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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몬스터 Nov 15. 2021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추락해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 어떻게 다시 힘을 낼 수 있겠는가.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그 진창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힘을 내라는 말은 이미 예측하지 못한 비에 흠뻑 젖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폭우 직후의 마른 땅은 하늘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땅에 붙어 있는 사람은 내 눈 앞의 진창밖에 볼 수 없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디딘 그 한 발자국이 마른 땅을 디딜 지 더 깊고 차가운 진창을 디딜 지 땅에 붙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진창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발자국을 디딘다는 것은 앞으로 마주칠 더 깊고 차가운 진창의 위험과 공포 또한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수반한 것이다. 그 한 발자국은 당장 내디딜 한 발자국을 위한 힘 뿐 아니라 앞으로 내디뎌야 할. 알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걸음들을 가능하게 할 만한 힘이 있어아만 비로소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힘이란, 물체의 운동, 방향, 또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상호작용을 말한다. 그러니 힘을 내라는 말은 변화를 이끌어 내라는 말이다. 힘은 벡터량으로 표시한다. 힘이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가진 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은 크기나 방향 어느 한 부분만으로는 그것의 온전한 값을 측정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앞서가야만 비로소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낸 사람만이 힘들 자격이 있는 것처럼. 앞서 말했듯 힘은 벡터량이다. 크기와 방향을 모두 포함하는 벡터의 계산법에서 정지나 후진은 전체의 값을 키우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납득할 이러한 계산법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계산에 따르면 아무런 변화 없이 원점에 머물러 있는 내가 힘 들 리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 나는 힘 들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제 위치를 유지하는 것 또한 상당한 힘을 요구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고민의 답도 역시나 물리학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뉴턴역학에서 힘의 위치에 대한 적분이 에너지(energy)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물체의 운동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역학적 에너지의 값이 항상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합이라는 것이다. 이 합은 항상 일정한 값을 가진다. 예를 들어 물체의 속도가 0이라고 가정할 때. 역학적 에너지의 값은 물체가 운동을 시작한 지점의 높이를 기준으로 한 위치에너지의 값과 동일하다. 어떤 물체가 낙하할 때 위치에너지가 감소하는 만큼 운동에너지가 증가한다. 그리하여 낙하운동 중에도 어떠한 지점에 있든, 그 물체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합, 즉 역학적 에너지는 항상 일정하다.



그러니 이미 추락해 밑바닥까지 떨어진 어떤 것이라도 언제나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은 그 스스로 이 밑바닥을 벗어나기 위한 기력이 남아있을 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뉴턴역학에 따르면 영영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가 그저 진창에 가만히 서서 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일지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저 괜찮아 질 때까지 운동 에너지를 보존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언제든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에너지가 그대에게 아직 있다. 언제든지 진창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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