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착한 강아지 따위는 되지 않기로 했어

나는 더 이상 착하기만 한 강아지가 아니다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스물세 번째 이야기-착한 강아지 따위는 되지 않기로 했어


아침 공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발밑에서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리듬을 타고, 멀리서 높아진 새소리가 섞여든다. 공기는 차갑지만 햇빛이 부드러워 익숙한 산책길이 한결 포근하다. 나는 오늘도 윤 집사와 함께 이 길에 오른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걸을 때마다 새롭다.


이 길에서 나는 여러 유형의 친구들을 만난다.


먼저 ‘친화력 만렙형’.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부러지게 흔들며 “안녕!” 하고 달려드는 친구들이다. 준비도 안 된 내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코앞까지 들이밀 때면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다. 골든 레트리버, 몰티즈, 코카스파니엘이 주로 이런 타입이다. 그들의 에너지는 아침 햇살처럼 뜨겁고 반짝인다. 하지만 가끔은 그 따뜻함이 과하다.


다음은 ‘신중·경계형’. 시바견이나 보더콜리, 일부 소형견들이 여기에 속한다. 나를 위아래로 스캔한 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사의 뒤로 숨거나 귀가 얼얼할 정도로 짖어댄다. 늘 마주치는 ‘쫑이’라는 녀석이 대표적이다. 몇 년째 얼굴을 봐도 여전히 요란하게 짖는다. 아마 우리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오래된 사연 같은 게 있나 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온화·차분형’. 바로 내가 속한 부류다. 나는 집사 옆에서 조용히 걷고, 낯선 친구가 다가와도 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웃들은 늘 “어머, 정말 착한 강아지네”라고 칭찬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결코 ‘착하기만 한 강아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싯적 나는 그야말로 ‘착함 풀코스’를 장착하고 살았다.

잠에 취해 있다가도 “산책 가자”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 나갔고, 귀찮을 때도 “옆에 와서 앉아” 하면 집사 다리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윤 집사의 칭찬 한마디면 뭐든 해내는 모범견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모든 행동이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산책은 내가 원치 않으면 쉬어도 되고, 피곤할 땐 불러도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나는 늘 ‘착한 강아지’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타고나길 착하게 태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늘 착해야 한다는 건 은근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 이제는 착한 강아지 따위는 하지 않겠다 ‘고 결심했다.


사람에게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듯, 우리에게도 ‘착한 강아지 콤플렉스’가 있다. (이건 방금 내가 만든 말이니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콤플렉스는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스스로 확신하기보다, 타인의 긍정적인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심리다.


돌아보면, 나는 다른 강아지나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내 의견을 덜 내세웠고,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착한 역할에 매달리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생각해 보면, 착한 강아지 콤플렉스는 결국 자존감과 깊이 연결돼 있다. 자존감이 높으면 남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기준을 지키며 살지만, 낮으면 거절을 잘 못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춘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많다. 반복되는 비교와 평가, 감정을 무시당한 경험, 잦은 비난, 취미나 성취 경험 부족, 완벽주의 같은 것들이다. 개와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나마 쉽게 시작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다.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첫째,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윤 집사가 부를 때마다 달려가는 게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땐 표정으로 “좋긴 한데, 지금은 쉬고 싶어”라는 신호를 보낸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둘째, 건강한 경계 세우기.

포근한 방석에 누워 쉬고 있는데 윤 집사가 나를 베개 삼으려 하면 조용히 일어나 멀찍이 앉는다. 그 눈빛에는 ‘노터치 플리즈’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관계에도 선이 필요하다.


셋째, 작은 성취 반복하기.

간식 앞에서는 ‘먹어’라는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린다. 산책 중에는 차가 지나가면 잠시 멈춰 기다린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 나 꽤 멋진 강아지잖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은 성취가 모이면 자존감은 자연스레 높아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더 이상 ‘착하기만 한 강아지’가 아니다.

이웃들이 여전히 “라울이 참 착하네”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미소 짓는다. 이제 나는 단순히 착한 강아지가 아니라, 내 마음을 존중할 줄 아는 강아지다. 나를 꾸미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가는 개. 그게 훨씬 더 오래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내 변화를 이해해 주고, 작은 용기에도 칭찬을 보태주었기에 가능했다. 착한 강아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나니, 가족들과의 관계도 한층 더 단단해졌다. 더는 기대에 맞추느라 지치지 않아서,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졌다.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착함’이라는 가면 속에 있지 않다.

행복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데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집사 곁에서 당당히 걷는다.

착하지 않아도,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멋진 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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