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 기분 좋게 하고 들어왔다
뭐 취해서 그런건 아니고.
가만히 자취방을 본다
곳곳에 내가 보인다
얻어 온 맥주를 가지런히 정리 해두는 나
편의점에서 싼 과자를 발견해서 덜컥 사와놓고 한켠에 소중히 모셔둔 나
이가 안맞아 낑낑 대며 선풍기를 조립하던 나
톱밥 조심히 털어가며 헹거 조립하던 나
길거리 술집에서 사은품으로 받아온 모자를 뿌듯히 걸어두는 나
빔프로젝터 처음 샀을때 너무 좋아서 혼잣말로 신나하던 나
모든 내가 사랑스럽다
전혀 몰랐는데, 이제야 보인다
이 공간에 썼던 내 소중한 시간들이.
이 자취방에 쏟았던 내 예쁜 마음들이.
온갖 설렘을 품었던 그 내 표정들이.
기록해두고 싶었다.
뭐 취해서 그런건 아니고.
잊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