚱한 사람은 금방 살이 빠질 테니 싼 것을 살까, 부담돼도 비싼 것을 입어야 조금이라도 더 날씬해 보이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왔어요.
그리고 뭐, 지금 보시다시피.
2주일 입원하고 퇴원할 거래요. 애들은 친정엄마가 오셔서 봐주고 계시죠. 보험 처리가 문제예요. 배달 오토바이인데 남편 말이 보험을 들어놨을 것 같지 않대요. 신호를 위반한 건 오토바이인데... 그 아저씨는 크게 안 다쳤대요. 그나마 다행이죠. 아휴,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런데 언니, 저 레깅스 뭐 살까요? 딸한테 입었을 때 날씬해 보이는 레깅스 추천 좀 해달라 해보세요. 색깔이라도. 아무래도 진한 색이 낫겠죠? 아줌마 전용으로 나온 모델은 없을까요? 집에 가면 다시는 츄리닝은 안 입고 싶어요. 레깅스 입고 예쁘게, 살고 싶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