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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Apr 27. 2024

20대 돈벌이의 교훈

취업도전과 실패를 감내할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본 일

IMF의 끝물, 몇 년 간 신규채용이 없던 삼성 등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기 시작했다. 채용시장엔 그간 취업시장에 정체된 졸업생이 뒤섞여 수백,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일을 하며 사회경험을 쌓고 책도 많이 읽으며 고민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력서에 쓸 수 없는 경험은 쉽게 무시됐다. 대학생활 전체가 이면지에 적힌 검은 글자처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꿈이 떠올랐고, 가망 없는 취업 전선에 나서느니 차라리 졸업 후 일 이년 간 열심히 글을 쓰며 정진하면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이 생각을 친한 선배에게 털어놓았다. 선배는 차분히 다 듣고 나선 말했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것과 취업을 포기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도리어 네가 훌륭한 작가가 된다 해도 어느 시점엔 스스로 묻게 될 거야. 취업 실패를 피하려고 작가의 길을 택한 건 아니었을까? 하고. 작가가 되고 싶다면 합격증을 받은 다음, 그때 회사를 포기하면 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배 말이 옳았다. 실패를 감내할 용기가 없는 게 아니라면 합격한 뒤에 포기하면 된다. 꿈 앞에 떳떳하려면 이 과정은 피해 가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고맙게도 내 장점들에 대해 한동안 얘기하며 격려해 줬다.


이 경험을 통해 꿈을 이뤄가는 데 필요한 두 가지 귀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꿈을 이루는 과정은 한번만 주어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란 것.

둘째, 결정이 자기기만인지 아닌지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것.


상담을 하다 보니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대학시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1.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집안 형편 때문에 취업하기로 하고 꿈을 접었습니다.'
2. '기자가 되고 싶은 데 집안에서 반대를 해서 포기하려고 합니다.'
3. '취업지원센터에 갔더니 이 정도 스펙으론 무리라고 해서 휴학을 할까 고민입니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면 취업을 하고 돈을 모아 대학원에 진학하면 된다. 물론 풀타임 학생보다 고된 길이지만 꿈을 이루는 길은 쉽지 않은 게 정상이다.


결정이 자기기만이 되지 않기 위해선 기자 합격증을 부모님께 가지고 가서 보이면 된다. 자식이 꿈을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느끼신다면 그 어느 부모도 쉽게 반대하지 못한다. 게다가 합격증을 내 손에 쥔 순간, 반대를 물리칠 확신과 용기가 가득 차 오른다.  


질문하는 학생은 이미 스스로 답을 알고 있을 때가 많다. 단순해 보이는 해답들이지만 미로정원에 들어서면 눈앞의 나뭇가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정작 중요한 건 결심을 지지해 줄 격려 한 스푼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 질문을 던진 학생은 '앞으로 좋은 인생을 살겠구나.' 싶은 느낌이 오는 친구였다. 강의를 하다 보면 한 반에 세 명정도는 꼭 그런 느낌을 주는 학생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취업지원센터든 회사든 나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린 평가에 흔들리지 마세요. 어려운 과목을 강의하는 시간에 늘 좋은 질문과 답변을 한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잘 해낼 능력이 있다는 뜻이에요. 도전해 보세요.'


개인적인 고민과 좌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적절한 격려도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취업시장에서 충분히 겪어온 과정이었기에, 용기 있게 조언을 건넬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겨울 방학을 지날 무렵 메일이 한 통 왔다. 감사편지였다.



'짧은 상담이었지만 감사합니다. 1학기를 마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던 좋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지금 하는 선택들이 혹여나 내 인생에 잘못된 선택으로 남진 않을까 겁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 겪는 일일 뿐 언제든 다른 길에 도전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용기를 내고 살아가겠습니다.'는 멋진 어른의 말을 내게 돌려줬다.


앞으로 좋은 인생을 살겠구나... 란 느낌은 무시할 수 없다고 느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중고교 시절은 사고와 인격의 열매가 충분히 성숙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해를 보지 않고 자란 식물처럼 길쭉하게 웃자라 버린다. 강한 뿌리로 흙을 움켜쥐고 비바람을 버텨낼 굵은 줄기를 키워낼 여유가 없다. 그렇게 갑자기 성인이 됐다는 표식을 달고 세상에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선택들 앞에 놓이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줄기와 뿌리의 연약함을 잘 아는 우리는 비닐하우스를 덮어 줄 보호자를 찾으며 다시 시간을 허비한다. 제일 좋기는 비닐하우스에 있는 화초 같은 삶이겠지만, 비닐하우스는 한시적으로만 허용되는 게 보통의 인생임을 인정해야 한다.


20대 무렵, 주변을 기웃거리며 돈을 벌 여러 방편을 강구했던 삶은 돌이켜보니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다.    

 

돈을 번다는 건 확실히, 어른의 일이기 때문이다.    


주말농장을 시작했습니다. 씨앗에서 떡잎이 나오면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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