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배를 채우지만, 만족은 마음을 채운다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스물한 번째 이야기-욕심만 내다간 놓치는 게 많아
윤 집사가 간식을 꺼낼 때, 내 귀는 가장 먼저 반응한다.
봉투가 ‘사각’ 하고 울리는 순간, 꼬리는 이미 반원 궤적을 그리며 흔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나를 간식의 세계로 초대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순간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달려가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멈추느냐라는 걸.
욕심을 부려 냄새도 맡기 전에 덥석 물면, 윤 집사의 손은 재빨리 위로 올라간다. 그러면 간식은 금세 ‘대기 상태’로 전환되고, 내 침샘은 허공을 바라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깨달았다. 속도는 나를 간식 앞에 데려다주지만, 멈추면 간식을 내 앞에 머물게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몇 걸음 앞에서 멈춘다. 윤 집사의 눈을 똑바로 보며 꼬리를 살짝 흔드는 건 나만의 암호다.
그때 윤 집사는 꼭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손을 낮추며, 천천히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어’라고 말하며, 내 눈높이에 간식을 가져다준다. 이 짧은 교감 속에, 나는 이미 절반의 만족을 맛본다.
욕심은 배를 채울 수 있지만, 만족은 마음을 채운다.
나는 배가 고픈 날에도, 한 입에 삼키기보다 천천히 씹어 맛을 음미한다. 작은 사료 한 알 속에도 닭고기의 은근한 향, 곡물의 고소함, 그리고 ‘이건 네 몫이야’라는 윤 집사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면 먹는 속도는 저절로 느려진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 많이, 더 빨리 가지려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진다. 빨리 달리다 넘어지면 상처가 깊고, 손에 쥔 것도 흩어진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한 번에 다 가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욕심을 덜어내면, 만족이 찾아오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나는 공원에서 노란 공을 쫓을 때도 이 균형을 배웠다. 한 번은 너무 앞서 달리다 공이 발끝을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공은 멀리 굴러가고, 나는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그 뒤로는 속도를 조금 줄였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공이 내 앞에서 멈추는 순간이 많아졌다. 세상도, 관계도, 놀이터의 노란 공도… 가끔은 내가 달려가는 속도와 그것들이 다가오는 속도가 맞아떨어져야 잡을 수 있다.
윤 집사는 가끔 나를 안으며 말한다.
“라울아, 넌 참 표정이 풍부해.”
그건 아마도 욕심과 만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 덕일 것이다. 너무 많이 바라지도, 너무 적게 바라지도 않으면서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는 표정.
사람들도 지금 가진 것을 세어볼 필요가 있다.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 대화 중 주고받은 웃음, 잠들기 전 들은 음악 한 곡. 이런 것들이 모여 하루를 버티게 한다. 더 많은 걸 가지기 위해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잠시 멈춰 ‘이미 가진 것’을 바라보는 건 더 깊은 만족을 준다.
어느 겨울 오후, 윤 집사가 군고구마를 꺼냈다. 달콤한 향이 부엌 가득 퍼졌지만, 나는 부엌 문턱에서 멈춰 섰다. 평소 같으면 냄새를 따라 들어갔겠지만, 그날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그저 앉아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윤 집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윤 집사는 먼저 내 쪽으로 다가와 따뜻한 고구마 한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그 온기와 달콤함은 기다림이 만들어낸 최고의 맛이었다.
나는 오늘도 간식 봉투 소리에 귀를 세우고, 몇 걸음 앞에서 멈출 준비를 한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욕심과 만족의 균형이 숨 쉰다. 그것은 배를 채우는 시간인 동시에, 마음을 채우는 의식이다. 잠시 멈출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욕심이 줄어든 자리에서 만족이 자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