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말하다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1부 - 첫 만남, 그리고 나의 세계
두 번째 이야기 - 내 소개부터 할게
먼저 나를 소개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 그리고 나만의 작은 이야기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풀어놓으려 한다.
내 이름은 ‘ㄹ’로 시작하는 라울이다.
사람 이름도 아닌데, 왜 하필 강아지 이름이 라울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발음도 쉽지 않은 ‘ㄹ’이 맨 앞에 붙어, 이름만 듣고 고개를 갸웃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의 유래는 거창하지 않다. 축구 팬이라면 알겠지만,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 축구 선수 ‘라울 알비올’의 이름에서 따왔다.
처음 집에 왔을 때 내 이름은 ‘초코’였다.
짙은 털 색 때문에 붙은, 단순하면서도 흔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한 살 무렵, 윤 집사는 내 이름을 ‘라울’로 바꾸었다.
강아지가 개명을 한 셈이다.
이상하게도 이름이 바뀌고 나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전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라울’은 가족이 애정을 담아 불러 주는 나만의 호칭이었지만, ‘초코’는 그저 내 겉모습을 묘사하는 말 같았다.
사람들도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수많은 의미를 담아 고심하듯, 강아지도 가족들의 마음과 온기를 담아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
이름은 평생 들을 수 있는 나만의 것이니까.
151125.
내 생년월일 앞 여섯 자리다.
올해로 생후 9년 차, 노령견의 길에 들어선 미니어처 푸들이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사람 나이로 쉰다섯 살 무렵이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스무 살 청년이다.
세월이 흐르며 털빛은 조금 옅어졌지만, 여전히 단단한 근육과 ‘꿀벅지’를 자랑한다.
물론 동네 병원에서는 가끔 “조금 과체중이네요”라는 판정을 받지만, 그건 그만큼 ‘먹는 즐거움’에 성실하다는 뜻 아닐까.
나는 털 빠짐이 거의 없는 원코트 견종이라, 정기적으로 미용만 해 주면 깔끔하다. 반려견으로서 관리 효율성이 높은 편이니, 집사 입장에선 꽤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나는 음식 앞에서 솔직하다.
사람 음식에는 대체로 욕심을 내지 않지만, 고기만은 예외다.
주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퍼지면 귀는 쫑긋, 꼬리는 스스로도 감당 안 될 만큼 분주하게 흔들린다.
내 주식은 ‘건강*서’의 푸들 전용 사료다.
가끔 수의사가 권하는 다른 사료를 먹어도,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사람 음식 중에서는 고기, 고구마, 그리고 계란을 좋아한다.
과일 중에서는 단연 배를 사랑한다.
배를 한입 베어 물면 ‘사각’ 하는 소리가 입안에서 터지고, 달콤한 과즙이 혀끝을 감싼다.
그 순간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고, 오직 나와 배만이 남는다.
체리도 좋아한다.
작은 과육 속에 숨어 있는 달콤함은 언제나 기분 좋은 놀라움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윤 집사와 눈을 맞추고 오래 바라보는 순간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럴 때면 숨소리까지 잦아들고 방 안의 공기가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서로의 마음이 말없이 오가는 순간, 신뢰와 유대감은 말보다 훨씬 깊게 쌓인다.
혹시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는가.
아무 말이 필요 없는,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닿는 존재 말이다.
나에겐 윤 집사와의 그 순간이 곧 평화이자 안식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태풍과 천둥이다.
‘휘잉’ 하며 스치는 바람 뒤, ‘우르르쾅’ 천둥이 울리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그럴 땐 곧장 윤 집사에게 달려가 품에 파고든다.
특히 잠결에 듣는 천둥은 최악이다.
온 세상이 갑자기 흔들리는 듯한 그 소리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집사는 그런 나를 보며 웃을 때가 있는데, 그게 웃을 일인가 싶다.
몇 해 전, 블로그 마을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나는 ‘B조직’의 5호 요원이었다.
가상의 세계였지만 임무는 진지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선물을 배달하고, 골목을 순찰하며 안전을 지켰다.
“5호 요원, 잘 지키고 있나?”라는 물음에 나는 ‘멍!’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웃음과 따뜻함이 넘치던 그 시절이 그립지만, 지금의 평화로운 삶도 나쁘지 않다.
막상 나를 소개하려니 쉽지 않았다.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글로 옮기니 생각보다 간결하다.
그렇지만 이 시간은 뜻깊다.
나는 어떤 강아지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돌아보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깨달았다.
여러분들도 한 번 해 보길 권한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유난히 따뜻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적어 보는 거다.
그 과정을 거치면, 여러분들도 나처럼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