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가끔은 멈춰야 보이는 게 있어

멈추어야 삶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스무 번째 이야기-가끔은 멈춰야 보이는 게 있어


가끔 윤 집사가 “라울, 빨리 와!” 하고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대답 대신 길가의 풀잎 사이에 코를 묻는다.

거기에는 어제는 없던 냄새, 오늘만 머물다 갈 향기가 숨어 있다.

마치 친구가 먼저 다녀가며 남긴 짧은 편지 같다.


사람들은 빨리 걸어야 더 많은 것을 본다고 믿지만, 나는 안다.

멈춰야만 보이는 세계가 있다는 걸.


풀잎을 스치는 바람이 남긴 얘기, 돌담에 찍힌 발자국, 빗방울 속 반짝이는 하늘 조각.

이 모든 건 서두르는 발걸음이 놓쳐버리는 것들이다.



어느 날 아침, 햇살이 갓 도착한 시간이었다.

밤새 내린 이슬이 풀잎 끝에서 반짝이며 떨어지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고,

골목길의 공기는 밤의 차가움을 간직한 채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윤 집사는 밀린 숙제를 해치울 요량인지 평소보다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발걸음을 늦췄다.


그때, 화단에서 ‘툭, 툭’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비둘기 한 마리가 부리로 흙을 두드리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 깃털 사이로 스치는 바람의 결.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편안하게 바라보는 내가 두렵지 않아서인지 날아가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마주 보고 있었다.


만약 내가 윤 집사 말대로 서둘렀다면, 그 몇 초의 숨결은 내 하루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그날, 느린 발걸음이 건네는 선물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깨달았다.


비 오는 날의 멈춤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웬만하면 비가 내리는 날은 산책을 쉬지만, 내가 재촉하면 가끔 윤 집사는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고 나간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풀잎 옆에 서서 코를 킁킁거린다.

풀잎 끝에서 미끄러져 내린 물방울이 흙냄새와 섞여 코끝을 간질인다.


윤 집사는 “라울,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네” 하고 웃지만, 나는 그 순간이 좋다.


빗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키고, 남는 건 나와 빗방울, 그리고 풀잎뿐인 고요함.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세상이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물방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 젖은 흙이 내쉬는 숨, 그리고 윤 집사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까지.


사람들은 멈춤을 ‘지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멈춤은 ‘확인’이다.


오늘 공기는 어떤지,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에 어떤 기운이 묻어 있는지, 길가의 꽃이 어제보다 더 활짝 피었는지.

멈춰 서야만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윤 집사는 가끔 장난을 친다.

내가 풀잎 냄새를 맡으며 멈춰 있으면, 멀리서 슬그머니 몸을 숨기고 나를 부른다.


그러면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의 방향을 가늠한다.

그 짧은 순간에도 바람은 방향을 바꾸고, 담장 너머 고양이는 꼬리를 흔든다.

다시 고개를 돌려 윤 집사를 찾으면, 그는 웃으며 “아이고, 어떻게 찾았어”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만의 부드러움이 묻어 있다.


멈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본다.

걸음을 멈춘 채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발바닥에 닿는 땅의 온기.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숨을 고르며 잠시 눈을 감으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친 마음속 풍경이 또렷해진다.


나는 멈추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멈춰 앉으면 냄새는 더 짙어지고, 먼 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골목 어귀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윤 집사가 가볍게 내쉬는 숨소리까지.

그건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세상과 나누는 대화다.


사람들도 멈춤을 배웠으면 좋겠다.

멈춘다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 잠깐의 숨 고르기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빨리 와!’라는 부름 속에서도 한 번쯤은 고개를 숙인다.

멈춰 서야만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숨소리를 내 안에 오래 담아두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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