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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보다 May 08. 2024

어른이 되면 평가하며 살 줄 알았지

중간고사 기간을 마무리하며

"시간이 부족해서 검토 못 하고 냈어요."

"선배들이랑 한 교실에서 시험 봐서 너무 긴장되었어요."

"다 풀었는데... 한 페이지를 마킹 못하고 제출했어요."

"아, 분모를 안 써서 틀렸어요. 백 점 맞을 수 있었는데 너무 억울해요."


중고등학생들 중간고사 기간이 끝난 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보게 된 중2 아이들의 후기가 특히 다양했다. 지필 고사는 그동안 봐왔던 단원평가나 수행평가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을 선사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시험 보는 거 너무 싫다고 우는 아이도 있었다.


사실 울었던 그 아이는 딸아이다.

"시험 보는 너무 싫어. 빨리 어른 되고 싶어..." 이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달래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른이 되어도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단다.'


나도 학생 신분만 벗어나면 시험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평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강사를 지원하면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20~30분 정도 길이의 시강을 준비해 오라고 한다. 원장을 비롯한 강사들 앞에서 시강을 한다는 것은 절에서 공연하는 댄스가수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좋은지 싫은지 없는 냉정한 표정들과 마주하며 준비한 내용의 50%도 보여주지 못한 끝나버리는 시간. 처음에는 초보 강사의 부족함 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경력이 아무리 쌓여도 시강은 원래 그런 거다'라는 선배 강사의 말에 나는 절망했고, 시강 안 하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내 학원을 차리고 싶다. 내가 원장이 되면 평가받지 않아도 되겠지.'

참 철없는 생각이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그랬던가. 회사는 전쟁터지만, 나가면 지옥이라고. 그 말이 정답이다.

몇 년 전 남편과 나는 동네에 작은 학원을 호기롭게 차리면서 자영업자의 세계에 발을 담갔다. 자영업자에게는 온전한 선택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선택은 곧 평가였다. 선택에 대한 결과도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시강에 대한 피드백과 업무 보조를 받을 수 있었고, 일한 만큼 수입은 보장되었다. 그러나 자영업자의 삶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에겐 매출이 곧 평가에 대한 결과이며, 결과에 대한 분석을 잘 못하면 더 나쁜 결과가 기다릴지도 모르고, 코로나19 같은 예상 못한 사건이 터지면 중간고사 전 날이라도 학원 문을 닫아야 했다.


평가는 입에 쓴 약이다. 그러나 쓰다고 다 약은 아니다. 적절한 피드백과 조언이 수반되어야 몸에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쓰디쓴 경험을 몸에 좋은 약으로 만들기 위해서.

평가의 맛을 처음 경험한 아이들과 시험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이번 경험이 아이들에게 좋은 약이 되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도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쓴 약 잘 먹으라고 보내주신 사탕

 (대문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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