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문

오늘도 가족들의 발자국 뒤를 따라 걷는다.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 서문


​​


햇살 속에서 짙은 갈색 털이 잔물결처럼 반짝인다.

여유로운 걸음에는 장난기가 스며 있고, 고개를 살짝 들면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가 세상을 훑는다.

그게 바로 나, 라울이다.

성격은 온순하고 느긋하며,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놀랍도록 재빠르게 뛰어다니고, 깜짝 놀랄 만큼 활발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괜찮은 개다.

나는 지금 생후 9년 8개월 차, 사람 나이로 쉰다섯 살 무렵이다.

가족 구성원은 아빠, 형, 누나, 그리고 나를 맡아 키우는 윤 집사.

물론 세상에 나를 보내준 ‘첫 가족’도 있다.

엄마 ‘사랑이’와 한 배에서 태어난 형 둘이 바로 그들이다.

엄마는 윤 집사의 언니가 키우던 강아지였고, 나는 그녀의 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태어났다.

엄마의 품은 포근했다. 젖 냄새와 따뜻한 숨결이 뒤섞여, 눈을 감으면 금세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원래 윤 집사네 집으로 올 예정이었던 건 내가 아니라 첫째 형 ‘코코’였다.

하지만 형은 아기 때부터 몸이 약해, 엄마 곁에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대신 내가 그 자리를 맡았다. 운명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새로운 집으로 이끌었다.

다행히 같은 동네에 살아서 엄마와 형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 덕에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엄마 사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로는 코코 형과도 점점 거리가 생겼다.

예전엔 가끔 티격태격하더라도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했는데, 이제는 그 빈자리가 허전하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돌아온 윤 집사의 눈이 피곤하기는커녕 이상하게도 빛나 있었다.

그 빛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는 윤 집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탁탁, 톡톡

키보드가 내는 리듬이 거실을 채우고, 화면 위로 단어들이 촘촘히 내려앉았다.

그 조용한 소리가 집 안을 은근하게 데웠다.

그 비밀은 바로 ‘글쓰기’였다.

윤 집사는 주로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썼다.

가족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고, 예쁘게 플레이팅 한 뒤 사진을 찍고, 그 순간의 온기를 글로 풀어냈다.

가족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고, 집사는 그 시간을 기록할 수 있어서 행복해했다.

윤 집사는 말했다.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도, 사진을 더 멋지게 찍는 사람도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나만의 색깔은 나만이 담을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됐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진 못했지만, 나름 꾸준히 쓴 덕에 지역 문예전에서 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가끔은 ‘혹시 내가 집사보다 더 유명한 글쟁이 아닐까?’ 하고 장난스럽게 웃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미소, 혹은 공감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을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게 남기고 싶었다.

삶의 중요한 순간, 그 속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그 의미를 곱씹으며 나를 돌아보는 것.

언젠가 내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더라도, 글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 곁에 남아 있고 싶었다.

이 글은 반려동물을 처음 맞이하려는 예비 집사, 그리고 이미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집사들에게 전하는 작은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혼이 나면 속상하다.

물론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럴 때 우리는 이미 미안한 마음으로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있다.

왜냐하면 주인의 발자국, 숨결, 눈빛이 우리에겐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산책 시간이 조금 짧아도 괜찮다.

특별한 간식이 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우리를 바라봐 주는 시간, 함께 숨 쉬며 눈빛을 나누는 그 순간이다.

그 시간이야말로 가장 값진 선물이다.

꼭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시간이 가장 깊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사람보다 훨씬 짧은 생을 산다.

그렇기에 주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전 생애를 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하다.

그 사실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윤 집사도 처음엔 서툴렀다.

실수도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와의 관계를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다져 왔다.

많은 집사들이 우리에 대해 조금 더 배우고 이해한다면, 함께하는 날들은 훨씬 더 빛날 것이다.

풍요로운 삶은 거창한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사소한 순간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고 오늘도 가족들의 발자국 뒤를 따라 걷는다.

내 짧은 생이 다할 때까지, 우리의 하루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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