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함께 걷는 속도에는 비밀이 있어

나란히 걷는다는 것의 의미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열아홉 번째 이야기-함께 걷는 속도에는 비밀이 있어

산책길에 나서면 언제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나 혼자서 마음껏 달릴 것이냐, 아니면 집사의 속도에 맞춰 걸을 것이냐.

나는 개이니 당연히 첫 번째가 끌린다.

풀 냄새가 나면 풀 속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면 그 뒤를 따라, 바람이 부르면 바람보다 앞서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목줄은 나를 살짝 붙잡아두고, 그 끝에는 윤 집사가 있다.

결국 나는 두 번째 길을 택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속도의 길 말이다.


처음에는 그게 답답했다.

‘조금만 더 빨리 가면 안 돼?’

내 발걸음은 가볍고, 에너지는 넘치고, 세상은 나를 부르고 있는데, 윤 집사의 보폭은 늘 일정했다.

걸음이 느려지면 나도 자연스레 멈춰야 했고, 윤 집사가 갑자기 길가에 멈춰 서 이웃과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나 또한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마치 내 자유가 반쯤은 묶인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동네 큰길 근처에서 일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냄새가 묻어나는 풀숲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파고들었다.

코끝에 닿는 신선한 향기에 취해, 더 깊이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집사가 “라울아, 잠깐!” 하고 목줄을 잡아세웠다.

억울했다.

하지만 그때 내 앞을 자동차 한 대가 쌩 하고 지나갔다.

만약 내가 한 발짝만 더 나갔다면, 그 바퀴에 치일 뻔했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집사의 속도는 나를 지켜주는 속도라는 걸.


또 다른 날은 저녁 산책이었다.

해가 기울고 가로등 불빛이 켜질 즈음, 나는 기분이 좋아서 계속 앞서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윤 집사는 갑자기 걸음을 늦추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왜 이러나 싶어 고개를 들어 보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구름은 연분홍으로 물결치고, 그 사이로 저녁노을이 길게 번져 있었다.

윤 집사는 한참 동안 그 노을을 바라보았다.

나는 옆에 앉아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그 순간을 함께했다.

그때 깨달았다.

함께 걷는 속도의 비밀은, 멈춤 속에서 더 깊은 풍경을 만나는 것이라는 걸.

혼자였다면 놓쳤을 하늘빛, 함께였기에 누릴 수 있었던 여유였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보면, 속도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알 수 있다.

성격 급한 친구들은 언제나 줄을 당기며 한 발 앞서 가려한다.

그들은 마치 세상 전체를 먼저 차지하겠다는 듯 급하다.

반대로 성격이 느릿한 친구들도 있다.

냄새 맡을 게 너무 많아 몇 발자국마다 멈추고, 결국 집사에게 끌려간다.

결국 둘 다 집사와의 보폭이 맞지 않아, 서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앞서 달리고 싶다가도, 윤 집사의 숨소리가 느려지면 보폭을 줄인다.

집사가 벤치에 앉아 쉬면 옆에 앉고, 다시 일어나면 함께 걷는다.

그 순간 깨닫는다.

산책의 즐거움은 세상을 빨리 더 많이 보는 데 있지 않고, 같은 속도로 함께 걷는 데 있다.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어떤 이는 늘 앞서가야 직성이 풀리고, 어떤 이는 늘 뒤처져 남을 따라가느라 힘들어한다.

누군가는 남보다 빨리 달려 성공을 붙잡으려 하고,

누군가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발걸음을 늦춘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친다.

옆에 있는 사람과 보조를 맞추는 순간의 소중함을.


집사와 내가 걷는 속도는 꼭 같을 필요가 없다.

때로는 내가 반 발짝 앞서고, 때로는 집사가 나를 이끈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길 위에 선다.

그게 속도의 비밀이다.

혼자라면 느낄 수 없는, ‘함께’라는 리듬.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내 목줄이 풀려 자유롭게 달린다면,

나는 더 멀리, 더 빠르게 세상을 경험하겠지.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집사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워도, 아무리 냄새가 흥미로워도,

결국 마음은 허전할 것이다.


속도의 철학은 그래서 간단하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발걸음을 맞추느냐다.

집사의 발걸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조금 서두르면 속도를 늦추고, 집사가 지칠 땐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게 내가 배운 ‘함께 걷는 속도의 비밀’이다.


오늘도 나는 집사 옆에서 발걸음을 맞춘다.

꼬리가 흔들리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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