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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Feb 19. 2019

이상한 친구의 말, 개미는 거미보다 맛이 없다

기이한 대학 친구

나는 친구가 많지 않은데(물론 자랑은 아니다.), 대학시절 만나서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가 있다. 
이름은 현OO이니, 일단 현君이라 불러보자. 

현군에 대해서는 실로 할 말이 많은데, 이야기의 포인트를 좁혀서 일단 기본정보로 시작해 볼까 한다. 그는 외국어로는 국내 최고인 사립대에서 외국어와는 상관없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재원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중국어도 할 줄 안다. 각종 원서를 술술 읽어댈 뿐 아니라, 실로 다양한 방면에 걸쳐 다독을 하는 인재 중의 인재다. 


대학시절 그의 자취방에 빽빽하게 꽂힌 장서목록은 나를 경악케 할 정도로 많았고, 관심사 역시 실로 폭넓었다. 맑스이론부터 문학, 심리학, 경제학,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백두산을 신앙의 근거지로 삼는 종교서적부터 氣, 태극권과 팔극권 등의 동양 무술, 축지법까지... 


참, 흐름에 벗어난 이야기지만 그의 서가에서 실제로 축지법 책을 본 적이 있다. 의외로 아주 진지한 책이었다. 축지법의 핵심은... 방법만 알면 누구나 가능하다... 랄까. 어쨌거나 저자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이 빨리 못 걷는 이유는 자세가 틀려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호 그렇군.) 물고기를 보라. 꼬리를 좌우로 흔들지 않는가! 그래서 저자는 축지법의 기본자세를, 고개를 살짝 옆으로 튼 다음 두 팔을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좌우로 흔드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런데 이 자세를 해보면 알겠지만, 누구도 운동장에서 이런 자세로 뛸 강심장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책머리의 설명과는 달리) 재능에 따라 반년에서 십 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하니 참으로 애석한 노릇이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쨌거나 보통 뛰어난 인재들이 대개 그렇듯 그 역시 괴벽이랄까,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취향 같은 게 많다. 예를 들어 대학시절 술을 먹고 밤새 토한 뒤에도 새벽 6시면 늘 각목(그는 무슨 검이라고 했었는데...)을 들고 운동장에 나가 수련을 했다. 소나무나 날아가는 비둘기에 팔극권의 '정주'라고 하는 동작으로 팔꿈치를 날릴 때도 있었다. 


취업 후에도 딱히 달라진 건 없어서, 휴가철이 되면 휴가를 내고 일상에서- 어차피 그의 일상 역시 정상적인 궤도에 벗어나 있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 훌쩍 벗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전거 여행이다. 


그는 본인의 자전거-기름이 묻는다고, 기어에 기름칠도 하지 않아서 일반인은 페달조차 밟기 힘들다-를 끌고는, 정처 없이 전국을 누빈다. 언젠간 아침에 떠난다고 전화가 오더니, 저녁쯤엔 내게 경기도 양평 부근의 좋은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자전거 여행 떠났다며?"
"응, 지금 양평에 와 있어."

그리고 이틀 후, 그는 강원도에 도착했다며 전화를 했다. 후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며,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밤이 되면 숙소 대신 산간마을의 평상에서 이슬을 맞고 잠을 자며 강원도까지 갔다고 한다. 그런데 뭐 이 정도야 있을 법한 일이긴 하다. (... 아닌가?)


문제는 그의 식성이다. 원래 식탐도 있는 친구라 그러려니 하던 차에, 대학시절의 어느 날 점심을 먹자며 나를 자취방으로 이끌었다. 참고로 그의 방은 나를 포함한, 가난한 친구들이 자주 가서 술 먹고 잠을 자던 곳이었는데 제3땅굴처럼 깊은 지하에 있었다. 그는 밥솥을 열어 밥을 푸더니, '햄에 그냥 간단히 먹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꺼내 든 햄이... 우리가 아는 스팸류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캔의 모양은 스팸이었는데, 정체불명의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제3세계의 통조림이었다. 난 당연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건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다. 그는 동대문 어딘가에 가면 스팸 하나 가격에 열개는 족히 살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열 개? 내심 놀랐지만, 뭐 그런가 보다 했다. (...아닌가?) 문제는 캔을 연 뒤였다. 습하고 축축해서 벌레들에겐 천국인 자취방에, 반쯤 따 먹은 캔을 놓아 둔 것이다. 당연히 - 스팸 색이 아니고 분홍 소시지에 가까운 수상한- 햄에 개미가 잔뜩 꼬여있었다. 친구는 화를 냈다. 그러더니 달궈진 프라이팬에 '탁탁' 개미를 터는 게 아니겠는가! 


개미야 먹을 게 눈 앞에 있으니 먹었을 뿐인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답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해 말렸다. (물론 반쯤은 저 프라이팬에 햄을 굽는 건 싫은데...싶기도 했고...) 그러자 이번엔 그가 나를 달래듯 침착하게 말했다. 


"화나서 그러는 거 아냐.

 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당황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수저로 구워진 개미를 모아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몇 번 씹더니 말했다. 

개미는 거미보다 맛이 없다. 


사실 그와 함께 지내며 다양한 시식기를 들어온 터였다. 하지만 눈 앞에서 구운 개미를 능숙하게 먹는 모습을 보자 지나치듯 그가 했던 말들이, 흑백에서 생생한 컬러로 되살아났다. 현군이 호기심에 거미를 구워 먹고, 아버지와 함께 산소에서 말벌 통을 캐와서 먹었다는 일, 겨울이 되면 온 가족이 세숫대야에 물을 넣고 빙어를 푼 다음 휘휘 손으로 잡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다는 추억담까지...


졸업시점에 현군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성격만큼 독특한 직업을 찾으리라 기대를 했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권위적이고 딱딱하기로 소문난,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지금껏 다니고 있다. 결혼이 가능할까 사람들이 의심하자, 이번엔 지덕을 갖춘 아름다운 선생님과 결혼을 했다. 엄마를 닮은 예쁜 아이도 둘이나 낳아서 잘 키우고 있다. 가끔은 우리 가족과 만나 공원에서 놀기도 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고 했던가. (누굴까? 그런 말 함부로 한 사람이...)  

기이한 식성과 괴벽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는 건, - 담백하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게도 그런 면이 있는 것이겠지 싶다. 적어도 그 친구와 만나서 술잔을 기울일 땐 요즘도 참지 못 할 만큼 '깔깔깔' 웃음이 나오니 말이다.


이 글을 후루룩 쓰다 보니 문득 현군이 보고 싶어 졌다. 조만간 약속을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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