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개 풀이라도 뜯어봐야 할 말이라도 있다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4부-삶의 태도와 개똥철학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사람들이 종종 웃으며 던지는 말이다.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허황된 소리,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에 붙인다. 그런데 내 귀에는 묘하게 들린다. 왜냐면, 나는 진짜로 풀을 뜯어본 개니까.


물론 나는 소나 말처럼 매일 풀을 먹진 않는다. 하지만 산책길을 걷다 보면 꼭 한 번씩은 시선을 끄는 풀이 있다. 햇볕을 받은 이파리가 연둣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호기심에 코를 가까이 댄다. 향기는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비 온 뒤 흙냄새가 섞여 있고, 어떤 날은 햇볕에 구운 듯 고소하다. 마음에 들면 살짝 입을 대본다. 그 순간 혀끝에 닿는 차가운 촉감, 잘근 씹을 때 퍼지는 풋내, 그리고 곧 찾아오는 씁쓸함.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퉤. 하지만 강아지풀만큼은 내 입에 꼭 맞는다. 그 맛은… 먹어본 자만이 안다. 이상하게도 풀을 뜯는 그 짧은 순간이 나를 조금 더 자연의 품 안에 있게 한다.


사람들이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말할 때는 진짜 풀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저 허무맹랑하다고 느끼는 말에 태클을 거는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다른 이의 말을 ‘개 풀 뜯는 소리’로 단정할까?


산책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 강아지들은 먼저 꼬리로 인사를 한다. 서로 냄새를 맡고, 뱅글뱅글 돌며 탐색한다. 가끔 의견 충돌이 나면 으르렁대거나 짖기도 하지만, 금세 잊는다. 누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오래 붙잡고 있지 않는다. 다시 냄새를 맡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다. 어떤 말은 곱씹고, 다시 해석하고, 때로는 부풀린다. 웃고 흘려도 될 이야기에 “그건 말도 안 돼”라는 도장을 찍는다. 마치 풀을 한 번 뜯어보고 “맛없다”라고 영원히 리스트에 올려버리는 것처럼.


나는 풀을 뜯다가 맛이 이상하면 그냥 뱉는다. 그게 끝이다. 다음 산책길에서 더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을 찾으면 된다. 굳이 “이 풀은 최악이야”라고 크게 짖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내 하루는 짧고, 좋은 냄새를 맡고 즐기는 시간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진심 어린 꿈이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계획, 엉뚱한 상상까지도 ‘개 풀 뜯는 소리’로 치부될 때가 있다. “너무 비싸다.” “위험하다.” “실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개 풀’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달콤할 수도 있다. 풀의 맛은 뜯어본 자만이 안다.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누군가 내 앞에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해도, 한 번은 코를 대보고, 아니다 싶으면 조용히 뱉을 거다. 그리고 꼬리를 살짝 흔들어줄 거다. 그게 내 방식의 대화법이다. 상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최소한 한 번은 귀를 맡기는 것. 그것이 세상과 잘 지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별별 풀이 다 있다.

봄날의 새싹처럼 부드러운 풀,

여름 장마 뒤에 향이 배인 풀,

가을 햇볕에 바삭하게 마른풀,

그리고 겨울에도 기어이 고개를 내미는 강인한 풀.


사람들의 말도 계절처럼 다르다. 어떤 말은 가볍게 웃게 만들고, 어떤 말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또 어떤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말은 모두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결국 내 안에 흔적을 남기며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왜 나이가 들어도 어떤 이들은 편안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을까? 나는 그 이유가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마음을 닫아 버리는 데 있다고 본다. 다른 이의 말을 너무 빨리 ‘개 풀 뜯는 소리’로 단정하는 태도는 마음을 닫아 버린 삶이다. 그 속에서는 기쁨도, 배움도, 관계도 자라지 못한다. 반대로, 낯설어도 한 번쯤 귀를 맡기고, 새로운 맛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삶을 가볍게 한다.


윤 집사는 종종 내게 말한다.

“라울, 넌 나보다 훨씬 용감해. 난 남의 말을 들으면 자꾸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거든.”

그럴 때 나는 꼬리를 흔들며 대답한다.

풀은 뜯어봐야 안다고. 말도 끝가지 들어봐야 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건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그래도 풀은 한 번쯤 뜯어봐야 뭐라도 할 말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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