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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제주에 물들다

제주의 노을에 물든 추석

by 소담


가을은 유난히 아름답다. 여름 동안 드리웠던 습기와 미세먼지는 사라지고, 찬란한 빛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추석 연휴가 되면 가족들을 만나러 고향으로 향했지만, 요즘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만약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떠나는 가벼운 여행지를 찾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제주를 추천하고 싶다.


다만 가을을 한껏 품은 제주를 찾는다면 절대주의가 필요하다. 노을이 그대의 마음을 훔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물들이는 그 순간은 몰아의 상태에 빠져들 듯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것이며, 붉게 내려앉은 노을 앞에서는 ‘아름답다’라는 말조차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늘이 와인을 가득 머금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숭고한 빛을 낼 수 있을까.


그 숭고한 순간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하루의 끝이 가장 아름답게 머무는 장소, 바로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일주동로 6347-17’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담아둔 명소지만, 그 매력에 빠지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운이 좋아 비가 갠 직후라면, 그곳의 노을은 그야말로 빛의 성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맑아진 공기를 뚫고 퍼져나가는 붉음과 황금빛은 바다 위에서 겹겹이 쌓여 온 세상을 경건한 빛으로 감싼다. 상상이 되는가.


추석 무렵의 제주는 그 자체로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이다. 은빛 억새가 물결치는 오름을 산책하고, 해녀들이 갓 건져 올린 전복은 바다의 신선한 맛을 그대로 전해준다. 성산 일출봉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장관 그 자체다. 구름 사이로 퍼져 나오는 아침빛마저 경외심을 자아낸다.


밤이 되면 둥근 보름달이 바다 위로 떠오른다. 건물 틈새로 바라보던 달과는 비길 바가 못된다. 은빛 파도 위에 비친 달빛은 눈부신 윤슬의 향연을 선물한다.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 달빛에 스며들다 보면, 명절의 본질은 결국 정해진 장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추석에 떠나는 제주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가을의 빛과 바람, 그리고 가족의 온기가 어우러져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는 쉼표이다. 새로운 풍경 속에서 고향의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채울 수 있는 시간, 그것이 바로 제주의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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