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빛이 나는 사람들의 비밀을 알려 줄게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만든 삶의 여유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빛이 나는 사람들의 비밀을 알려 줄게


낯선 것 앞에서 나는 늘 잠시 멈춘다.

새로운 냄새가 스쳐오면 코끝은 바빠지지만,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진다. 낯선 사람, 낯선 길, 낯선 소리. 그 순간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한 발 다가설 것인가.


집사는 나를 두고 종종 말한다.

“라울이는 정말 개방적이야.”

그 말이 꼭 칭찬 같기도 하고, 조금은 놀림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곱씹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세상 앞에서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문틈을 비집듯 다가가 본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공원에서 덩치 큰 개를 마주쳤다. 목소리는 굵었고, 꼬리는 단단히 세워져 있었다. 순간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코끝을 맞댔다. 그 개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내 냄새를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온순하여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꼬리를 흔드는 친구가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등을 돌렸다면, 지금의 우정은 없었을 것이다. 나를 드러내 보이고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위험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관계를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집 안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수행원이 새로운 간식을 내밀 때다. 낯선 향이 코끝을 간질이면, 순간적으로 주춤한다. 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알게 된다. 낯섦 속에 또 다른 기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어떤 간식은 망설임 끝에 가장 좋아하는 맛이 되기도 했다. 개방성이란 결국 ‘맛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누나는 나와 자주 숨바꼭질을 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눈앞에서 사라진 누나가 어디로 간 건지 몰라 허둥대며 집 안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낯선 상황일수록 코끝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커튼 뒤에서, 문틈 사이에서, 웃음을 참는 작은 기척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찾고 나면 누나는 나를 꼭 안아 올리며 말한다.

“라울, 역시 명탐정이야.”

새로운 규칙을 배워가는 과정은 낯설었지만, 그 낯섦 덕분에 놀이의 즐거움은 배가되었다.


형은 나와 반대로 말이 적다. 표현이 많지 않아 처음에는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의 다정함은 말이 아니라 손길에 있다는 것을.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나는 느낀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말보다 크다는 것을. 개방성이란 어쩌면,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언어로 다가오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개방성이란 단순히 세상에 문을 열어두는 것이 아니다. 낯선 길 위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용기, 새로운 냄새를 기꺼이 맡아보는 호기심, 다른 방식의 사랑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더 넓고 깊게 만든다.


집사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라울아, 나이가 들어도 편안하고 품위 있게 사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어. 그게 뭔지 아니? 그건 대부분 개방성이 있다는 거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세,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태도가 결국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다.


우리 단지에 사는 한 어르신이 떠오른다. 그는 매일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 처음엔 낯선 이라 경계했지만, 그의 손길은 늘 일정하고 따뜻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개들도 차츰 마음을 열었다. 그는 새로운 강아지를 볼 때마다 이름을 묻고, 그 성격에 맞는 간식을 준비해 온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배우고, 기억하고, 맞춰 주는 그 모습은 참으로 멋지다. 집사의 말처럼, 그의 편안함은 세상을 향해 열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닫는다. 닫아 두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기쁨도, 배움도, 관계도 멀어진다. 나이가 들어도 편안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밀은 결국 여기에 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조금 더 열어 두는 것.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삶의 일부로 삼는 것. 그때 삶은 나이를 거슬러 더 유연하고 깊어진다.


윤 집사는 말한다.

“라울, 넌 나보다 훨씬 용감해. 난 새로움이 두려울 때가 많거든.”

나는 꼬리를 흔들며 대답한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두려움을 가만히 안고서도 한 발 내딛는 것, 그것이 진짜 용기라고.


내 개똥철학은 결국 이거다.

세상은 낯설고 두렵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닫아 두면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기쁨은 사라진다. 열어 두면 때로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만 새로운 냄새와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쌓일수록 삶은 나이가 들어도 한결 편안해지고, 오래도록 빛난다.


오늘도 나는 현관 앞에 선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코끝을 바짝 세운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다가가고, 맡아보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내가 가진, 개방성에 대한 개똥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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