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의 택시기사
스무 살 넘은 어느 날의 나는, 급한 걸음으로 다가온 불행과 맞서고 있었다.
밤, 이불처럼 공포가 덮쳐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나를 아는 친구는
일단 집으로 오라고
와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긴 밤, 낡은 거리를 지나
택시를 잡았다.
기사 옆자리에 주저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분명 현실의 가로등 불빛과 다리 너머 번쩍이는 서울의 야경이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어쩌지 못할 일들이 있다는 것
운명이 휘두르는 채찍에 이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란 것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견디고 살아내도
인생엔 정상참작이 없다는 것.
生의 이치를 알아버린 이십 대의 청년이었던 나는
슬픔과 공포에 숨이 막혔다.
편하게 가세요.
누군가 아득히 먼 현실의 장소에서 말을 걸어왔다.
택시기사였다.
자신의 하얗게 새버린 머리만큼 희미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어쩔 새도 없이 좌석을 뒤로 눕혀줬다.
- 편하게... 그래요. 그렇게 쉬면서 가요.
택시는 농밀한 어둠을 헤치고 달렸다.
가로등 빛과 밤의 어둠이 번갈아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깊게 숨을 뱉어내자
어쩐지 호흡이, 숨이 좀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목적지까지 그는 한마디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사람은 아는 거라고
교통사고처럼 운명이란 거대한 트럭에 상처 입은 사람이란 걸 아는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지던트로 잠조차 제대로 못 자는 친구가
밤새 술을 마시며 고통의 의식에 참예했듯
그날 밤, 어느 노회 한 인생은
심플한 방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 온 것임을.
그 이후, 정상참작이 없는 인생을 알아버린 나는
위대한 희생이나 위로 대신
고된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누군가를
숨 쉬게 하는 건
작은 배려일 수도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몇 번인가 이후로
나와 비슷한 불행을 겪는
인생에게 그 마음을 생각하며
의자를 뒤로 젖혀주곤 한다.
편하게 가요.
그래요... 그렇게 쉬면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