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해

지켜야 할 선이 있다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스물두 번째 이야기-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해


윤 집사와 산책을 하다 보면, 골목 끝에서 다른 강아지가 나타난다. 어떤 녀석은 꼬리를 부르르 떨며 곧장 달려오고, 어떤 녀석은 눈치를 보며 멀찍이 선다. 나는 그 중간쯤에 서 있는 편이다. 먼저 달려가지도, 완전히 돌아서지도 않는다. 서로의 냄새를 살짝 맡으며, ‘이 정도 거리면 괜찮다’ 싶은 지점을 찾는다.


나는 이 거리를 ‘안전거리’라고 부른다. 상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내 꼬리가 밟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 지점을 찾으면 서로가 편안해진다. 한 번은 (땅) 콩이 형님과 그런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걸었다. 그날 우리는 단 한 번도 짖지 않았지만,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친구가 되었다.


관계란 결국 가까워지기 전, 적당한 거리를 재보는 일이다. 처음부터 마구 달려들면 상대는 놀라 도망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멀리 서 있으면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 좋은 관계는 그 중간 지점에서 싹튼다.


그 거리를 유지하려면 관찰이 필요하다. 상대의 표정, 말투, 작은 몸짓을 살피는 것이다. 나는 귀가 젖혀지고 꼬리가 내려가면 한 발 물러선다. 반대로 꼬리가 살짝 흔들리고 눈이 부드러워지면 한 발 다가간다. 그건 마치 춤처럼, 한 발 내딛고 한 발 물러나는 호흡이다.


계절이 바뀌면 관계의 온도도 달라진다.


봄의 코끝 거리는 벚꽃 향처럼 부드럽다. 산책길에서 처음 만난 강아지와 꽃잎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관찰한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바람 속에 섞인 향기가 우리를 같은 계절에 묶어준다.


여름엔 조금 더 멀리 선다. 햇볕이 강해 숨이 차고, 땀 냄새가 짙어지는 계절이니까. 멀리서 꼬리를 한 번 흔드는 인사로 충분하다. 풀숲 그늘에 나란히 앉아 물그릇 하나를 번갈아 마시는 것으로 우정이 깊어진다.


가을엔 거리가 풍성해진다. 낙엽이 바스락거릴 때, 일부러 조금 느리게 걷는다. 옆의 친구가 내 발걸음에 맞추는지 살피면서. 이 계절엔 짧은 눈 맞춤과 동시에 마음이 한 뼘 더 가까워진다.


겨울엔 몸이 먼저 거리를 좁힌다. 찬바람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코끝에서 하얀 숨이 피어오르는 순간, 우리는 같은 추위를 나누는 동료가 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는 먼저 그 사람의 ‘안전거리’를 찾아야 한다. 너무 빨리 다가서면 마음의 문이 닫히고, 너무 늦게 다가서면 기회가 지나간다. 관계에는 서로가 숨 쉴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 거리는 오히려 그리움을 만들고, 그리움은 관계를 단단하게 한다.


사람들은 종종 모든 관계가 가까워야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꽉 붙잡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리 놓으면 마음이 식는다. 중요한 건 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 거리를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 다롱이를 오랜만에 만났었다. 예전 같으면 곧장 달려가 꼬리를 흔들었을 텐데, 그날은 그의 발걸음이 주저하는 듯 보였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코끝 거리에서 멈췄다. 서로의 냄새를 천천히 확인한 뒤에야, 우리는 동시에 한 걸음 다가가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때 알았다. 거리는 멀어졌다가도, 마음이 준비되면 언제든 다시 좁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책길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살짝 붙잡는다. 먼저 안전거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그다음에야 한 걸음 다가간다.


관계는 결국, 서로가 편안한 속도로 다가가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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