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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Mar 03. 2024

응답하라, 휴스턴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유영

1. 물속에서 헤엄치며 놂

2.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일


아, 이 글은 스텔라 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를 들으며 읽는걸 추천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유영하고 있었어

밤의 바다처럼 끝도 깊이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스스로가 존재한다는 인지의 끈조차 놓아버리려 할 때쯤

경망스럽게 삶은 시작되었지

아득한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뒤 마주하는 모든 것이 생경하여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

울음을 달래려는 듯 시간은 서둘러 자기 복제를 해대고 새로움들을 엮은 익숙함을 건네주었어

그렇게 하루 또 하루 

반복되는 삶 속에 적응해 가며 안정을 찾아갔지만 동시에 이 세상이 시들시들해졌어

아니 버거워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려나


어릴 때는 놀이터였던 세상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새 권리보다는 책임이 짓누르는 나이에 이르렀어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 치졸해지고

자기 자신을 꼭 닮은 누군가를 위해 뻔뻔해졌지

나는 놀이터를 향유하는 주인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어

돌이켜보면 자신의 놀이터에서 마음 편히 놀아본 순간은 너무 찰나였던 것 같아

아쉬워도 어쩌겠어, 누군가는 지켜야만 해


언젠가 왜 사람이 행복해야 하냐고 묻던 친구가 있었어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었지만, 글쎄,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니라

행복하고 싶다는 절실함이 아닐까

너도 가끔은 아이처럼 놀이터로 달려가 놀고 싶지 않아?

그 마음이 명제의 반증이 아닐까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명제의 역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을 정의하고 사는 것 같지 않아

스스로 정의한 적 없기에 타인에게 쉽게 휘둘려버리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들을 답처럼 맹신하고

다양한 견해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에게 행복은 '사람'이라고 답할게

나 말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 말이야

착한 아이 증후군이니, 낮은 자존감이니

별의별 말들로 검산을 해본 끝에 내린 결론이야

아무래도 나는 '사람'인 것 같아

백번 양보해서 지금은 그런 거라고 하자


사실 작고 소중한 나의 세계에서

행복은 양자역학에서처럼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어

나는 완전하게 알 수 없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행복해야 하는지

행복 다다른 것 같아도 마침내 알게 되었다는 생각조차 나를 배신해

그래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얽혀있을 테니 어떻게든 닿을 거야

행복에 닿으려는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거야


나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기쁜 것

잊지 마

이게 내 행복이었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내 생각을 무너뜨리더라도

기억해

그게 내 행복일 거야



사진: Unsplash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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